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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쟁점]고개든 국책연구기관 개혁논의
[학계쟁점]고개든 국책연구기관 개혁논의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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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께 통폐합 예상.. 지방 이전도 논란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면 정부출연연구소(이하 출연연)는 언제나 개혁논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제 5공화국 때 국책연구소 통폐합 논의를 비롯해, 김영삼 정부 때의 민영화 논의, 1999년 연구회 체제 신설 등 출연연 개혁 논의가 이어졌던 것.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 7개월 째 접어들면서 출연연의 개혁논의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을 요구하는 이유는 이전과 다르지 않다. 출연연이 비효율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고, 국가의 ‘씽크탱크’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주요골자다.


'싱크탱크' 제 역할 하나


출연연 개혁논의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달 초부터였다.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 등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최근 연구회 통폐합을 골자로 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 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정출연법) 개정을 의원발의 형태로 추진한 것.   국무총리 산하 5개 연구회(인문사회연구회, 경제사회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를 과학기술계 1개, 인문사회계 1개 등 2개로 통폐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정출연법 개정안 공청회’가 열렸다. 이성헌 의원을 비롯해 하연섭 연세대 교수(행정학), 김춘석 국무조정실 연구지원심의관 등 학계와 연구회, 노조의 의견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에 있는 5개의 연구회가 42개의 연구기관을 소관하고 있다. 각 연구회가 산하 기관의 연구과제를 조정해 서로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의원은 “애초의 기획과는 다르게 연구회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하며 “연구회 통합, 현행의 평가제도 개선, 이사장 선출방법의 공모제화”를 골자로 한 개혁안을 제출했다. 출연연 연구자 노조인 전국연구전문노동조합에서는 이 안을 지지하고 있다. 연구회가 소관 기관을 평가하고 평가결과를 예산편성에 반영하는데, 기준에 불합리해서 오히려 연구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 연구회의 구조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옥상옥’과 같은 연구회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반면 김춘석 국무조정실 연구지원심의관은 “정부가 출연연구소 개혁방안에 관련 연구결과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결과가 나오는 올해 말에 본격적인 논의를 실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결국 이 공청회 자리에서는 “연말까지 개혁 논의를 미루자”라는 국무조정실․연구회 입장과 “연구회 통폐합으로 개편의 가닥을 잡자”라는 이 의원과 노조간의 의견 차이만 확인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한편,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대비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전략적 발전 방안’이라는 제목의 정책연구과제를 위탁했다.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임기철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현재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하고 개선하는 것으로 봐달라”라며 “8월달 안에 각 기관장들과 회의를 열어 공개적인 석상에서 의견을 수립하고 방향을 잡아가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 부원장은 “연구에 이제 막 착수했다”라며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은 12일 대구에서 국정과제회의를 갖고 “지방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하며 이를 위해 강력한 지방화정책을 추진해갈 것”을 골자로 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3대 원칙과 7대 과제'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2백45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계획을 밝혔는데, 출연연의 지방 이전도 포함돼 있다.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은 “출연연의 지방 이전과 통폐합 논의가 함께 테이블에 오른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구심점 없는 개혁 논의


현재 출연연의 개혁 필요성에 대해서는 정부, 출연연 연구자 할 것 없이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논의가 하나의 구심점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의원은  개정안을 예정대로 추진할 계획이고,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의 개혁안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연연 지방 이전 문제와 통폐합 논의조차 따로 진행되고 있다. “지방 이전의 ‘지역적 측면’을 고려하고, 통폐합 논의는 ‘시스템 개혁’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 성 위원장의 설명. 그러나 출연연의 지방이전과 통폐합 논의는 그 의도부터 상치되는 부분이 있어 논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내부에서도 의견 마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김병준 정부혁신위원장 주재로 이정우 정책실장과 김태유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이영탁 국무조정실장, 윤진식 산자․박호군 과기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기능이 중복되는 일부 연구기관을 통합해 효율적이고 발전적인 쪽으로 가야 한다”라는 입장을 강조하는 반면, 박 과기부 장관과 김 보좌관 등은 “이공계 연구소의 경우 무리한 통폐합으로 많은 혼란을 겪었다”라며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기 때문이다.

 

‘효율적 개혁론’과 ‘현 체제 발전론’으로 양분되는 현재의 출연연 개혁 논의는 각자의 입장에서 개혁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좀처럼 가닥을 잡을 수 없다. ‘국책연구소 통폐합’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에, 현장의 연구자들이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있는 것은 아니냐”라며 불안해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만 정부에서 ‘개혁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올 연말 출연연의 대대적인 통폐합을 예상하는 견해들이 지배적이다.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관계자들이 함구하고 있는 까닭에, 각계의 의견이 제대로 수합되지 못한 개혁안이 산출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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