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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 역설’에 도전한 현대 철학자들의 해법
‘거짓말쟁이 역설’에 도전한 현대 철학자들의 해법
  • 송하석 아주대 다산학부대학
  • 승인 2019.04.03 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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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 『거짓말쟁이 역설에 관한 탐구』 (송하석 지음, 아카넷, 2019.02)

이 책은 그 기원을 그리스 시대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론적 역설 중에서 대표적인 거짓말쟁이 역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사실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철학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본질적인 질문 중 하나이지만 많은 대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더욱이 20세기 타르스키가 “의미론적 진리개념”을 주장한 이후, 거짓말쟁이 역설의 문제는 다시 논리철학계의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체계화된 고전논리는 19세기 말까지 거의 유일한 연역 논리체계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고전 논리학에서 모순을 낳은 역설의 등장은 모든 문장을 참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논리체계 전체를 위협하는 일종의 암과 같은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결국 모순의 등장은 오랫동안 우리의 사고체계를 규정하는 논리체계로 받아들여졌던 고전논리학을 수정하거나, 고전 논리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전 논리체계 내에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전통적인 견해는 타르스키 자신이 제안한 언어 위계론과 러셀의 유형이론이다. 그들은 역설의 원인을 거짓말쟁이 문장의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 또는 순환성(circularity)에서 찾으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 언어의 위계 또는 유형을 구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논쟁적이기는 하지만 문장의 자기 지시성이나 순환성은 역설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고 이 책도 그런 견해를 취하고 있다. 이 책의 본론은 언어의 위계론을 통해서 거짓말쟁이 역설의 해결을 시도한 현대적인 견해인 맥락주의에서 시작하여 20세기 말부터 최근까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견해인 초완전성 견해와 초일관성 견해에 대해서 검토하고 각 견해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제시한 다음, 치하라, 굽타와 벨납 등으로 대표되는 진리에 관한 비일관성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 타르스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 타르스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타르스키의 견해를 발전시킨 현대의 맥락주의가 기본적으로 고전 논리학을 고수하면서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언어의 장치를 제한하려는 시도라면, 초완전성 견해와 초일관성 견해는 고전 논리체계를 수정하는 방안을 채택하는 견해이다. 크립키로 대표되는 초완전성 견해는 고전 논리학의 기본법칙 중 하나인 배중률의 일반적인 타당성을 거부하고 거짓말쟁이 역설을 낳는 거짓말쟁이 문장은 참도 거짓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프리스트로 대표되는 초일관성 견해는 무모순율의 일반적인 타당성을 제한한다. 즉 초일관성 견해는 거짓말쟁이 문장을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인 문장이라고 봄으로써 역설을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고전 논리학의 법칙을 제한하여 거짓말쟁이 역설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성공적이지 못함을 논증하고 역설에 관한 비일관성 견해를 옹호한다. 일상 언어, 특히 진리 개념이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없이 사용될 수 있지만 특이한 경험적 상황에서는 모순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 즉 진리 개념이 불가피하게 모순을 낳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진리 개념의 비일관성을 인정하고 그것이 바로 거짓말쟁이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라고 보는 비일관성 견해가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한 가장 받아들일 만한 견해라는 것이다. 특히 굽타와 벨납의 “진리 수정론”의 관점에서 고전 논리학을 수정하려는 시도가 성공적이지 않음을 논증하고, 역설과 같은 병리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진리 술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를 통해서 그 술어가 문제를 낳은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결론적으로 언어와 진리 개념에 대한 일관성론은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한 적절한 해결방안이 될 수 없고, 거짓말쟁이 역설과 관련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진리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직관을 보존하면서 진리개념이 역설을 낳는 이유를 파악함으로써 역설을 낳는 병리적인 문장의 행태를 이해하는 것 이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의미론적 역설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저서는 물론 논문도 그렇게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은 타르스키 이후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거의 모든 견해들을 정리하여 소개하고 각각의 견해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이 의미론적 역설에 대한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저자가 갖는 소망은 이 책이 의미론적 역설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하는 자극과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송하석·아주대 다산학부대학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클레어몬트대학에서 진리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리더를 위한 논리훈련』, 『철학의 숲, 길을 묻다』, 『철학의 숲, 길을 열다』(공저)가 있으며, 역서로는 『언어, 논리, 진리』, 『정신병리학총론 1~4』, 『논리학의 역사 1, 2』(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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