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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왜곡 당했다"
"칸트가 왜곡 당했다"
  • 이충진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19.03.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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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철학계 한국 전래 100년에 해석 논쟁

국제관계의 윤리를 전쟁의 패러다임으로부터 법적 평화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이마누엘 칸트의 저작 <영구평화론>의 해석을 둘러싸고 학계의 논쟁이 활발해지고 있다.  <교수신문>은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폭력의 관점에서 조명한 입장에 대한 한성대 이충진 교수의 반박문을 싣는다.  이 교수는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칸트 전집 번역을 주도하기도 했다.

18세기 서양의 철학자 칸트는 그의 나이 72세에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 하나의 철학적 기획>이라는 작은 책을 발표했다. 이후 사람들은 그것을 <영구평화론>이라 줄여 부른다. 얼마 전(2019.02.16.) 민족미래연구소 김창훈 연구실장은 이 책에 대한 자신의 ‘견문록’에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왜 폭력적인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또 ‘왜’에 대한 긴 설명을 토대로 그는 칸트를 ‘자유주의 제국주의’의 이론가로 평가하기도 했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은 이 기사를  ‘프레시안 PICK’, 즉 “언론사가 선정한” 기사로 지면에 발표했다.
나는 칸트에 대한 김창훈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영구평화론>에 대한 그의 설명에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견문록’ 전반부에 등장하는 칸트는 내가 아는 칸트가 아니며, 아마도 대부분의 칸트 연구자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후반부에 그가 재구성하여 제시한 ‘칸트’ 역시 오해이거나 왜곡된 것이며, 그것에 대한 그의 “비판적” 논의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는 그의 주장을 논박함으로써 칸트에게 부당하게 씌어진 ‘폭력적’이라는 인상을 거두고자 한다.

첫 번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칸트는 평화의 제1 조건으로 ‘개별 국가는 공화정 체제여야 한다’라는 점을 제시했다. 칸트의 공화정 체제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칸트의 공화정 체제는 전 세계의 국가들을 자유민주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로 구분하도록 만들었고 나아가 후자에 대한 전자의 정치적·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여지를 제공했다. 그와 같은 사실 인식과 규범적 판단의 배후에는 물론 전자가 후자보다 우월하다는 가치판단이 놓여 있으며, 이것 역시 칸트의 입장에 상응한다.

▲ 칸트 초상화
▲ 칸트 초상화

그에 대한 나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이곳에서 말하는 공화정 체제를 칸트는 “법개념의 순수한 원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풀어 말하자면, 공화정 체제는 순수 이성이 우리 인간에게 제시한 이성적·합리적 국가를 지칭한다. 아마도 플라톤이라면 국가의 이데아라고 불렀을 듯하다. 칸트의 공화정 체제는 이성의 사유물(이념)이며, 이 이념은 현실에 존재하는 다수 국가들의 국가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이러한 규범적 평가의 결과는 물론 다수 현실 국가들의 분류와 서열화이다. - 국가다움을 더 많이 갖춘 국가(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그렇지 않은 국가(비/반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가? 칸트에 따르면 정치적 개입이 비군사적 개입(경제 제제, 국경 봉쇄 등)이라면 개입의 허용 여부는 그것의 내용과 범위에 따라 결정되며 이러한 결정을 위한 이성적·보편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정치적 개입이 군사적 개입(전쟁)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전쟁의 권리는 오직 타국의 공격 행위에 대한 방어권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법이론>, §56). 자국민을 탄압하고 학살하는 국가라도 다른 국가는 그 국가의 주권을 군사력을 사용하여 침해할 권리는 없다. 독재국가의 국민은 지배자인 주권자의 폭정을 감내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두 번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칸트는 전쟁을 “인류의 진보를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간주했다.” 칸트는 전쟁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심지어 “찬양”하기까지 했다. 결국 “부시의 침공을 정당화한 '민주평화론'의 씨앗은 칸트 자신이 뿌린 것이다.” [* 민주평화론은 이른바 칸트 평화이론의 현대적 버전이다.]
 

