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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인문학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인문학이다, 그러므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19.04.25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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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위기의 인문학 오늘과 내일
아무리 고성능 망원경이 있어도 '윤동주의 별'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런 별은 눈을 감아야 보입니다.
교수신문 창간 27주년을 맞아 지난 9일 열린 인문학 특별좌담회. 왼쪽부터 우찬제, 백종현, 김기봉, 엄정식 교수.
교수신문 창간 27주년을 맞아 지난 9일 열린 인문학 특별좌담회. 왼쪽부터 우찬제, 백종현, 김기봉, 엄정식 교수.

“인간이 존속하는 한 인문학의 위기는 없다.” 교수신문이 창간 27주년을 맞아 개최한 “포스트휴머니즘과 인문학” 특별 좌담회에서 백종현 서울대 명예교수(철학)는 인문학의 핵심은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좌담회는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철학, 계간 ‘철학과 현실’ 편집위원장)를 좌장으로,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 우찬제 서강대 교수(국문학)가 참석해 진행됐으며, 전통적 휴머니즘의 전개와 특징, 포스트휴먼의 등장과 첨단과학기술의 양상,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의 문제, 포스트휴먼 예술과 문학의 양상, 포스트휴머니즘시대의 인문학의 사명과 위기에 대해 폭넓고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졌다.

엄정식 교수
엄정식 교수

백종현: 포스트휴먼이라는 개념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휴먼이 포스트휴먼화하는, 즉 내가, 인류가 포스트휴먼이 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자연인은 자연인대로 존재하고 포스트휴먼이라는 또 하나의 존재자들이 등장한다는 개념입니다. 이 두 부분이 현재 혼재하고 있어요. 저는 인간이 공학 또는 의생명과학적인 조작을 통해 포스트휴먼화되는, 즉 인간이 증강되는 현실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본산은 휴머니즘이고, 포스트휴머니즘은 휴머니즘을 증진시키는 데 포스트휴먼이 도움이 되는 범위 내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정식: 현상과 당위의 문제를 동시에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또 어떤 문제들을 다뤄야 할까요?

김기봉: 결국 포스트휴머니즘이란 휴머니즘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현상 또는 휴머니즘과의 관계 속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데, 결국 휴머니즘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휴머니즘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우선 르네상스적인 인문주의, 즉 교회의 권위로부터 벗어나 더 인간적이 되려는 시도를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인간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보는 인식 주체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본주의입니다. 철학과 과학에서의 휴머니즘입니다. 세 번째는 인도주의입니다. 인문주의와 인도주의적 휴머니즘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이지만 인본주의적 휴머니즘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본주의적인 세계관으로부터의 하나의 성찰 또는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연결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비인간적인 존재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휴머니즘을 통해서 지배와 종속 관계가 발생한 것이 근대입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휴머니즘을 성찰하거나 반성하는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종현: 휴먼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신과 동물에 비교되는 개념으로 등장했습니다. 휴먼의 지위는 이성적 동물입니다. 인간은 이성 때문에 신적인 요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탕은 동물입니다. 결국 이성적 동물이라는 지위 때문에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생겨난 겁니다.

백종현 교수
백종현 교수

엄정식: 이전에는 인간에 대한 개념이 비교적 분명했지만, 현재는 인간과 신, 동물에 대한 개념적 혼란이 있는 상태입니다. 이제 신도 인간의 일부가 돼버리고, 기계가 신의 일부가 돼버린 상황입니다.

