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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핵심은 ‘인본주의’ . . . 서구 정신의 본질과 실체를 구성
비극의 핵심은 ‘인본주의’ . . . 서구 정신의 본질과 실체를 구성
  • 채수환 홍익대 · 영문과
  • 승인 2019.02.1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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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 『비극문학: 서양문학에 나타난 비극적 비전』 (채수환 지음, 지식산업사, 2018.12)

이 책은 “서양정신의 본질은 무엇인가”하는 근본적 화두에서 시작되었다. 근세에 있어서 서세동점의 역사적 배경에는 서구적 인간관과 세계관의 승리와 지배가 자리 잡고 있으며, 또한 서구적 인간관과 세계관의 배후에는 서양정신을 대표하는 ‘비극적 정신’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하는 가설 혹은 전제에서 본 저서는 집필되었다는 말이다. 서구세계에서 ‘비극적 정신’은 서구정신의 태동기에 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서구적 정신의 본질과 실체를 구성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논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 익숙해서 지금 들으면 해묵은 논의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나아가서 시대착오적으로 얼빠진 서구중심주의의 징후 혹은 변주에 불과한 진술이라고 백안시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고전기 희랍비극에서 시작하여 르네상스를 거쳐 19세기 소설의 전성기에 등장한 ‘비극적 소설’에 이르는 장구한 서구비극전통을 통사적이고 전반적으로 조감하여 정리한 책이 국내에서 아직 발간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필자는 필자의 선친 대부터 2대가 영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외국문학도로 살아온 빚을 갚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무와 사명감에서 ‘비극문학 전통’ 공부에 지난 20여 년 이상을 매달렸다. 이번에 출간한  『비극문학』은 국내에서 이 분야의 선구적 시도라고 외람되이 자부해보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시도 즉 시론(試論)에 지나지 않는다. ‘비극적 비전’이란 화두에 대해서는 본고장인 서구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시학』을 쓴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합의된 정론에 도달해 본 일이 없고, 요즘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잊히거나 관심 밖의 주제가 된 듯하기 때문이다.

▲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저지하는 아테나 여신(일리아스의 한 장면)  사진제공=지식산업사
▲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저지하는 아테나 여신(일리아스의 한 장면) 사진제공=지식산업사

그러나 ‘비극적 비전’의 바탕이자 그 모태인 비극문학은 서양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세 시기 -공동연대 이전 5세기의 희랍고전기, 16세기 르네상스기 그리고 근대의 완성기인 19세기-를 대표하는 서사양식을 형성했고, 이로써 면면하게 흐르는 서구적 인간관과 세계관의 본질과 특징적 성격을 구현해왔다. 돌이켜 볼 때 고대 희랍에서 비극은 아직 철학과 신학(종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에 출현한 것으로서, 하나의 문학이나 예술양식을 넘어서 어떤 일관되고 체계적인 인생관과 가치관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했었다. 이런 비극의 핵심적 키워드는 ‘인본주의’라는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으며, 이는 달리 말해 비극이 ‘인간의 존엄과 숭고’를 드러내고 확인하는 예술양식이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로써 비극은 차후 수 천년의 세월을 통해 사라졌다가 부활하기를 거듭하면서 서구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인본주의적 가치를 구현하는 동시에 가장 존숭받고 즐기는 예술양식이 되었다. 여기서 비극과 비극적 비전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어떤 보편성과 객관적 탁월성을 지니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 Globe Theatre 글로브 극장.  사진제공=지식산업사
▲ Globe Theatre 글로브 극장. 사진제공=지식산업사

 실존철학자 야스퍼스가 말했듯이 비극과 비극적 비전이 제시하는 ‘비극적 지혜’ 혹은 ‘비극적 철학’은 인간이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겪는 고통과 불행을 감당하고 나아가 극복하게 해주는 정신적 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역사상의 여러 실례가 증거가 된다. 가령 버트랜드 러셀과 남아공의 원주민 초대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가 전하는 비극의 ‘고양감과 앙양감’은 귀 기울일 만하다. 특히 비극적 비전은 서구의 경우 기독교가 퇴장하고 쇠퇴한 근세에 들어와 기독교를 대신하는 대안적 비전의 구실은 한다는 것은 월터 카우프먼과 조지 해리스 같은 현대 영미 철학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필자는 이 책에서 비극이 근대비평의 초석을 놓은 19세기 영국 시인이자 비평가 매슈 아놀드가 말한 “문학은 우리에게 삶을 해석해주고 우리를 위안하며 궁극적으로 삶을 지탱하는 힘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명제를 수행하는 문학양식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논증해 보았다.
 

채수환 홍익대·영문과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에서 영문학 석사, 서강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근대영미소설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19세기 영국 소설 강의』(공저)가, 그 외 〈하디의 《테스》에 나타나는 자유의지 및 결정론〉, 〈근대비극의 이론과 헨리 제임스의 《워싱턴 스퀘어》〉, 〈고전비극의 이론과 조지프 콘래드의 《로드 짐》〉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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