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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교육이 지배하는 대학에서 ‘반(反)교육론’ 찾아 읽기
반(反)교육이 지배하는 대학에서 ‘반(反)교육론’ 찾아 읽기
  • 이하준 서평위원/한남대 · 철학
  • 승인 2019.02.2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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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2019년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두이자 여전히 살아 있는 철학자라 할 수 있는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사후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독일에서는 기념학술 대회가 음악과 철학 분야에서 예정되어 있으며 국내 철학계에서도 아도르노 전공자들과 한국해석학회가 협력해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대학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도르노는 낯선 이름일 수 있으나 철학, 음악, 예술, 문학, 문명비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그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계몽의 변증법』의 공동 저자이며 그 책에서 ‘문화산업’이란 말을 만들어 낸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문명의 비합리성에 대한 역사철학적, 인간학적 발생학이라 할 수 있으며 그의 또 다른 주저인 『부정의 변증법』의 동일성 개념의 단서와 『미학 이론』을 관통하는 핵심개념인 미메시스 개념의 단초를 제공하는 책이기도 하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계몽의 변증법』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또 다른 단편인 <반(反)교육론>이다. <반교육론(Theorie der Halbbildung)>은 당대의 교육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짧은 글이다. 이 단편은 아도르노 전집 중 <사회학적 저술 I>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 저술집을 번역한 문병호는 <반쪽 교육의 이론>으로 번역했다. 사전적 의미에서 halb가 반을 가리킨다는 의미에서 맞는 번역이나 개념사용과 진정한 교육으로서 자기형성을 위한 자기교육과 학교(대학)교육의 실패를 비판한다는 의미에서 반교육(anti-education)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1959년에 작성된 이 글은 2019년 지금 이 시대의 교육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그런 면에서 대학교육에 종사하는 이들은 한 번쯤 찾아서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대학교육의 이념과 방향, 교육 방법론만이 아니라 교양과 교양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는 교육과정 및 학사정책 입안자들이 읽어 보면 반성과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단편이다. 그의 글 중에서 덜 난해하다는 미덕을 자랑하는 글이기도 하다.

글의 요지를 테제형식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교육은 인간 만들기가 아니며 그 누구도 인간을 만들 권리는 없다. 2. 스스로 자기를 형성하는 것이 교육이며 교육은 자기형성교육이다. 3. 학교교육은 지식전달이 아니라 올바른 의식을 형성하는 것이어야 하며 비판적 자기성찰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 4. 이것이 탈야만화 교육, 성숙을 위한 교육이며 이를 통해서만 인간성을 실현할 수 있다. 5. 탈야만 교육을 위해서 모든 폭력에 대한 ‘혐오’와 ‘부끄러움’을 알게 해야 한다. 6. 성숙을 위한 교육은 곧 약한 자아를 ‘주체로의 전환’을 통해 강한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7. 이를 위해 무조건적 사회적응과 테크니션 되기를 강요하는 교육, 맹목적인 권위 추종과 피상적인 권위비판에 머무는 교육, 문화산업과 의식산업의 조종을 읽어내지 못하는 교육, 살아 있는 경험을 제약하는 피상적 교육, 비판의식 없는 평균적 가치를 학습시키는 교육, ‘가벼운 교양’이 판치는 교양교육은 청산되어야 한다. 8. 미성숙을 야기하는 교육을 청산하기 위해 사회와 역사의 흐름과 인간성의 이념을 진작시키는 ‘비판적’ 교육, 더 나은 사회를 생각하며 개인의 자율과 자유를 실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9. 진정한 자기계몽과 자기형성교육을 위한 사회적 조건을 이해할 수 있게 사회학-역사학-철학이 결합된 비판적 사고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영혼 없는 자기유지적 자아를 만들기 위해 달려가는 교육과정 설계자들이 환영받고 교육공학주의의 승리가 울려 퍼지는 한국 대학의 현장에서 아도르노의 반교육론은 ‘한가한 소리’로 매도될 수 있다. 그런 비판을 하는 이는 탁월한 교육설계자, 인적 자원육성의 예술가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기술자와 교육자가 다르듯 역량중심교육과 자기계몽적 인간교육 간의 긴장과 대립에 대한 감각을 갖은 사람이라면 ‘흘러간 옛 노래’ 속의 진리를 찾을 수 있다. 아도르노의 <반교육론>은 ‘오늘날 교육이 무엇을 위한 (대학)교육이어야 하고 왜 우리가 교육자인가를 묻게 만든다.
 

 

이하준 서평위원/한남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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