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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혁명' … 68의 상상력이 필요한 모순과 갈등의 시대
'끝나지 않은 혁명' … 68의 상상력이 필요한 모순과 갈등의 시대
  • 정대성 부산대 역사교육과
  • 승인 2019.03.25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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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_ 『68혁명, 상상력이 빚은 저항의 역사』(정대성 지음|당대,2019.01)

68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이미지는 실로 다면적이었다. 록 밴드 비틀스는 1968년에 「혁명」이란 곡에서 “우리 모두 세상을 바꾸려 한다”고 노래했고,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는 지미 헨드릭스가 미국 국가(國歌)를 기관총 소리와 폭발음을 방불케 하는 기타로 난도질하며 베트남전 반대의 분노를 연주했다. 이렇게 문화적인 저항의 향연과 뒤섞이며 삶의 구석구석을 뒤흔든 68혁명의 모자이크에는 미국 시민권 운동과 독일의 ‘부활절 봉기,’ 프랑스의 ‘불타는 5월’의 바리케이드,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도 더해진다. 저항의 불꽃은 동구로 번져가 ‘프라하의 봄’을 꽃피우고, 일본 학생운동과 중국 문화혁명의 봉우리도 68이라는 거대한 산맥의 일부를 구축했다.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흑인 선수가 검은 장갑의 주먹을 치켜들며 미국 내 인종차별을 만방에 고하고, 서구 대도시들은 세계적인 저항의 공통 이슈였던 베트남전 반대 시위 물결에 거세게 휘말린다.

68혁명은 기존 혁명이나 격변과는 양상이나 성격이 사뭇 달랐다. 그것은 ‘새로운 문화혁명’이었다. 베트남전과 인종차별이 횡행하는 기성 정치, 권위주의와 구태에 물든 기성 제도에 맞서는 거리의 저항과 시위가 하나의 얼굴이었다면, 새로운 삶과 정치를 일상생활 속에서 실험하는 다채로운 문화적 기획과 행사는 68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그래서 반전시위가 록 콘서트와 어우러지고 거리연극이 거리시위와 뒤엉킨다. 이렇게 만화경처럼 다면적인 68의 해방적 기획은 정치와 삶이 서로 어깨를 겯고 문화와 정치가 하나로 만나는 일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정치의 의미를 새로이 일깨우는 ‘일상의 혁명’일뿐더러, 개인적 해방과 집단적 해방을 동시에 겨냥한 ‘새로운 변혁’이었다.

독일 68 당시 사위 장면.   사진=필자 제공
독일 68 당시 사위 장면. 사진=필자 제공

 이처럼 세계적인 저항이자 일상의 혁명인 68은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시작된 촛불시위 속에서 우리 현실과 인식 속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아래로부터의 자발성과 문화적 축제가 뒤섞인 촛불시위가 68의 형상과 닮았음이 지적되었다. 실제로 촛불이 저항을 발하고 정의를 밝히는 상징으로 주먹과 나란히 처음 솟아오른 것도 1968년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에서였다. 2016년 대한민국을 뒤덮고 뒤흔든 새로운 촛불의 바다 속에서 68혁명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2018년 발발 50주년을 맞으며 국내에서도 서양사학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68 관련 학술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68혁명은 알려진 만큼이나 오해와 논란의 대상이다. 68은 ‘문화’혁명으로, 정치적으로는 별다른 여파를 낳지 못했다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한편 유럽 68은 천만 노동자의 파업으로 불타오른 프랑스 ‘파리의 5월’에서 퍼져나간 것으로 보지만, 앞선 1967년 여름 독일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이듬해 68년 4월, 운동의 아이콘 루디 두치케에 대한 암살 기도로 폭발한 독일의 ‘부활절 봉기’는 한 달 뒤 ‘파리의 5월’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이 책은 ‘문화혁명’을 다룬 장을 제외하면 주로 독일 68에 집중한다. 책은 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다. 즉 민주주의 위기와 새로운 문화혁명을 보여주는 <68의 직접행동과 문화혁명>을 비롯해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이 중심인 <68과 언론>, 혁명의 아이콘과 순교자를 다룬 <68의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 뉴라이트 정당의 재등장을 전경으로 하여 68을 둘러싼 치열한 쟁점과 논쟁을 다룬 <68, 그 이후의 배경과 논쟁>이라는 4부로 구성된다. 이런 책의 흐름은 68의 다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사실 68은 단순한 ‘문화적인’ 혁명에 불과하지 않았다. 즉 68의 문화‘혁명’은 의례적인 투표행위에 갇힌 의회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정치의 의미를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확장함으로써 정치와 일상의 분리를 뛰어 넘는 혁명적 기획이었음을 보여준다.

독일 68의 아이콘 루디 두치케.    사진=필자 제공
독일 68의 아이콘 루디 두치케. 사진=필자 제공

물론 68은 고전적인 의미의 혁명은 아니었다. 그런데 혁명이란 개념을 정치적 전복이나 체제의 전환과 직접 연결하려는 발상법에서 한 발 물러서면, 68은 ‘진정한’ 혁명이었다. 일상을 포함하는 사회 전 영역의 위계와 권위에 도전해 새로운 삶의 편재를 꿈꾸고 실험한 혁명으로, 모순과 불의와 불평등에 맞서는 궐기 속에서 삶의 조건과 지형을 뒤흔들어 새로운 사회의 지평으로 한 걸음 훌쩍 나아갔던 때문이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한 ‘해방의 상상력’을 한 뼘 확장한 68의 혁명적 기획은 결코 완성되지 못했기에, 아직 ‘끝나지 않은 혁명’으로 불러야 한다. 오늘날 무수한 모순과 갈등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우리도 68의 상상력이 필요할지 모른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다시 역사 속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길어 올려야 할 것이므로. 그리하여 다시금 ‘상상력에 권력을!’

정대성·부산대 역사교육과

부산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대학에서 68혁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Der Kampf gegen das Presse-Imperium: Die Anti-Springer-Kampagne der 68er-Bewegung』과 『철학, 혁명을 말하다 - 68혁명 50주년』(공저), 『1968 · 저항과 체제 비판의 역동성』(공저)이 있으며, 역서로는 『68운동 · 독일, 서유럽, 미국』과 『68혁명, 세계를 뒤흔든 상상력』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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