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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식물은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 권예리 번역가
  • 승인 2019.03.12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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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은밀하고 위대한 식물의 감각법: 식물은 어떻게 세상을 느끼고 기억할까?』 (대니얼 샤모비츠 지음, 권예리 옮김, 다른, 2019.01)

육식식물인 파리지옥은 잎에 곤충이나 작은 동물이 닿으면 양쪽으로 벌렸던 잎을 닫아 짐승을 가두고 영양분을 섭취한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원은 끈질긴 관찰 끝에 양쪽으로 벌어진 잎 안쪽의 검은 털을 건드리면 잎이 닫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윈은 19세기 육식식물의 권위자였고 그의 관련 연구는 오늘날까지도 인용된다.) 이 현상은 무생물인 덫처럼 건드리면 닫히도록 설계되었다고 기계적 관점에서 서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식물학자 대니얼 샤모비츠는 이를 파리지옥의 ‘촉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파리지옥은 촉각 자극에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반응한다. 인간의 신경계가 정보를 받아들이고(감각신경) 그에 따라 행동하거나 작용하는(운동신경) 과정과 똑 닮았다.

그런데 털을 한 올만 건드리면 잎은 닫히지 않는다. 털 두 올을 20초 이내에 건드려야 닫힌다. 이 현상은 인간의 ‘기억’과 유사점이 있다. 털 하나를 건드렸다는 정보를 암호화하고(기억 형성) 몇 초 동안 저장했다가(기억 유지) 두 번째 털을 건드리면 그 정보를 불러온다(기억 떠올리기). 더욱더 흥미롭게도 털에 촉각 자극을 줄 때 인간의 신경세포처럼 잎에 활동전위가 발생한다. 털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전기 자극만 주어도 잎이 닫힌다. 잎에 전극을 꽂고 두 전극 사이에 14 마이크로 쿨롱 이상의 전하가 흐르면 잎이 닫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신경세포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인체 세포막의 칼륨이온 통로를 억제하는 화학물질을 파리지옥에 처리하자 털을 건드리거나 전류를 흘려도 잎이 닫히지 않았다. 이는 식물체의 칼륨이온 통로와 인체의 칼륨이온 통로가 서로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 파리지옥(Dionaea muscipula).  출처=필자 제공
▲ 파리지옥(Dionaea muscipula). 출처=필자 제공

샤모비츠는 이런 방식으로 식물이 자극을 받아들이는 양상을 인간의 감각에 비추어 살펴보고, 식물과 인간 감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상세히 보여준다. 이를테면 식물이 빛을 향해 자라는 성질을 식물이 빛을 본다(시각)는 틀에서 서술했다. 식물이 뿌리로 화학물질을 흡수하여 체내 작용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식물이 맛을 본다(미각)는 개념으로 발상을 전환해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식물이 사람처럼 뚜렷한 이미지를 본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식물의 감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식물을 파악하고 탐구하는 하나의 흥미로운 방법으로 활용했다.

▲ 다윈 부자의 굴광성 실험.  출처=필자 제공
▲ 다윈 부자의 굴광성 실험. 출처=필자 제공

이 책은 약 6년 전 초판 《식물은 알고 있다》(다른, 2013) 이후 식물학의 최신 연구 결과들을 반영한 개정증보판이다. 식물의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청각과 더불어 고유감각과 기억을 다룬다. 식물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던 초창기 실험부터 오늘날의 최신 연구 결과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토마토 향을 좋아하는 기생식물 미국실새삼, 애기장대의 청각장애 유전자, 식물이 로큰롤을 들으면 생장이 저해된다는 사이비 과학, 우주왕복선의 무중력 상태에서 관찰한 해바라기의 회선운동, 벌의 날갯짓 소리를 들려준 해안달맞이꽃의 꿀 성분 변화, 한밤중에 붓꽃에 빨간빛을 잠시 비추면 겨울에도 꽃이 피는 현상 등 놀랍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식물과 인간의 유사성을 확대해석하면 곤란하다. “인간과 식물이 유전적으로 과거를 공유한다고 해서 따로 진화해온 엄청난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다.” 식물에 감각기관이나 감각신경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신경계가 없고 몸 전체의 정보를 종합하는 뇌가 없기 때문에 저자 샤모비츠는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식물이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없다고 단언한다. 과연 그럴까? 이를 뒤집는 연구 결과는 훗날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단,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식물에 인간의 감정을 투영하거나 주관적으로 판단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이 책에 소개된 실험들처럼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으로 축적한 근거들로 뒷받침해야 한다.

우리가 식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인간의 삶이 식물에 깊이 의존하고 있기에 식물을 더 잘 이용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가 다른 존재에게 흥미를 느끼고 다른 존재를 탐구하는 까닭은 그것을 거울삼아 자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과 다른 점이 많으면서도 같은 생물로서 공통 유전자와 공통점을 지닌 식물의 이모저모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분명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고, 이 지구에서 타인, 동식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권예리·번역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텍스트와 언어를 유난히 좋아했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번역하면서 흥미로운 원서를 발견하면 출간을 추진하기도 한다. 옮긴 책으로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끌림의 과학』, 『인공지능』, 『심야 이동도서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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