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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도 모두 '희망의 새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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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진우 기자
  • 승인 2019.03.25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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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과의 이별 _ 김우조 명예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 김우조 교수가 2014년 인도 정부로부터 공로상을 받고 있는 모습.
▲ 김우조 교수가 2014년 인도 정부로부터 공로상을 받고 있는 모습.

21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연구동 301호에서 만난 김우조 교수(아시아언어문화대학 인도어과)는 원고 한아름과 씨름 중이었다. 인도 시집 출간 위한 교정 작업이었다. “우리 과에는 정년을 맞는 교수가 책 한권 출간하는 전통이 있어요. 인도 네루대학교 유학 당시 스승이신 께다르나트 싱 선생님의 시집을 내려하는 데 감사하게도 이 안에 유학 시절 은사들의 이름이 모두 담을 수 있게 됐어요.”

비온 뒤 맑아진 하늘처럼 상쾌한 목소리는 쾌활함까지 묻어 있었다. 대화 내내 자신감 가득한 모습에서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라는 말보다 시대 중심을 잡고 우뚝 선 학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려 보였다. 강단에 서게 되는 후배 교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분명했다. 선배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계승’을 이야기했다. 그러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계승을 통한 성장을 독려한 것이다. 정도를 걷고 원칙을 지키라는 당부도 곁들였다. “계획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연구 또한 마찬가지죠. 또 선배들의 이뤄놓은 작업과 성과를 토대로 더욱 높이 올라야 합니다. 나를 발판삼아 밟고 올라섰으면 합니다. 선배들의 성과를 깨뜨려버리고 큰사람이 됐으면 하는 마음 뿐이죠.”

조언에 김 교수의 쉽지 않았던 학자의 발자취가 오버랩된다. 김 교수는 한국외대 72학번으로 인도어과 1회 졸업생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입학했고, 가르칠 준비가 되지 않은 신설과에서 얻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인도어과 지원은 이화여자고등학교 시절 은사이신 한인섭 선생님 영향이 커요. 당시 선생님은 앞으로 여성들에 많은 기회가 올 것이라며 대학을 지원할 때 신생과를 선택하라고 하셨죠.”

기대와 달리 캠퍼스에서의 배움은 미약했다. 신설학과여서인지 힌디어를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 학문의 갈증에 인도 유학을 결심했다. 유학길에 오르기까지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국비유학생 2명을 선발했는데 남학생만 뽑았다. 성적 아닌 성별로 탈락하자 마음을 다잡았다. 당시 교수로 재직하던 인도 여교수 도움으로 인도 총리에게 편지를 썼다. 공교롭게도 당시 인도 총리는 여성인 인드라 간디였고, 인도 정부 요청에 국비유학생으로 추가 선발될 수 있었다.

유학길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힌디어 문자부터 하나하나 다시 익혀야 했다. 열악한 국내 힌디어 교육 시스템 탓이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배움을 갈구하며 나날이 성장했다. 국립힌디어연구소에서 본격 수학했고, 네루대학교에서 석사를, 비쉬버 바라티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모교에서 후학 양성과 학문탐구, 발전에 헌신하다 정년을 맞는다. 오는 28일 한국외대 교수회관에서 38년 교직 생활을 정리하는 정년퇴임식을 갖는다. “81년 처음 강단에 섰을 때 제자들이 기억에 남아요. 젊은 여교수라고 남학생들이 기싸움을 걸어와 힘들기도 했지만 지나보니 그네들이 내 첫 사랑이었어요.”

김 교수는 국내 인도어 교육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한국외대를 넘어 2002년 서울대학교에 처음 인도어 강좌를 개설했을 뿐 아니라 2011년 교육방송 EBS를 통해 대중에 인도어 교육을 선보였다. 김교수가 2002년 출간한 ‘힌디어 입문’은 지금도 인도어를 공부하려는 학생들의 바이블로 꼽히고 있다. “‘힌디어 입문’ 개정판을 내보려고 해요. 이번에는 젊은 교수와 공저로 하려고요. 그 교수가 언제가 후배 교수와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작업이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네요.”

인도 현지에서도 김 교수에 대한 존경이 이어진다. 2014년 힌디어교육과 인도 문화 연구 및 소개 공로를 인정받아 인도정부가 주는 공로상을 받았다. 앞선 2011년에는 인도 정부가 외국인 힌디어학자에게 주는 조지 그리어슨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좋은 곳에서 공부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책들을 접할 수 있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어요. 그 덕에 상을 받았네요”며 겸양의 말을 더했다. 하지만 지금도 중국 베이징대학이 초빙 의사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김 교수의 가치를 방증한다. 김 교수는 2000년 베이징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김 교수가 더욱 빛나는 건 더욱 활발한 활동을 앞두고 있어서다. 그는 다음달 네이버를 통해 힌디어 강의에 나선다. 힌디어 시를 번역한 뒤 유튜브를 통해 대중에 알릴 계획도 가지고 있다. 저술 활동과 연구 활동 역시 지속할 생각이다. “교수직을 그만 둔 뒤 연구를 멈추거나 책을 멀리 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어요. 정년을 맞으면 오히려 공부와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거 아닌가요. 인문학 전공자들에게는 더욱 무르익고 꽃피울 수 있는 시간일 텐데 한국에는 그런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아쉬움이 크죠.”
“배움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김 교수의 소망은 매순간 이뤄지고 있다. 노력을 자양분삼아 소망의 망울을 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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