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4-25 18:09 (목)
‘그들은 왜 동성애를 두려워하는가?’
‘그들은 왜 동성애를 두려워하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19.01.29 1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술 이슈]_ 호모포비아: 베스텐트(WestEnd) 한국판 6호 (연구모임 사회비판과대안 엮음, 사월의책, 2019.01)

호모포비아(homophobia)는 동성애를 뜻하는 homosexuality(그리스어 homos + sexuality)와 공포증을 뜻하는 포비아(그리스어 phobos)의 합성어로 동성애 공포증이나 혐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반적인 사전적 정의를 종합해 보면 호모포비아는 “동성애 및 동성애자, 그들의 문화에 대한 혐오감, 불쾌감, 공포감”이며 “그러한 감정에 기초한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뜻이 정립되지 않아 넓은 의미를 아우르는 용어로 사용자와 수용자 간 의사전달에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호모포비아’ 대신 ‘성적 편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혐오는 두려움에서 싹튼다

오늘날 전 세계 추세는 한편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한 인정과 관용 속에 동성애가 수용 및 합법화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거부와 혐오가 오히려 강화되는 모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어째서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이토록 뿌리 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가? 누가 동성애를, 동성애의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베스텐트 한국판 6호 『호모포비아』는 ‘동성애 혐오’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서 일어나는지를 분석·비판한다.

필자들에 의하면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개인적 공포심 때문이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관념, 즉 ‘동성애가 모든 사회 질서의 안정성을 파괴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싹튼다. 동성애 혐오가 존재하는 것은 가부장주의적 가족, 양성 질서, ‘혼인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성애 혐오는 약자에 대한 또 하나의 혐오 현상으로 여성 혐오, 소수자 혐오 등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성관계 질서와 가족 질서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동성애자를 향해 투사되는 것이 바로 ‘혐오’의 원인인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이 지적하듯이 “혐오는 원치 않는 변화가 두려워 ‘마녀’처럼 탓할 상대를 찾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결국 동성애의 수용과 동성애자의 자유 보장은 기존 사회 관습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만인의 자유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 된다.

동성애 혐오의 현재를 진단하다

정치학자 폴커 하인스는 「동성애 혐오의 현재」에서 오늘날 동성애가 합법화되고 수용되는 진보적 역사의 이면에는 동성애를 둘러싼 사회적 분열과 폭력, 혐오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나아가 동성혼인과 동성커플의 동등한 지위에 공적 논쟁을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전통적 역할상을 넘어서는 성적 지향의 더 넓은 영역이 주제화되는 데 장애가 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다음으로 사회학자 클라우스 테벨라이트는 「“호모포비아”: 알 수 없는 그 무엇」에서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게 신체적 공포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선입견과 공격적 혐오가 오도되었다고 본다. 진짜 문제는 특정 성관계 질서, 그리고 전체 사회 질서의 안정성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주류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들이 흑사병자, 이교도자, 마녀 등을 박해해 온 것처럼 동성애자를 그와 같은 ‘혐오 대상’의 위치에 놓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심리학자 베른트 지몬은 「동성애 거부: 선입견, 존중, 정치화」에서 동성애 혐오에 맞선 투쟁의 동기가 더 많은 동성애 ‘옹호자’를 끌어들이려는 기대에 있다면 이 투쟁은 소기의 목적에서 벗어남을 지적한다. 지몬에게 이런 해석의 대안은 평등한 관용과 동등한 권리라는 의미에서의 ‘존중’이다. 동성애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르쳐서” 동성애 옹호자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용과 권리라는 차원에서 동성애 존중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가족법학자 니나 데틀로프는 「가족법상의 동성애자 차별」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형법상의 박해로부터 법적 인정으로 나아간 진보의 역사를 그려낸다. 그는 재판소의 결정과 사회과학 연구들을 통해 거듭 정당화된 동성커플의 입양이 점진적으로 가능해지는 것을 동등한 권리로의 ‘마지막 한 걸음’이라 일컫는다. 이어서 혼인을 법적으로 동등한 두 동반자로 구성된 ‘성 중립적’ 공동체의 형태로 보호하고, 혼인을 동성애자에게도 완전히 허용하는 정책이 머지않아 시행될 수밖에 없는 쪽으로 가족법이 그동안 개정되어 왔음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매체학자 페터 레베르크는 「“신은 동성애자를 혐오한다!”」에서 동성애자 시민의 권리가 동성혼인 합법화에 일방적으로 고정되는 것을 비판한다. 그로 인해 동성애가 가져다주는 섹슈얼리티 해방의 문제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레베르크는 가족법으로 쾌락을 억제할 것을 선전하는 종교적 우파들의 프로젝트에 맞서 동성애의 성애적 측면이 새로운 성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성적 지향은 개인의 몫이다. 개인들이 성적 편견을 표출하는 것은 성적 편견이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자아 개념에 핵심적인 가치를 확인하며, 자기 존중감에 대한 위협과 관련된 부정적 감정과 불안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적 편견의 심리적 유용성이 사라졌을 때, 성 소수자를 향한 긍정적 태도를 발전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변화의 가장 긍정적 촉매는 더 많은 교류와 접촉이다. 필자들은 “서로가 다르면서 동등함을 어쩔 수 없이 상호 인정”하도록 관용과 존중을 요구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임을 밝힌다.
 

※ 베스텐트(WestEnd) :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산실인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가 펴내는 공식 저널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비판적 사회이론으로 20세기 사상운동의 한 축을 이끈 영향력 있는 비판적 철학자, 사회학자들의 모임이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벤야민, 마르쿠제, 프롬 같은 사상가들은 물론 의사소통 이론으로 유명한 하버마스와 인정투쟁 이론의 호네트 역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이다. 잡지명 ‘베스텐트’(WestEnd)는 사회연구소가 속해 있는 지역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서구의 종말’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는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색깔을 뚜렷이 드러내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