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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갈등 키우는 '뒷북방송'
사회갈등 키우는 '뒷북방송'
  • 김창룡 인제대
  • 승인 2003.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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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김창룡 교수(인제대 언론학)

KBS, MBC 방송사들은 새만금 갯벌과 관련해서 87년 국책사업 결정과정, 91년 사업시행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논의와 토론의 장을 제공하지 않았고 어느 방송사에서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요란한 축하행사와 ‘21세기 한국산업을 이끄는 중심지역‘이라는 찬사일변도였다.
KBS는 기공식에 참석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21세기 번영을 기약하는 땅’을 생중계하며 기자도 앵커도 미래의 장밋빛 희망을 선사했다. 당시 박성범 앵커는 국제항과 국제공항도 들어선다고 보도했다. 국책사업 결정전이나 결정시기인 초기단계에 전문가와 환경단체간의 논란, 방송의 심층보도 등이 집중됐어야 했지만 이 시기에 방송은 관의 발표저널리즘에 따라 개발논리로 미래의 막연한 장밋빛 꿈을 부풀렸다. 방송에서 그렇게 무비판적으로 떠들던 ‘21세기 희망’이 거꾸로 ‘21세기 재앙’이 될 줄은 그 누가 예상했으랴.
공영방송이 국책사업에 대해 공론의 장을 마련하지 못하고 심층분석보도를 한 프로그램조차 없었다는 것은 ‘방송의 직무유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에 와서 방송사들이 ‘3보1배’를 거의 중계방송하다시피 연일 보도하며 뒤늦게 심층보도를 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사업초기단계에는 우선 방송의 보도 자체가 양적으로 부족했고 공론의 장은 열지도 못했다. 새만금 간척 착공, 준공 등 행사소개 보도에 머물렀다. 이 국책사업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미래에 어떤 논란과 분열을 가져오게 될지 예측조차 못하며 정치논리에 의해 시작된 국책사업을 ‘띄워주기’하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하에서 새만금 사업은 전면 재검토를 하게 된다. 새만금 사업 특감이 이뤄지고 ‘제2의 시화호같은 엄청난 환경재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의 결정이 나온 것이다. 인수위의 결정에 따라 감사원이 감사에 들어가고 새만금 사업이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지만 이 과정에서도 방송사들은 그 흔한 토론회조차 갖지 않았다. 일제히 새만금 전면 재검토의 소식을 전하면서도 여전히 여론에 귀기울이며 심층보도하는 프로그램은 볼 수 없었다. 방송의 이런 책임방기가 5년이 지난 2003년에 와서야 ‘심층보도다 토론회다’ ‘3보1배’중계방송 등으로 나타난다. 뒷북행정의 표본이라고 언론이 비판한 국책사업을 방송 역시 ‘뒷북방송’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2001년은 새만금 공사가 중단된 지 2년2개월만에 공사재개를 결정한 전환기다. 이 시기에는 국무총리 산하 전문조사단이 구성돼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공사재개 여부를 두고 다시 한번 검토하는 기회를 가졌지만 ‘조사단장의 왜곡보고’ 등의 단순 사고성 보도만으로 넘어갔다. 역시 방송이 주관한 토론회는 찾을 수 없었다. 방송 보도 내용을 봐도 환경론자 입장과 개발론자 입장을 뚜렷한 기준도 없이 왔다갔다했다. 가장 심한 방송사는 KBS였다.
MBC의 경우 KBS보다는 정도가 덜하지만 원칙도 일관성도 없는 보도행태는 여전하다. ‘이대론 안된다’는 보도를 하면서도 별 변수가 없었는데도 2달여만에 ‘활기찬 새만금’이라며 개발론자 편에 서서 보도했다. 공사재개 결정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조사단장의 왜곡보고서 파문을 보면서 심층취재나 공개토론회 같은 것은 준비할 생각은 하지 못했는지, 방송사들은 새만금사업을 그저 사건위주로만 보도했다.
새만금 보도는 ‘3보1배’라는 호재를 만나면서 각 방송사들은 앞다퉈 다뤘다. 세 방송사가 도합 10번에 걸쳐 ‘3보1배’를 마치 릴레이 중계방송 하듯이 보도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누가 탈진했고’ ‘어디까지 진출했고...’식으로 지엽적인 문제에 그치고 있다. 여전히 ‘3보1배’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그 과정에 대한 진지한 분석과 사업자체의 타당성과 논의는 부족했다. 다만 2003년에 와서는 각종 토론회와 심층보도를 통해 새만금 사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은 과거 방송보도행태와는 달라진 점이다. 그러나 15여년 세월이 흐르고 물막이 공사마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토론과 심층보도는 전형적인 ‘뒷북방송’이라는 지탄을 면할 수 없다.
방송사 스스로 국책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두고 일관성없는 보도로 시청자들의 혼란을 초래했다. 같은 국책사업을 두고 기자마다 시기마다 주장이 달라지면 국민의 판단 역시 혼란스러워진다. 방송사 자체적으로 국책사업에 대한 조사와 논의 등을 거친 원칙과 입장이 없기 때문이다. 방송사의 분명하고 원칙있는 자기입장 정리가 필수다.
방송사의 책임있는 보도자세가 절실하다. 단편적 보도와 사건식 보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국책사업에 관한한 좀 더 심층적이고 입체적인 보도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반드시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이분법적인 찬성과 반대식의 방송은 기계적인 중립성은 지킬 수 있을지라도 책임있는 방송의 모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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