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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빼앗긴 시간강사, "내가 설 곳은 어딥니까"
시간을 빼앗긴 시간강사, "내가 설 곳은 어딥니까"
  • 교수신문
  • 승인 2019.03.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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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_위기의 인문학] 새 학기는 왔는데 … 캠퍼스엔 슬픈 절규
전국대학강사노조, 전국대학원생노조,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강사법 개선안 국회통과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전국대학강사노조
전국대학강사노조, 전국대학원생노조,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강사법 개선안 국회통과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전국대학강사노조

바닥이 흔들리고 있다. 강사법을 빌미로 한 대학들의 구조조정 계획이 드러나면서 학문후속세대인 강사들이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팽배한 가운데 강사들의 이른바 ‘연구 안정망’의 뿌리가 뒤흔들리고 있는 것을 넘어 인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교양 이론 수업들이 새 학기에 접어든 현재도 말라가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강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정도를 지나 결국 국가 전체의 지적 수준을 낮추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지적도 일고 있다.

한국대학학회가 발행하는 <대학: 담론과 쟁점> 2019년 제1호에서 김어진씨(경기대 해직강사)는 ‘분노의 강사들, 멸종 직전의 외침일 뿐인가?’라는 글을 통해 “교양 이론 수업은 말라가는 나머지 이제는 멸종 위기에 있다. 돈 되는 학문, 좀 교양 있게 표현해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융·복합적 창의적 수업들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 당국들은 강의시수 축소를 강요하면서 응하지 않을 경우 다음 학기 강의 배정을 취소한다고 협박하는 사례도 있었다. 김씨는 “설문조사로 확인된 강의 폐강, 대형 강의, 온라인 강의 증가, 수강 인원 확대 사례는 모두 시간강사 대량 해고의 결과”라며 “규모가 작은 지방의 한 시립 대학은 모든 교양 강의가 온라인으로 대체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강사법이 낳을 재정부담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재정이 열악한 대학들뿐 아니라 돈이 많은 대학들도 강사를 해고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시간강사 대량해고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 자체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9년 1학기 학부생 대상 강의가 200개 이상 줄어들었다. 재단 적립금 4000억 원을 축적하고 있는 고려대의 경우 개정 강사법 적용 시 추가 비용이라는 55억 원은 고려대 연간 총수입의 0.8%에 불과하다.

기업 맞춤형 인재 육성이 강조되면서 지난 10년간 인문·사회 계열 입학정원은 1만 명 가량 줄어들었다. 김씨는 “인문, 사회, 자연, 예술 계열의 학생들에게는 학과 통페합 때문에 자신의 학과가 없어질 수 없다는 불안이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악덕 기업 보다 더 한 기업이 바로 대학이라는 자조적인 말은 이제 농담이 아니다”라며 “구성원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학내 민주주의는 후퇴를 거듭해 왔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시간강사 대량해고는 대학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수익형 교육기관’으로 만들려는 한국 자본과 국가의 지배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일종의 ‘레고’로 보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씨는 “여기서 지배 전략은 아마도 고등교육의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고전적 이론, 방법론, 철학, 다양한 언어수업, 글쓰기 수업, 토론, 소통 등은 이제 수익이라는 이름 하에 모듈화되지 않으면 아마 대학에서는 매우 거추장스러운 그 어떤 것이 될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정부는 계속해서 대학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비정규직 교수들은 8월 강사법 시행에 따라 신규채용 절차를 시작하는 5~6월에는 더 큰 대량 해고의 칼바람이 닥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박치현씨(교원대 박사후 연구원)은 같은 저널에 실린 글에서 “현재의 한국 대학에서는 분화된 학문 체계 속에서도 순수 기초학문을 지탱해주는 ‘배분 체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사회학자 탤콧 파슨스의 논리와는 반대의 논리가 강화되고 있다”며 “대학은 이제 동료적 연대보다는 봉건적인  ‘갑을’ 관계와 시장적인 ‘하청’ 관계로 얼룩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 인문사회과학은 불가능하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소외된 학문은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씨는 “강사들은 대부분 젊은 신진 연구자들이기 때문에 시간강사를 해고가 용이한 대학의 부품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학문후속세대, 즉 미래 학문 생산자로 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개정 강사법 통과로 어찌 됐든 강사들에게는 법적인 ‘교원’ 지위가 주어졌다. 박씨는 “앞으로 대학에서 온갖 반학문적인 조치들이 취해질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정부와 국회의 충분한 예산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무엇보다 교육부의 대학에 대한 평가와 감시가 진행된다면 정리해고는 최소화될 수 있다”며 “2019년 1학기 동안의 교육부의 태도는 수많은 강사들의 운명을 판가름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 강사법 관련 구조조정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도흠 한양대 교수는 “지금 대학은 시장과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지성의 전당이 아니라 이에 완전히 포섭되어 돈을 섬기는 신전으로 변했다”며 “사람답게 사는 도리나 본원적 진리를 가르치는 강의는 거의 폐강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대학은 진리탐구의 도량과 비판적 지성의 보루, 학문공동체로서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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