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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교수의 딜레마
신임 교수의 딜레마
  • 김정근 논설위원
  • 승인 2003.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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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김정근 논설위원 부산대

이를테면 40세에 모처럼 대학교수가 된다고 하자. 참으로 '모처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오랜 준비와 기다림의 끝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개인의 포부와 주변의 기대가 따르게 마련이다. 많은 결실과 기여가 점쳐지기도 한다.

한편, 나의 경험은 이와 같은 개인적 결실과 사회적 기여를 쉽게 낙관할 수 없게 한다.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요소가 막고 나선다. 신임 교수의 그 단단해 보이는 결심이 있는데도 말이다. 무슨 사정이 있는가.

나는 이런 생각이다. 대학의 울타리 안팎에 유해환경이 있고 개인의 미숙함이 거기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가 하는 것이다. 이런 장면을 얼른 떠올려볼 수 있다. 신임자가 연구실을 배정받고 앉아 있으면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들은 대학 내의 다른 학과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사이이다. 그들은 신임 교수를 향해 굉장한 분인 줄 안다고 말하고 앞으로 이 대학에서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인사한다. 미숙한 신임자의 귀에는 큰 일을 '맡게 될' 것이라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끝에는 꼭 음식을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한다. 대개의 경우 신임자는 기분 좋게 따라 나선다. 그러면,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이 낯선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은 2년과 4년을 주기로 뛰는 총학장 출마자들이기가 십상팔구이다. 그들의 캠프에 속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신임 교수 연구실의 고요는 일찍부터 깨어지기 시작한다. 그 것이 장차 교내 보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폴리페서 탄생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조금 있으면 신임 교수에게는 담장 바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다. 논조는 비슷하다. 예의 듣기 좋은 말로 '자문위원' '고문'이 돼 달라고 한다. 미숙한 신임자는 역시 우쭐해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구실을 가만히 빠져나와 세종로나 과천, 아니면 기업체의 회의실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봉투를 받고 음식을 먹고 다음에 또 보자고 말하며 헤어진다.

신임 교수에게는 돈과 관련한 유혹도 만만치 않다. 신임 교수에게 돈이 보이는 한 가지 통로는 이른바 연구프로젝트이다.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거나 말거나 일단 거기에 돈이 보인다. 그래서 '연구'의 이름으로 너도나도 프로젝트에 뛰어든다. 선배들이 이미 개척해놓은 틀에 끼일 수도 있고 독자적으로 일을 벌일 수도 있다. 부지런히 서류를 꾸며 날짜에 맞춰 재단들에 접수시킨다. 물론 프로젝트성 연구를 전적으로 폄하할 이유는 없다. 다만 생애를 건 회심의 연구과제가 잊히고 묻힐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 뿐이다.

신임의 타이틀은 금방 날아가 버린다. 아차 하는 순간에 신임 때의 초심과도 멀어진다. 순수한 에너지를 놓치고 만다. 처음부터 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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