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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04.26 10: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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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까지 자유를 내세우면 보수이고
자유를 빼면 진보라는 우스꽝스러운 말싸움을
벌일 것인가, 민주주의는 근원적으로 자유라는
사실을 벗어나면 정치가 있을 필요가 없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계간 ‘철학과 현실’ 책임편집위원.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계간 ‘철학과 현실’ 책임편집위원.

 

언어의 혼란
어느 시대의 정치적 문제를 꿰뚫어보려면 그 시대가 겪고 있는 언어의 혼란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지독한 언어혼란의 병을 앓고 있다는 단적인 징후는 ‘자유민주주의’를 둘러싼 소모저긴 논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우리의 헌법 전문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버리고 민주주의만을 보존하려하고, 보수 야당은 어떻게 해서든 민주주의에 자유를 붙이려고 집착한다.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다른 것인가?
해방 후 대한민국의 최대과제는 제정헌법 전문에 들어 있는 것처럼 ‘민주독립국가의 재건’이었다. 이에 반해 1987년 개정헌법의 국가의 과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공고화였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되고, 평화통일의 희망이 싹트고 있는 지금 우리 국가의 과제와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 것인가?
여기서 자유는 다시 한 번 수난을 당하고, 혼란을 야기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내려고 하는 일부 인사들은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고 밝힌 1919년 4월11일 ‘대한민국 임시 헌장’을 언급하며 새로 건국할 민족국가의 기본방향이 평등사회 건설이라고 주장한다. 통일국가의 기본방향이 ‘자유없는 평등사회’란 말인가? 통일지상주의자들이 자유를 포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러한 태도가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것은 틀림없다.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에서는 결코 통일한국의 바람직한 미래와 방향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의 헌법 전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김일성 개인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는 헌법이 어떻게 바람직한 정치적 질서의 토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관점에서 보수 야당은 통일한국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다시 자유민주주의로 되돌아온다.
한쪽은 민주주의만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자유를 떼어내려 하고, 그럴수록 다른 쪽은 더욱 더 자유에 집착한다. 한쪽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결국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왜곡하고 파괴하였다고 주장한다면, 다른 쪽은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자유’,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낱말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마음대로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뜻이 중요하지 않고, 낱말 자체가 사회적 힘을 가진다는 말이다. ‘자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 이해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정치적 적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낱말로 사용한다면, 자유라는 낱말은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가치다. 헌법적 기본가치인 ‘자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자유가 논란의 대상이 된 까닭이 무엇인가?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 헌법 제정 100주년이다. 우리가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되새기고 미래 통일한국의 바람직한 기본 질서를 성찰하려면, 현재 우리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언어혼란을 극복하고, 그 중심에 있는 ‘자유’의 헌법적 가치를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의 배신과 민주주의의 위기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다양한 정치적 이념들이 실험적으로 시도되었던 19세기 이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민주주의를 양보할 수 없는 기본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다양한 정치이념과 결합한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결합하면 ‘자유민주주의’가 되고,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와 결합하면 ‘사회민주주의’가 된다.
민주주의는 오늘날 정치적 현대화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 논란이 많은 개념이다. 현존하고 있는 민주주의 정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무엇이 민주주의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드는가?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받아들여진다면, 헌법적 가치를 표현하는 데 ‘민주주의’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은 이미 타당성을 잃는다. 여기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이념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두가지 방식으로 등장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이렇게 대립한다. 우리는 이 대립을 뒤집어 생각할 수도 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는 정치이념들이지만, 각각 자신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민주주의를 채택한다고 할 수도 있다. 무엇이 목적이고 수단이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성격을 규정하는 수식어가 된다.
언제부터인지 ‘자유’는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 오용하는 낱말이 되었고, 민주는 평등의 이름으로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교란시키는 낱말로 전락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유’와 ‘민주’의 의미는 사라져 버리고, 낱말들만 정치적 공격의 수단으로 춤추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원인은 우리의 역사에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치체제를 ‘민주공화국’으로 명시한 대한민국 임시 헌법이 제정될 때 우리에게 없는 것이 ‘국토’와 ‘국민’만은 아니었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였지만 국민과 시민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정치질서의 토대가 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조차 없었다. 서양은 ‘자유의 문명’이었기에 자유를 위해 싸운 투쟁의 기억과 역사는 정치적 발전의 근간을 이룬다.
