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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철학이 '예술'에 관해 말하다
분석철학이 '예술'에 관해 말하다
  • 이윤일 가톨릭관동대 VERUM 교양대학
  • 승인 2019.03.25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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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예술철학』(노엘 캐럴 지음|이윤일 옮김|도서출판b, 2019.02)

이 책은 노엘 캐럴(Noel Carroll, 1947~ )의 Philosophy of Art: A Contemporary Introduction (Routledge, New York, 1999)을 번역한 것이다. 노엘 캐럴은 현재 미국을 대표해서 현대 예술철학과 미학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중요한 미국 철학자이다. 지적인 관심이 넓어 예술철학뿐만 아니라 영화 철학, 역사 철학, 미디어 이론, 저널리즘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미국 철학자로서 노엘 캐럴은 당연히 영미 철학의 전통에 속해 있으므로, 그의 『예술철학』도 충실하게 분석철학의 방법론에 따라 서술되어 있다. 분석철학의 목표가 언어 분석을 통한 사고의 명료화에 있는 만큼, 이 책의 주요 목표도 예술 개념에 대한 언어적 분석을 일차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사용된 주된 방법은 예술이 무엇인가를 밝혀내기 위해 예술 개념을 정립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캐럴은 이 책의 제목을 ‘예술 분석철학’이라고 붙여도 무방했을 것이라고 본다.

이 책은 다섯 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 그 중 앞의 네 개 장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들 각 장의 1부는 다양한 예술 이론들을 개관한다. 이 이론들은 예술에 대한 본질적 정의를 찾으려는 이론들로서, 각각 재현적 예술 이론, 표현 이론, 형식주의 이론, 그리고 예술에 대한 심미적 정의를 포함한다. 그리고 이들 각 이론의 특색과 결점이 길게 논의된다. 마지막 5장은 예술 개념을 본질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열린 개념으로서의 예술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캐럴은 이 이론도 예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본다. 대신 캐럴은 다시 본질적 정의를 통해 예술을 정의하려는 가장 최근의 이론들인 예술 제도론과 역사적 예술 정의를 검토해 보지만, 이런 이론들도 얼마간 약점을 노정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긴 논의 끝에 캐럴은 최종적으로 자신이 개발한 역사적 서술 방법이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해주는 신뢰할 만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노엘 캐럴.   사진=위키피디아
노엘 캐럴. 사진=위키피디아

한편 캐럴은 1장~5장의 2부에서, 예술을 정의하는 데 사용되어 온 재현, 표현, 형식, 심미적 경험 등과 같은 개념들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많은 예술작품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고 있고, 또 그 자체만의 철학적 분석을 허락한다는 점에서, 이런 개념들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단행하고 있다. 1부의 글쓰기 스타일이 비판적인 시각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면, 2부의 글쓰기 스타일은 생산적이고 구성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 이 두 스타일이 잘 어우러져 역작의 품위를 배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예술철학 관련 서적들을 살펴보면, 주로 유럽 대륙 철학자들의 개인적인 예술 사상을 소개하거나 미학사를 다룬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이 한 개인의 경향성이 짙게 드리운 어느 한 미학 사상에만 경도되어 있는 단점이 보인다. 헤겔 류의 내용 미학이든가, 루카치 류의 생산 미학이든가, 칸트 식의 형식 미학이든가, 해석학적 수용 미학이든가 또는 현상학적 영향 미학 중 어느 한 범주에만 국한되었던 것이다. 물론 유럽 대륙 쪽의 예술 철학은 우리들의 심미안을 만족시키고 내밀한 감정에 호소하여 심리적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장점도 있어서, 대중적으로 성공하여 유행을 타는 면도 있기는 하지만, 예술 철학 전반에 대한 투명한 개념 지도를 그려내는 데에는 늘 방법론상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반면에 분석철학 방법론을 통해 접근한 예술 철학의 강점은 어느 한 미학적 관점이 전체적인 전망 속에서 어느 위치를 점하고 있고, 어떤 장단점들을 지니고 있는지를 명쾌하게 해명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노엘 캐롤의 이 저작은 특히 예술 철학에서 사용되어 온 주요 개념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통해 우리에게 불투명하게 남아 있었던 ‘예술’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고 있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학문적으로 한쪽만 편식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번역 작업에 임하였다. 예술 관련 개념들을 놓고 개념적 명료성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즐거운 독서 여행이 되시기를!
 

이윤일·가톨릭관동대 VERUM 교양대학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의미, 진리와 세계』, 『현대의 철학자들』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철학적 논리학』, 『마이클 더밋의 언어철학』, 『진리와 해석에 관한 탐구』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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