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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성'에 대한 고민
'양면성'에 대한 고민
  • 김재현 경남대
  • 승인 2003.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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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김재현/ 경남대 철학

 최근에 교수신문에서 ‘와이키키 브라더즈’의 주인공들을 시간강사와 관련시켜 다룬 글을 읽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학진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는 서울의 동료, 후배 그리고 주변의 시간강사들을 생각하며 안타깝고 무거운 가슴으로 매우 우울했다. 이들이 순수한 학문적 관심과 열정으로 공부했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 조금씩 좌절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 나는 운좋은 전임 교수로서 한편으로 다행스럽다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부끄럽고 씁쓸한 마음을 달래기가 어려웠다. 

나는 지방 사립대의 비인기 전공의 교수로서 전공의 존속여부가 불안한 상황에서, 학생을 끌어모야야 하고, 또 전공 교직을 열심히 하려는 학생들을 위해 주전공과 다른 과목들을 새롭게 준비해서 가르쳐야 하며, 대학원생 한 명 없이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래서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학생을 끌어모아야 하는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처지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런 고민은 최근 소위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유행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는 행복한 고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서양철학을 전공하면서 ‘한국에서의 서양철학수용’과 ‘동아시아에서의 서양철학수용’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 이유는 우리자신의 역사적 상황, 정신적 상황과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세계 속에서의 한국사상의 위상을 알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특히 한국, 중국, 일본에서의 전통사상과 서양철학사상 수용에 대한 폭넓고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 이후 우리 철학사상의 형성, 발전은 전통적 사유와 사회조건의 차이 속에서 서양의 충격에 대처한 방식이 달랐던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이라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서양사상수용을 비교검토할 때 보다 분명히 밝혀지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마침 내가 소속해 있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는 작년 8월부터 2년간 학진으로부터 ‘철학원전 번역을 통해 본 우리의 근(현)대’라는 과제로 지원을 받고 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번역문제의 중요성과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 또 우리근현대(철학)사상사 연구의 빈곤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며 동시에 이제까지의 개인적, 소극적 연구방법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요새는 이 주제에 대한 다른 분야에서의 연구성과를 보면서도, ‘번역’의 ‘양면성’과 ‘근대’의 ‘양면성’의 문제가 서로 맞물리면서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들과 의문들이 나의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다.

 

번역은 ‘오리엔탈리즘의 최첨병의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탈식민화를 촉진시키는 채널의 기능을 담당한다’라는 말에서 잘 나타나듯이 양면성을 갖는다. 그리고 우리의 경우 근대의 형성(근대화)은 넓은 의미의 ‘번역’을 통해 서구문명과 문화를 활발히 수용한 일본 근대화에 대한 모방과 이의 좌절로 나타난 식민화와 맞물려 있다. 즉 우리의 근대는 근대성과 식민지성이라는 ‘양면성’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설명하지 않고는 제대로 해명할 수 없다.

 

특히 한국에서의 근대성에 대한 논의는 세계체제 속에서의 동아시아적 시각을 바탕으로 일본의 脫亞入歐적인 근대주의와 이의 다른 측면인 대외적 팽창주의(식민주의)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한국에서의 이에 대한 적응 또는 저항에 대한 구체적 연구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식민지가 어떤 의미에서 ‘근대의 실험실’이었다고 한다면, 식민지와 동떨어진 근대의 담론 따위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따라서 우리의 근대성과 식민지성이 어떻게 결합돼 나타나는가를 해명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근대 이해와 근대 극복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양면성 또는 복합성 때문에 학문적인 차원에서는 보다 엄정하고 치밀한 연구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타인과의 일상적 만남이라는 생활의 차원에서는 역할의 이중성, 복합성은 단순한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내 자신이 실천적으로 통합해야 하는 현실적 과제임에 틀림없다. 오늘날의 세태가 연구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세태를 탓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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