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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건너편
부끄러움의 건너편
  • 조용래 교수
  • 승인 2019.04.25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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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도 기억하는 사회라야

2019년은 대단히 역사적인 해다. 우리 현대사가 1919년 3·1운동으로 출발점에 선 지 꼬박 100년을 맞았다. 3·1운동이 내세운 자주·독립과 인류공영의 평화주의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의 원형이 됐다.
 오는 11일은 상해임시정부 설립 100주년 기념일이다. 주권재민의 공화주의를 내건 임시정부의 근거도 3·1운동이다. 요즘 친일 잔재 청산이 부쩍 거론이 된다. 이 또한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3·1운동 100주년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친일 교가 청산’도 그 하나다. 연초부터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중 10곳이 교가 작사·작곡자 이력을 조사해 친일행적이 드러날 경우 교가 바꾸기를 요청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광주광역시의 K고다. 교가를 작곡한 이흥렬의 친일행적이 문제로 불거졌다.
 K고는 29년 광주학생운동의 주역이었고 이를 기리는 기념탑까지 교정에 있어 친일 교가를 방치할 수는 없었을 터다.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교가 개정에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동문들은 찬반 의견이 갈렸지만 찬성으로 기울었다. 이에 학교 측은 교가를 개정하기로 했다.
 청산은 그렇게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전혀 후련하지 않다. 되레 짠하다. 내가 K고 동문이라서가 아니다. 나는 교가 개정을 반대한다. 그렇다고 이흥렬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적폐청산에 반감이 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건 바로 기억의 문제 때문이다.
 친일 잔재는 적극 청산해야 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치욕의 역사를 바로세우겠다는 것, 부끄러운 역사에 협력했던 이들을 심판해 반민족 행위 재발방지를 천명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럼에도 기억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청산을 통해 당장은 말끔해지는 듯 하고 민족적 자부심도 커지겠지만 치욕의 역사 그 자체는 자칫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수 있다.
 청산의 핵심은 말끔히 도려내고 완전히 지우고 보이지 않게 철저하게 덮는 데 있지 않다. 부끄러운 역사, 치욕스러운 인간들까지도 끝까지 기억하는 데 있다. 예컨대 ‘내가 부르는 이 교가는 부끄럽게도 작곡한 이가 친일인사였어’라는 기억을 통해 우리는 아픔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다. 기억은 아픔을 동반하는 만큼 앞으로 바로 나아갈 길을 열어줄 터다.
 ‘3·1 독립선언서’ 초안을 만든 최남선은 해방 직후 반민특위에 체포됐을 만큼 그의 친일행각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독립선언서를 폐기할 것인가. 아니다. 위대한 독립선언서를 쓴 인물조차도 친일로 돌아선 부끄러운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노라고 아프게 기억해야 옳다.
 치욕의 역사를 도려내고 망각하기보다 부끄러움을 끝까지 기억해야 제대로 된 사회다. 3·1운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억이 먼저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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