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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 밖의 사람들
城 밖의 사람들
  •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대학·철학
  • 승인 2019.03.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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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현대중국의 작가이자 학자인 첸중수(錢鍾書)의 작품 중에 『포위된 성(圍城)』이란 장편소설이 있다. 1947년 초판이 발행되었으니, 이미 반세기가 지난 소설이다. 2000년대 초반 중국에선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지만, 우리에겐 전공자를 제외하곤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이다. 유학 시절 읽었던 이 책이 새삼 떠오른 데엔 얼마 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드라마의 제목이 ‘스카이 캐슬’이었던 까닭도 있고, 최근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이 이 책의 내용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1937년 상하이를 배경으로 팡홍젠(方鴻漸)이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城이라는 상징 공간을 이용하여 당시 중국의 대학과 지식인 군상을 신랄한 비판과 풍자로 그려낸다. 이 책의 제목 ‘圍城’은 프랑스 말 ‘포르트레세 아씨에게(fortresse assiegee)’에서 온 것으로 ‘성 밖의 사람들은 들어가고 싶어 하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뛰쳐나오고 싶은’ 상황을 가리킨다. 팡홍젠이 가짜 학위증을 사서라도 들어가고 싶었던 성 안의 모습은 막상 그 속에 있는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확인하는 순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으로 바뀐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우리 사회에 화제가 됐던 이유는 부모의 욕망에 따라 교육되는 아이들의 모습과 이제 대학입시마저 철저히 자본의 힘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한 아버지의 직업은 대부분 교수였는데, 그 분야가 의대나 로스쿨로 모두 잘 나가는 전공들이었다. 드라마 작가나 시청자들 역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강의하는 교수들이 ‘캐슬’에 들어가긴 어렵다고 보았을 것이다. 말 그대로 피라미드 최상층에 속한 그룹의 이야기인 셈인데, 드라마에 나온 가장들의 모습은 약간의 희극적 과장은 있었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 교수들은 가부장적 권위와 위선적 태도의 전형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 교수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묵묵히 학문과 교육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연대와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렇게 불평등이 극심한 그룹도 드물 것이다. 서울과 지방, 전공별로 그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정년제 교수 트랙과 비정년 트랙, 그리고 시간강사와의 차이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이다. 정년이든 비정년이든 일단 전임교수의 타이틀을 받은 경우는 같은 성 안에 있는 처지일 터인데, 우선 눈에 띄는 연봉 차이가 대략 두 배쯤이다. 대개 정년트랙으로 임용된 신규 교수의 평균 연봉이 7천만 원 정도인 데 비해, 비정년 트랙의 경우는 대학별로 다르긴 하지만 3천 5백에서 4천만 원 사이이다. 이는 연봉만을 단순 비교한 것으로 책임시수, 연구년, 상여금 등을 비교항목에 포함하면 실제 차이는 4배 정도로 벌어진다. 동일한 공간에서 똑같은 노동에 종사하고 직급이 같은데, 25%의 급여를 받는 업종이 많진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들이 말하는 ‘정의’나 ‘공감’이 얼마나 진실성을 가질 수 있을까.

城 안의 상황이 이러한데, 그 바깥에 있는 강사들의 처지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교원으로 최소한의 신분과 수입을 보장하는 강사법이 오히려 숱한 강사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현실은 자본과 시장으로 포위된 대학의 위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城 밖의 그들이 스러지면, 성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더 늦기 전에 교수사회가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대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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