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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금수강산, 우리나라
삼천리금수강산, 우리나라
  • 최덕근 서울대 명예교수·지구환경과학부
  • 승인 2019.02.2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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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한반도는 아시아 대륙의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우리 한민족의 터전이다. 나는 어렸을 적에 우리나라가 ‘삼천리금수강산’이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라왔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삼천리금수강산’이라는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우리의 산하는 헐벗고 황폐하여 정말 볼품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질학을 전공으로 택한 후, 야외지질조사를 하면서 우리나라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우리 산하가 아름답다고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서울대학교가 현재의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때는 1975년 봄이었고, 당시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그 이후 30여 년을 관악캠퍼스에서 생활하면서도 캠퍼스를 받치고 있는 관악산에 오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2009년 3월 어느 따스한 봄날, 나는 홀로 관악산에 올랐다. 캠퍼스 옆을 따라 나있는 계곡 길을 힘겹게 올라 연주대 능선에 서는 순간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관악산 정상의 멋진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높은 곳에 커다란 바위들이 아름다운 조형미를 뽐내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관악산은 나에게 우리의 산하를 새롭게 보게끔 하는 눈을 뜨게 해 주었다. 그날 이후, 우리 산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한동안 주말이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산을 찾았다. 서울 주변에 있는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청계산을 모두 섭렵했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산인 설악산, 오대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한라산 등도 여러 차례 올랐다. 나는 이순(耳順)의 나이를 넘긴 후에야 왜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지질학 전공 교수들은 매년 연말이면 퇴임하신 교수님들을 모시고 조촐한 송년 모임을 한다. 2010년 송년 모임에서 내가 산행을 하면서 지질학의 새로운 맛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대학 시절 은사이셨던 이상만 교수께서 나에게 호(號)를 지어주시겠다고 하신다. 선생님께서 그 자리에서 지어주신 호는 도산으로 ‘산과 대화하다.’라는 뜻이다. 호가 마음에 든다. 나는 정말 산과 대화하고 싶다. 산을 이루고 있는 암석에게 ‘너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니?’라고 묻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묻고 싶다. 나는 우리 산하를 이루고 있는 이 아름다운 땅덩어리가 어떤 역사를 겪어 현재에 이르렀는지 알고 싶다.

우리 한반도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구의 모든 암석은 판구조론의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판구조론(板構造論)은 1970년에 등장한 지구 움직임에 관한 통합 이론으로 ‘지구 겉 부분이 해령, 해구, 습곡산맥 그리고 변환단층에 의하여 구분되는 여러 개의 판으로 이루어지며, 각 판은 서로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현재 지구의 대륙과 해양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과거에도 대륙과 해양은 끊임없이 움직였으며 앞으로도 계속 움직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판구조론은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잘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지구의 과거와 미래도 그릴 수 있도록 해 준다.

나는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의 5억 년 전 무렵 암석과 화석을 연구하면서 한반도를 이루고 있는 땅덩어리의 옛 모습을 알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5억 년 전 암석과 화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한반도를 이루고 있는 땅덩어리의 역사에 대해서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고, 암석과 화석을 연구하면 할수록 한반도는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산하를 사랑하고 있다. 또 나는 지구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사람들이 이 매력적인 지구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 지구는 우리 삶의 터전이고, 우리 자신 또한 지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최덕근 서울대 명예교수·지구환경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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