러시아 칼린그라드 시내에 서있는 이마누엘 칸트(1724년 4월 22일~1804년 2월 12일) 동상. 칼린그라드는 칸트의 출생 도시로 이전 이름은 발트해에 접한 구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였다. 칸트는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위치시키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초를 기축한 프로이센의 대 철학자다. 칸트는 이성 그 자체가 지닌 구조와 한계를 연구한 『순수이성 비판』을 비롯, 『실천이상 비판』, 『판단력 비판』 등의 책을 집필해 전 세계적인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칸트는 『영구 평화론』에서 전쟁은 악이며 영구평화야말로 인류가 도달해야 할 의무라고 강조했으며, 이는 전쟁이 인격의 품위를 파괴하고 자유를 손생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칼린그라드 시내에 서있는 이마누엘 칸트(1724년 4월 22일~1804년 2월 12일) 동상. 칼린그라드는 칸트의 출생 도시로 이전 이름은 발트해에 접한 구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였다. 칸트는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위치시키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초를 기축한 프로이센의 대 철학자다. 칸트는 이성 그 자체가 지닌 구조와 한계를 연구한 『순수이성 비판』을 비롯, 『실천이상 비판』, 『판단력 비판』 등의 책을 집필해 전 세계적인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칸트는 『영구 평화론』에서 전쟁은 악이며 영구평화야말로 인류가 도달해야 할 의무라고 강조했으며, 이는 전쟁이 인격의 품위를 파괴하고 자유를 손생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대한 나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이곳에서 묘사되고 칸트는 1780년대의 소논문인 <보편사의 이념>과 <인류역사의 기원>의 칸트이다. 이 논문에서 칸트는 역사철학자의 눈으로 인류 역사를 이야기한다. <영구평화론>은 1796년에 발표되었으며, 1780년대 역사철학자 칸트는 <영구평화론>의 한 부분(제1 추가조항)에서 다시 등장한다. - 역사철학자는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 역사를 예측한다. 지난 역사에서 칸트가 발견한 것은 인간 본성으로서의 비사회적 사회성(* 이것의 국제법적 변용이 전쟁이다)이 인간의 사회와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지난 역사는 칸트에게 “법이 지배하는 시민사회[공화정 체제]의 건설”이 인류에게 주어진 미래의 과제라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역사적 통찰들로부터 ‘현재’의 인류가 미래 역사의 발전을 위해 현시점에서 전쟁이라는 수단을 선택해도 된다는 사실은 도출되지 않는다. - 21세기의 인류를 보면서 칸트가 역사 발전을 위한 군사적 행동은 허용된다거나 불가피하다고 말할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자신의 시대(18세기)에 칸트는 비군사적 행위(국가 간의 교역)가 전쟁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킨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보편적 지속적 평화창출이 <법이론>의 궁극목적”이라고 천명하는 칸트에게서 전쟁 예찬론자의 모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이다.

세 번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칸트의 사상에는 오리엔탈리즘이 내재되어 있다. 칸트에게 인류 역사의 중심은 유럽이며, 비유럽의 역사는 유럽 역사의 하위/부분(“위계질서의 말단”)에 위치할 뿐이다. 칸트는 비유럽 사회를 “무법적 자유”의 야만 사회로 보았으며 “서둘러 벗어나야”만 하는 상태로 평가했다. “비서구는 서구의 침탈 대상으로만 여겨졌[고]” “[비서구인들은] 비인간이었기에 이들을 향한 무제한적 폭력은 은폐되었다.”

그에 대한 나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칸트는 인류 역사가 특정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는 역사 진행에 기여/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 진행의 도달점(국내적·국제적 영구 평화)을 기준으로 삼아서 칸트는 당시의 유럽 국가가 당시의 아메리카나 아시아 국가들보다 앞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칸트는 유럽 국가가 과거 인류역사의 유일한 주체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칸트는 “서구의 문명화된 국가들이 [비문명화된] 지역과 거주민들에게 보인 부정의는 매우 가증스러운 것”이며(<영구평화론>) “불의(不義)의 장막“ 뒤에서 자행되는 불법일 뿐이라고 단언한다.(<법이론>) - 인간 존엄성과 천부 인권을 중심으로 인간과 국가와 인류역사를 이해한 칸트에게서 어떻게 오리엔탈리즘을 읽어낼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의아하기만 하다. 오히려 칸트는 오리엔탈리즘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칸트 독해를 통한다면 [선진국이 후진국에 행하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실천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변호될 수 있다”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네 번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칸트는 “인간의 최고의 완전성은 백인종에게서 발견된다. 황인종인 인도인들은 보다 적은 능력을 소유한다. 흑인들은 훨씬 여기에 못 미친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보아 칸트는 인종주의자이다.

그에 대한 나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칸트가 말하는 ‘인간의 완전성’은 인간의 사유능력과 의지능력이 극대화된 상태, 달리 말해서, 지적 능력과 도덕적 능력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를 말한다.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칸트는 백인종과 황인종과 흑인종의 위계를 정하고 있다. - 설사 칸트의 기준과 판단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점을 근거로 해서 우리가 칸트를 곧바로 인종주의자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종주의란 ‘백인종은 유색인종보다 지적·도덕적 면에서 우월하며, 이러한 우월성(능력의 차이)은 백인에 의한 유색인의 지배(폭력적 차별)를 규범적으로 정당화한다’라는 입장을 지칭하지만, 칸트의 언급과 사유 어디에서도 그와 같은 의미의 인종주의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fact)의 차이로부터 규범적 차이(차별)로 이행하는 것은 칸트적 사유방식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폭력적’이라고 규정하는 근거들은 모두 불합리하다. 김창훈의 칸트 해석은 칸트 텍스트가 허용하는 범위를 훨씬 넘는 것이며 그의 칸트 비판은 칸트연구의 현재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사를 ‘Pick’한 <프레시안> 편집부가 ‘조용한’ 학계에 책임을 떠넘길 수 없음도 분명하다. 언론의 목소리는 커야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 때문에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왜 폭력적인가’라는 제목이 초래하는 왜곡된 인상, 즉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폭력적이구나’라는 첫인상은 결코 신중한 독자들을 현혹하지 못할 것이다.

 

이충진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

현재 한성대 교양과에서 철학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독일에서 10년 가까이 공부했고 20년 전 쯤 철학을 삶의 유일한 방식으로 선택했다.  사회철학, 윤리학, 환경/생태철학, 도덕 교육, 비판적 사고 교육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독일 필립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칸트의 정의론', '헤겔의 절대지', '이성과 권리' 등의 논문을 썼으며 '헤겔 정신현상학', '정언명령 - 쉽게 읽는 칸트' 등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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