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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품격
지식의 품격
  •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대학·철학
  • 승인 2019.01.2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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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해가 바뀌었다고 시간이나 공간이 변하진 않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여전히 어제와 같고, 나를 둘러싼 공간도 큰 변화가 없다. 그렇더라도 1월은 언제나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마음이 들뜬다. 물리적으로 시간은 반복되는 자연의 한 흐름에 불과하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에겐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단락의 사용에 있다고 말한다.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은 도중에 글이 막히면 다시 새로운 단락을 만들고, 문장을 새로 시작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글은 큰 고충 없이 잘 써진다. 글이 서툰 사람은 글을 어디에서 끊을지 몰라 긴장감 없는 이야기를 질질 끌면서 이어간다는 것이다.(『자기역사를 쓴다는 것』, 바다출판사, 2018) 삶도 그런 게 아닐까. 어느 대목에선 그간의 일들을 매듭짓고, 새로 시작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사는 게 서툰 이에게 1월은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정비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연초에 인상적인 글을 읽었다. ‘당대 중국 사상논쟁의 역사적 품격과 지식적 품격’. 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중국 사상계에 ‘화약 냄새’를 풍기게 했던 ‘자유주의-신좌파 논쟁’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이다. 작년 말 출간된 『현대중국의 사상적 곤경』(賀照田, 임우경 역, 창비, 2018)에 수록된 논문인데, 비단 중국뿐 아니라 한국 학계에도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허자오톈은 이 논쟁이 ‘역사적 품격’과 ‘지식적 품격’ 모두를 갖추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논쟁에 참여했던 학자들은 대개 서구의 분류법과 용어를 가져와 중국의 사상 상황을 재단하거나 설명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중국 문제를 서구 국가들과 구조적으로 유사하게 보게 했으며, 마치 현대중국의 상황이 이론적 필연성을 가진 것처럼 오해하게 했다. 이 논의가 중국의 실제 문제에 대해 접근하거나 그 속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동력을 잃은 이유이다. 논쟁 과정에서 논자들은 빈부격차를 비롯한 중국사회의 심각한 불공정 문제에 대해 그 역사적 과정을 깊이 있게 분석하지 않고 곧장 그 원인을 신자유주의의 악영향이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이 또한 중국 사상계가 안고 있는 지식적 품격의 문제일 것이다. 논쟁이 이렇게 진행된 원인에 대해 저자는 그동안 많은 사람이 지적해 왔던 심리적 태도나 도덕성의 문제보다 오히려 학계에 깊이 자리 잡은 모종의 지식적·사상적 습관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많은 지식인이 결코 관변 담론에 휘둘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권력을 비판하는 전통을 가져본 적도 없다. 거기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현대 중국사상계는 지금의 곤경, 즉 역사를 근거로 삼았던 사조에 역사가 누락되고, 중국 현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논쟁에서 중국의 현실이 사라져버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가 지적한 최대 문제, “지금도 우리의 모든 연구와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식 이론의 학습습관과 응용습관”의 문제가 어찌 중국만의 일이겠는가. 새해 벽두에 이 책이 던지는 화두가 무거운 이유이다.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대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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