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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서간집』과 사유의 실천
『스피노자 서간집』과 사유의 실천
  • 이근세 국민대 · 교양대학
  • 승인 2019.01.29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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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스피노자 서간집』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이근세 옮김, 아카넷, 2018.12)

“오늘날의 신학자들이 제 저작으로 불쾌해하고 그들의 습관적인 적개심으로 저를 비난할까 걱정이 됩니다. (......) 이 저작이 설교자들을 다소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을 선생님께 알려드린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그들이 신에게 귀속시키는 신의 여러 속성들을 피조물들로서 간주하며, 그들이 편견 때문에 피조물로 간주하는 다른 것들을 신의 속성들로 간주합니다. 저는 그들이 신의 속성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나아가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저자들이 그렇게 하듯이 신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영국 왕립학술원 초대 사무총장인 헨리 올덴부르크에게 스피노자가 1661년에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편지에서 나타나듯이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이 지닌 논란의 성격을 정확히 자각하고 있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유대교를 거부한 이유로 동족에게 저주 섞인 파문을 당했고 서구문명을 크게 지배해온 기독교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스피노자는 지성을 통해 창조할 세계를 구상하고 의지와 능력을 통해 세계를 창조하는 인격신 개념, 그리고 이 개념에 근거한 창조론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스피노자는 인격신 개념에서 신 안에서의 간극, 결여, 불완전성을 보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지성에 의해 미리 구상되고 의지나 능력에 의해 논리적으로든 존재론적으로든 나중에 실현되는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가 인정하는 신은 지성이나 의지를 본질로 갖는 신이 아니다. 스피노자의 신은 인격적 존재가 아니며 계획과 실현 간의 어떤 간극도 없이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존재하고 작용하는 자연 전체이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런 생각이 담긴 『에티카』의 출간을 포기했다. 그의 생전에 출간된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는 스피노자 자신의 철학을 포함하지 않았고 『신학정치론』은 익명으로 출간되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감출 수 있는가?

▲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사진출처=구글
▲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사진출처=구글

서구 문명권에서 계시종교의 역할은 막대한 것이고 모든 사상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기성 종교에 대한 견해 표명을 요구 받았다. 『스피노자 서간집』은 자기 생각을 전면적으로 드러낼 수도 없고 온전히 숨길 수도 없었던 스피노자의 삶의 전략이 담긴 문헌이다. 편지는 사적(私的)인 동시에 상대방이 있는 사회적 차원의 글이다. 스피노자의 편지들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그의 철학 체계에 대한 해석의 권위가 보장된 문헌으로서 스피노자 철학의 풍성한 이해를 가능케 한다. 『스피노자 서간집』은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직접적인 해설과 함께 ‘사유의 실천’을 보여준다. 스피노자는 철학적 주제를 보편적인 방식으로 다루면서도 자신이 누구와 서신을 교환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는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규정함으로써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다. 이 같은 신중함은 자기 자신에서 이탈하지 않는 가운데 타인을 이해하는 독특한 방식이며 그의 사상 체계로부터 도출되는 깊은 반성과 숙고의 결실이다. 모든 철학자가 그렇겠지만 스피노자에게 사유와 글쓰기는 삶의 가장 큰 부분이었고 서구의 지배적 담론과 엇갈린 길을 가던 그에게 편지는 자기 사유를 실천하는 조심스러운 통로였다. 
 
『스피노자 서간집』은 1925년 칼 게브하르트(Carl Gebhardt)가 편집한 『스피노자 전집』(SPINOZA OPERA)의 제4권 『서간집』(EPISTOLAE)에 포함된 84통의 서신들의 번역이다. 서양근대철학자들이 남긴 서신은 그들의 주저들을 압도할 정도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데카르트 전집 11권 중 서신이 5권이고 라이프니츠의 서신은 2만 통이 넘는다. 작은 시작에 불과한 『스피노자 서간집』이지만 여타 서신 번역과 연구의 촉매제로 쓰였으면 한다.  
 

 

이근세 국민대학교·교양대학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교 철학고등연구소(ISP)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근대철학, 프랑스철학이며, 점차 연구의 초점을 동서비교담론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효율성, 문명의 편견』, 『철학의 물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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