우찬제: 문학 쪽에서는 프랑켄슈타인 얘기를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괴물은 신도 인간도 될 수 없는 소극적인 형태였습니다. 그러다 1920년쯤 로봇 이야기가 처음 나옵니다. 이때부터 SF에 나온 로봇, 특히 1950년대에 나온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로봇이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해치면 안 된다는 등의 로봇 3원칙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과 아시모프의 로봇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보조적인 존재로서 로봇을 상상한 겁니다. 하지만 최근 SF에는 인간과 별개의 종으로서의 로봇 또는 또 다른 유형의 인간이 나옵니다. 이런 포스트휴먼은 뭘 하더라도 휴먼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도저히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습니다. 휴먼이라는 존재자가 또 다른 어떤 종을 상정하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이 종과의 관계 속에서 기존의 휴먼이라는 존재자가 포스트휴먼으로 트랜스화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미구에 나타날 수 있는 포스트휴먼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휴먼은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로봇이 인간의 말을 잘 듣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주종관계가 바뀌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자가 이들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어떤 이유로 미래에 대한 희망의 원리를 찾아가면서 인간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백종현: 자연적인 종으로서의 인간 외에도 형태나 기능상 유사한 존재, 즉 유사인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사인종과 휴먼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휴먼이 유사인종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까지만 가능합니다. 저는 인간을 넘어서는 유사인종의 출현을 과학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휴먼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휴먼의 핵심은 자율성입니다. 그런데 이 자율성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자유의 힘이지만, 그 자유의 힘은 동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찬제 교수
우찬제 교수

김기봉: 모든 시대에는 인간에 대한 개념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의 대사슬’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신과 동물 사이에 있고, 인간이 가진 신적인 능력은 이성이고, 그 때문에 인간이 땅의 지배자가 된다는 것인 인간의 코드였습니다. 그러다 르네상스에 이르러서는 신의 권위로부터 벗어나 인간 스스로가 주체가 되겠다는 노력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진화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무엇입니까? 결국은 우주의 먼지로부터 온 것입니다. 생명은 유전자 정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생물학적 유전자입니다. 또한, 인간은 문화적 유전자도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적 유전자는 내가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유전자입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정보입니다. 만물의 근원은 정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또한,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하다 보니 엄청난 일이 발생했습니다. 생명은 이제 자기복제를 하는 정보 시스템이 돼버린 것입니다. 알고리즘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로봇이 나오고 포스트휴먼이 나오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지식이 지혜를 통제할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백종현: 중요한 것은 이런 논의를 할 때 시선을 생활세계에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엄정식: 윌리엄 오그번이라는 사회학자는 ‘문화 지체’를 말했습니다. 테크놀로지는 앞서가는데 인간의 정신적 문화는 테크놀로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현상이 우리나라에 아주 심합니다. 우리는 탈근대를 살고 있는데 사고는 전근대에 머물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문학자의 사명은 문화 지체를 미리 감지하는 데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가지고 있어도 윤동주의 별, 알퐁스 도데의 별, 생텍쥐페리의 별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런 별은 눈을 감아야 보입니다.

엄정식: 로봇을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위촉할 수 있을까요? 로봇이 소설을 쓸 수 있을까요?

우찬제: 2028년이 되면 현재 수준의 대중 소설이나 장르 소설은 AI가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현재 단계에서 가장 개발됐으면 하는 로봇 중 하나는 표절을 가려줄 수 있는 로봇입니다. 그동안 세상에 나온 모든 작품을 빅데이터로 만들면 인공지능 감별사가 잡아내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은 있습니다. 빅데이터에 의해서 창안할 수 있는 예술의 형태,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마음의 숨결이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이테크를 활용해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마지막 화룡점정의 순간은 인간의 붓에 의존할 것이라는 소망을 아직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자존감의 근거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창발성, 창의성, 조금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기봉 교수
김기봉 교수

엄정식: 예술적 가치는 기계적 가치와 다릅니다. 모나리자 원화와 이 원화와 전혀 구분이 안 되는 복사판이 있다는 어떤 것을 갖고 싶을까요? 여기서 순전히 미학적 가치만 따진다면, 기계가 만든 복사판과 원화는 구분이 안 됩니다. 이런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문학의 역할과 사명은 무엇입니까? 인문학은 어떤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지 않기 때문에 늘 인문학의 위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백종현: 인문학의 핵심은 휴머니즘의 고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인문학의 위기는 존재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사적으로 지행합일은 훨씬 더 진보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명이 발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이라는 개념에 적용되는 사람 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 수는 역사적으로 계속 늘어왔습니다. 인문학은 절대 위기가 아닙니다. 포스트휴먼 시대에서는 인문학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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