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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 전환과 인문사회과학의 기회
포스트휴먼 전환과 인문사회과학의 기회
  •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
  • 승인 2019.02.1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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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

인간은 죽었다! 포스트구조주의는 인간을 사상적으로 죽였고 포스트휴먼(post-human)은 인간을 기술적으로 죽였다. 포스트휴먼의 ‘인간은 죽었다’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를 대체하며 우리 시대의 슬로건이 되었다. 포스트휴먼은 인간이 더 이상 세계와 가치판단의 기준이 아니라며 새로운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포스트휴먼에 대해 한편으로는 기대와 희망이, 다른 한편으론 걱정과 반동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새로운 과학기술에 의한 사회와 인간의 역량강화를 포스트휴먼은 약속한다. 하지만 더 이상 인간이 세계의 가치판단 기준이 아니라는 반휴머니즘(anti-humanism)적 태도는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누가 대통령이 될지 유권자나 여론조사에 묻지 마라. 구글에 물어보라.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트럼프의 당선을 인공지능이 맞췄다. 내가 어떤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지 묻지 마라.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큐레이션 알고리즘이 우리의 독서와 영화 취향을 더 잘 알고 있다. 인간은 가라. 알고리즘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우리 사회에서 포스트휴먼의 유행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다. 우선 2016년 있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사고의 전환을 요구했다. 바둑천재 대 알고리즘의 대결에서 후자가 이김으로써 우리 모두는 알고리즘의 위력을 집단으로 체험했다.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자율주행차, 로보틱스, 스마트도시 등의 담론이 정치, 사회, 교육, 언론을 휩쓸었다. 100여 권의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책이 출판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1차 산업혁명과 2차 산업혁명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하지만 몰라도 좋다. 과거는 과거고 미래는 미래다. 산업혁명에 실패했기에 식민지배를 당했던 국민들이 새로운 산업혁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좋은 현상이다. 변화에 민감하고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열망이다. 

나는 <서울자유시민대학>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가르친 경험이 있다. 삼성전자에 다녔던 한 시민은 고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회사를 새로 시작할 당시 회사 주식을 사라는 말을 듣지 않아 후회막급이라고 했다. 3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반도체에 무지했고 고 이병철 회장의 말을 듣지 않고 부를 축적할 기회를 잃어버렸기에 이제라도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강의를 들으러 왔다. 이 시민만이 판단 착오를 한 건 아닐 것이다. 40여 년 전 반도체가 우리 산업을 이끌어 가리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산업현장에서 경험이 있는 시민은 스마트 공장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농사에 경험이 있는 시민은 드론을 이용해서 농사를 혁신할 방법을 알고 싶다고 왔다. 곧 시민들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회’를 잡고 싶어 했다.

포스트휴먼은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좋은 기회일 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있어서도 좋은 기회다. 많은 인문학자는 포스트휴먼 이야기를 싫어한다. 이 논의에서 기술결정론과 유물론적 환원주의가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사회적으로 휩쓸려가는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줏대 있는 자세는 존경스럽지만 때로는 세상이 학자들에게 ‘생각을 강요’(force)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회과학자들은 포스트휴먼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이다.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책을 한 권 출판하거나 빅데이터 연구소를 최근 개소한 한국 사회과학자들의 순발력은 정말 노벨상감이다. 삶이 기회인데 학문도 기회가 아니면 무엇이랴. 

『포스트휴먼』의 저자 로지 브라이도티는 “인문학에 적합한 주제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이제 인문학은 인간, 기계, 생물 간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논의를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의 ‘동물 안락사’ 논쟁,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구제역 문제, 알고리즘과 AI로 인한 노동력 대체 문제 등은 포스트휴먼이 우리 일상에 매우 가깝게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 시대는 이제 인권 감수성을 넘어 포스트휴먼 감수성과 윤리, 포스트휴먼 주체성, 포스트휴먼 비판이론을 요구하고 있다. 질 들뢰즈, 마뉴엘 데란다, 로지 브라이도티, 브루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 등 우리 시대의 주요 사상가들은 이미 포스트휴먼을 그들 사상의 핵심으로 다루고 있다. 포스트휴먼은 인문사회과학의 새로운 기회이자 우리 시대가 우리에게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어셈블리지다. 인간이 중심이 아닌 인문사회과학, 우리 앞에 놓은 거대한 도전이자 기회다.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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