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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으면서도 할 일 있는 나라
맑으면서도 할 일 있는 나라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3.20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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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2)

미세먼지 저감 조치라는 국민적 위기감이 주는 강제성에 편승하여 차를 버리고 걸어서 출근하였더니, 주야장천(晝夜長天) 걸어 다니던 예전 생각이 새롭다. 스마트폰 앱도 없던 시절이라서 손 플래시와 머리 플래시를 군인이나 광부처럼 들거나 걸치고 다녔다. 산으로 들로. 역시 걷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가 나왔나보다. 소요(逍遙)라는 말은 비록 장자에서 나왔지만.

찬바람 덕분에 미세먼지가 없어져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본다. 20여 년 전 중국 심양대학의 교수가 서울의 하늘을 보면서 ‘참으로 공기 좋다’고 감탄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한 적이 있는데, 이제야 그 마음을 제대로 알겠다. 그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서울 공기가 좋으면 (내가 사는) 청주 공기 맡아보면 기절하겠네.’

그러나 정말 속상한 것은 이제 대도시건 농촌이건 할 것 없이, (초)미세먼지에는 방도가 없이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도시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셔츠를 입고 나가도 하루 만에 목 주위가 새까맣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점에서 공해로부터는 탈서울이 정답이었는데, 이제는 무차별 폭격이니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공기와 편의를 바꿨는데, 편의와 바꿀 그 무엇이 사라지고 말았다. 특정계절에 한하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산동(山東) 냄새를 맡았다. 뿌연 하늘, 탁한 공기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였다. 중국 냄새라고 감히 부를만한 것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중국에서 공해가 가장 심한 데는 양자강의 습기와 산악지형 때문에 바람이 통하지 않는 사천의 충칭(重慶)이었지만, 그리하여 훠궈(火鍋)는 좋지만 살기는 꺼려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중경이었지만,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비슷한 냄새를 맡아야 했다. 중경보다는 심하지 않지만, 그런 대로 희석된 산동의 냄새를 맡으면서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니.

오래전 포항제철 완공식에서 우리나라의 수반은 ‘이 하늘이 시꺼먼 연기로 뒤덮일 때 조국근대화는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늘 하늘을 바라보며 떠오른 선택지는 내 개였다.

첫째, 맑지만 할 일 없는 나라.
둘째, 맑지 않지만 할 일 있는 나라.
셋째, 맑지도 않고 할 일도 없는 나라.
넷째, 맑으면서도 할 일 있는 나라.

조국근대화를 꿈꿨던 대통령은 첫 번째 나라를 원망했다. ‘하늘이 맑으면 뭐하나, 먹고 살게 있어야지.’ 이게 그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두 번째 나라를 바랬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리 맑아도 할 일이 없으면 참으로 암담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청년들은 할 일이 없는 나라에서 살기는 해도 맑은 나라에서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적어도 세 번째 나라는 아니고, 뒤로 되돌아갈지라도 첫 번째 나라만큼은 보장된 것으로 보였다.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빼앗아가더라도, 하늘만큼은 맑을 줄 알았다. 할 일은 없고 주머니는 가벼워도, 국가나 대기업이 맑은 하늘만큼은 보장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자꾸만 우리나라가 세 번째 나라에 가까워지고 있다. 네 번째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행여나 그 나라는 ‘어디에도 없는 나라’(유토피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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