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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빙하기가 자본주의를 태동시켰다
소빙하기가 자본주의를 태동시켰다
  • 고현석 기자
  • 승인 2019.04.26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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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읽는 해외책 : '필립 블롬' (자연의 반란 : 17세기의 소빙하기는 현재를 어떻게 바꾸었나'(리버라이트.2019.04)

 

지질학적 연대들을 통틀어 지구 기후가 얼마나 변화무쌍했는지 사람들을 쉽게 망각한다. 이는 그 가변성의 정도를 상상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북극에서 남극까지 완전히 빙하로 뒤덮인 지구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구는 3억 년 동안 거의 전부가 빙하에 덮인 상태였다. 3400만 전 만 해도 악어들이 북극 호소에서 헤엄을 쳤고 남극에서는 야자수가 무성했다. 지구 기후에 관한 실체적 진실은 지구가 빙하가 전혀 없는 상태와 전부 빙하로 덮인 극단의 두 상태 사이를 오갔다는 것이다. 그 중간이 바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다. 이것이 바로 지구 기후가 안정적이라는 일반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진실이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한 이래 약 5000년 중에서 기후 면에서 가장 특이했던 시기는 14세기 초부터의 몇백 년 동안이다. 보통 소빙하기로 알려진 이 시기 동안 기온은 섭씨 2도나 떨어졌다. 본격적인 빙하기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당시에 살아있던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기온 강하는 매우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또한, 이 시기는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태동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독일 태생의 역사가인 필리프 블롬은 <자연의 반란: 17세기의 소빙하기는 현재를 어떻게 바꾸었나>에서 근대의 시작과 소빙하기가 겹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후변화에 의한 사회적, 경제적, 지적 전복과 계몽시대의 서막을 이룬 시장, 탐험, 지적 자유의 시대 사이에는 복잡한 연관 관계가 있다는 이론이다.

소빙하기는 기후변화의 모든 측면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자주 완전한 합의를 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우리는 지구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빙산의 핵과 나무의 나이테 관찰 등의 방법을 통해 과거의 온도를 측정해 그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기온 강하를 기록한 문서들도 다량 존재하기도 한다. 기온 강하는 단계적으로 일어났다. 1300년 쯤 처음 하강한 기온은 1570년에 갑자기 대폭 떨어졌고, 이 상태로 약 110년을 유지했다. 블롬의 책이 다루는 기간이 바로 이 기간이다.

16세기 농노들의 생활을 그린 화가 대 피터르 브뤼헐의 '네덜란드 속담'(1559년)
16세기 농노들의 생활을 그린 화가 대 피터르 브뤼헐의 '네덜란드 속담'(1559년)

추워진 날씨가 미친 가장 결정적인 영향은 곡물 수확의 감소다. 곡물 수확 감소는 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에 걸쳐 사회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소빙하기는 결국 “장기적인, 대륙 규모의 농업 위기”를 초래했다. 더 큰 측면은 이로 인해 사회가 작동하는 방법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소빙하기 전 유럽 사회는 봉건체제에 의해 조직된 상태였다. 인구 대부분은 농노였던 반면, 도시 생활은 제약적인 길드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수확이 감소하자 공포가 엄습했고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폭동이 이어졌다. 마녀사냥이 본격적으로 확산한 때도 이 시기다. 과학이 지배하기 전의 사회에서는 수확 감소가 마녀 탓이라는 설명이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규모의 구조적 변화가 나타났다. 봉건사회에서 농노는 수확량의  일부를 자신이 갖고, 일부는 다음 해의 수확을 위해 다시 땅에 묻고, 마지막으로 남은 부분을 봉건 영주에게 바친다. 하지만 잉여 수확이 없어지자 이 시스템이 붕괴했다. 한 지역에서 수확이 급감하면 더 먼 곳으로부터 식량을 수입해야 했다. 화폐가 쓰임새를 결정적으로 확대한 시기가 이 시기가 된 것도 모두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과 시장 지배 원칙이 결정적으로 확산해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기반 해외기업체인 동인도회사의 본거지였다. 소빙하기에 설립된 동인도회사는 식민지의 경제를 초토화시키고 그 여파를 현재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이들은 기후변화가 “신이 자신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당시 신과 시장 지배는 점점 분리가 불가능해지고 있었다”며 “이 때 일어난 사람과 자연자원의 착취가 현재의 환경 위기의 직접 원인이 되고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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