우리에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는 구체적 경험이 없는 공허한 정치이념으로 수입되었다. 우리에게 정치적 권력투쟁은 항상 정치적 이념 투쟁이었다. 이렇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는 권력 투쟁의 수단으로 호명된다. 한국의 보수는 자유민주주의를 통치수단으로 오용하여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배반하고, 한국의 진보는 경제적 자유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착각하여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거부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언어 혼란의 원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과 어휘가 헛돌 때, 언어는 춤추기 시작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이념의 핵심을 파악하지 않고 ‘자유’와 ‘민주’라는 낱말을 정치적 공격수단으로 남발한다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의 실현은 더욱 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다.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는 다양한 위기들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태를 위기로 진단하려면 어느 정도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서양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만다 돌아가 역사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원이 있다. 서양 민주주의의 근원은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이다. 아테네인들은 자유를 숭상했다. 그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권위주의적인 것을 불신하며, 개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공적인 일을 공동으로 결정하려고 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근원으로 돌아갈 때마다 확인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자유가 민주주의의 필수적 ‘전제조건’일 뿐만 아니라 민주적 정치의 ‘의미’라는 점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자유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 왜 개인인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면 정치가 있을 필요가 없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절대적 진리로 정당화하고 강요하는 사회에 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그 밖의 독재적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민주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처럼 개인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비로소 가능하게 만드는 가능 조건이다.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진보 세력은 민주주의의 다른 원리를 가리킬 것이다. 평등의 원리를, 평등은 우리가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기본조건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 평등하였다. 그들이 평등하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정치적 의미였다. 모든 시민이 공동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또 시민의 소리가 똑같은 무게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평등사회인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유롭지 않으면 결코 평등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자유는 공동의 관심사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유는 시민들의 평등을 요청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자유와 평등은 모두 정치적 의미에서의 자유와 평등이다. 18세기 근대국가가 형성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유와 평등의 의미도 변화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중요하였던 정치적 담론의 공간인 ‘폴리스’는 점차 이기적인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자유는 사유재산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인식되고, 평등은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으로 이해된다. 정치적 자유와 평등만큼 경제적 자유와 평등 역시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물론 고대 그리스인들도 경제가 정치적 자유의 필연적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하였다. 고대 아테네의 시민들은 실제로 삶의 욕구를 해결하는 가정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었다. 생계의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노예였다. 시민들이 정치적 공간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노동이 끝나는 곳에서 자유가 시작한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노동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그것은 노예처럼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진보 세력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자본주의가 기형적으로 발전하면서 심화된 사회의양극화는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의 불균형과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우리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세력은 사회적 경제적 평등을 자유의 전제조건으로 설정한다.
문제는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핵심적인 기준인 사회적 평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있다. 평등은 과연 사회적 협동의 산물인 부를 공평하게 재분배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집 한 채, 똑같은 차 한 대, 동등하게 여름별장을 갖고 있으면 평등한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사회주의적 평등주의가 실패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의식주의 생활수단이 국가에 의해 평등하게 분배된다고 해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논란을 극복하고 바람직한 정치 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전제조건인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망각하고 경제적 의미로만 이해될 때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린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시장의 자유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로 변질되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파괴하는 것처럼, 경제적 평등만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민주정신을 배반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은 위기와 비판을 통한 자기수정 능력이다. 시장의 자유를 근본으로 하되 시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회계층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는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개선된 것이지 결코 사회주의의 변형이 아니다.
자유를 실현하는데 장애가 되는 사회적 문제에 초점을 맞춘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개선이고 보완이지, 그것을 대체할 사회주의적 대안이 아니다. 이는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선진 유럽국가들 모두가 ‘자유’를 중심에 놓고 있다는 사실이 잘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자유에 집착하면 보수이고 자유를 빼면 진보라는 우스꽝스러운 말싸움을 벌릴 것인가? 자유주의적 가치를 실현할 미래의 정치질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가 근원적으로 ‘자유민주주의’라는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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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 2019-05-01 21:28:55
뭔 어디서 듣보잡 새리가 나와서 자유민주주의 삽질하고 있냐... 별 웃기지도 않는 소리 집어치우고 국민들 처한 위치나 한번 말해보던가 개새가 줫나 앞뒤 분간 못하고 나서네... 닥치고 살아라 평생... 자유민주주의로 발라버릴까보다...

이동혁 2019-05-01 18:45:16
교수님 25년 전에 교수님께 직접 강의를 듣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