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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시민종교들의 드라마틱한 경합의 역사
대한민국 시민종교들의 드라마틱한 경합의 역사
  • 강인철 한신대 · 종교문화학과
  • 승인 2019.03.20 0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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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시민종교의 탄생』,『경합하는 시민종교들』 (강인철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9.01)

1967년에 UC 버클리 사회학과의 로버트 벨라 교수가 두 세기 전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선보였던 시민종교(civil religion)라는 용어를 창의적으로 부활시킨 지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다. 권규식, 김종서, 김문조 교수가 1980년대 중반에 시민종교 개념과 논쟁을 한국에 소개한 지도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한국 학계에서도 관련 연구들이 40편 가까이 쌓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 개념이 우리에게 충분히 친숙해졌다고 말하긴 여전히 어렵다. 기존 논의들을 면밀히 참조해서 나는 시민종교를 다음과 같이 새로 정의했다: “한 사회를 통합하고, 도덕적으로 결속시키며, 그 구성원들에게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정체성을 제공하는, 그러면서 어느 정도 성스럽게 여겨지거나 최소한 존중의 대상이 되는, 폭넓게 공유되고 합의된 가치 및 신념 체계 그리고 그와 연관된 상징, 신화, 의례, 실천, 장소, 인물들의 체계.” 시민종교 개념은 국민 형성과 국가 형성, 단단하고 심층적인 사회적·정치적 통합, 대중의 자발적 동의에 기초한 헤게모니적 지배 등의 현상을 분석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반면 종국엔 정치적 보수성으로 이어지기 쉬운, 사회통합에 대한 과도한 관심, ‘한 사회에는 오직 하나의 시민종교만이 존재한다’고 암암리에 가정하는 그릇된 경향(1사회 1시민종교 가설), 시민종교의 존재를 당연시하거나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처럼 가정하는 경향 등은 기존 시민종교 연구에서 종종 드러났던 문제들이었다. 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갈등적 (재)구성주의 접근’을 제안했다. 이 접근은 시민종교의 다기능성, 시민종교의 상대적 자율성과 초월성, ‘두 개의 시민종교’ 테제로 대표되는 시민종교의 복수성, 시민종교의 역사적 기원으로서의 정교분리(政敎分離)와 세속국가 출현, 시민종교의 역동성과 역사적 가변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시민종교의 역사적 기원을 민족주의나 국가·민족의 등장이 아닌, 정교분리-세속국가 출현에서 찾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근대 이전의 정교융합 시대에는 국가종교가 국가·지배층의 성화(聖化)를 통해 사회통합과 정치적 정당화라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시민종교는 근대적 정교분리를 통해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진정한 세속국가’의 산물이다. 국가종교의 직접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근대적 정교분리 시대에는 사회통합과 지배체제 정당화를 위해 ‘세속적 형태의 국가적 성(聖)체계’인 시민종교의 존재가 불가결하다.

▲ 해방정국의 극심한 좌우대립.  출처=성균관대학교출판부
▲ 해방정국의 극심한 좌우대립. 출처=성균관대학교출판부

한국에서는 식민지 해방 이후 시민종교가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시민종교의 최대 동력원이 민족주의였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엘리트 출신들이 한국 시민종교 형성 과정을 주도함으로써 ‘시민종교의 취약성’이 두드러졌다. 이 취약성은 ‘시민종교의 잦은 균열과 해체 현상’으로 현실화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시민종교가 사회통합의 문화적·도덕적 기초로 기능하기보다, 사회 분열과 대립의 기제로 작동하는 경향이 강했다. 해방 후 남한에서 본격적으로 형성된 ‘대한민국 시민종교’는 민족주의, 반공주의, 자유민주주의, 친미주의, 발전주의를 5대 핵심 교리로 삼는 ‘반공-자유민주주의 시민종교’로 첫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다 분단체제를 배경으로 남한의 반공-자유민주주의 시민종교와 북한의 반미-사회주의(주체주의) 시민종교 간 대립이 중첩되었다.

▲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촛불과 태극기의 대결.  출처=성균관대학교출판부
▲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촛불과 태극기의 대결. 출처=성균관대학교출판부

한국전쟁 이후, 그리고 군사쿠데타 이후 반공-자유민주주의 시민종교의 다섯 기둥 중 반공주의와 친미주의는 과잉인 반면,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런 상황은 시민종교에 대한 ‘지배층의 배교(背敎)와 일탈’로 간주되어, 시민종교 내 ‘예언자 진영’의 거센 저항을 초래했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공격한 유신시대 이후 반공-자유민주주의 시민종교는 수십 년에 걸쳐 ‘반공-국가주의 시민종교’(사제 진영)와 ‘민주-공화주의 시민종교’(예언자 진영)로 점차 분열되어왔다.

2016년 가을부터 태극기와 촛불의 격렬한 대립으로 표출된 양극화된 정치문화, ‘두 대한민국’ 현상의 저변에는 적대하는 두 시민종교 간의 갈등이 작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아래서 남한 내 두 시민종교의 갈등이 어떻게 진행될지, 2018년 이후의 한반도 해빙이 남-북 시민종교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언젠가 현실화될 ‘통일 코리아’의 시민종교는 과연 어떤 모습을 취할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강인철 한신대·종교문화학과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한국의 종교정치, 종교사회운동, 종교권력, 개신교 보수주의, 종교와 전쟁, 군종제도 등을 탐구해왔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시민종교 연구에 주력하여 2019년 1월 말 동시 출간한 <시민종교의 탄생>, <경합하는 시민종교들>, <전쟁과 희생: 한국의 전사자 숭배>는 ‘한국 시민종교 3부작’을 이룬다. 그 외에 <종교와 군대>, <종교권력과 한국 천주교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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