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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제 스스로 바로 서야
대학, 이제 스스로 바로 서야
  •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승인 2019.01.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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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황금 돼지의 해를 맞이하는 대학의 분위기가 썰렁하다. 새해에도 재정난, 학령인구 감소, 졸업생의 취업 절벽은 여전할 것이고, 정시와 학종이 충돌하는 입시에 대한 논란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갑질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미화원 고용 문제도 모자라 이제는 개정된 시간강사법 시행을 핑계로 강의 개설 상황까지 시시콜콜 보고를 간섭하고 있다.

그동안 대학이 강사 처우에 충분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물론 해묵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일이 쉬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더 이상 외면하고 미룰 수도 없다. 대학이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분명한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학의 구성원 중 누군가는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재단·교수·강사·학생 중 누가 어떤 희생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고통스러운 결정만 남아있을 뿐이다. 아무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기적의 해결책은 없다.

교육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공허한 것이다. 법과 제도를 벗어난 교육부의 선심에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는 뼈아픈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쥐꼬리만 한 지원금에 소중한 영혼을 팔아버리기보다는 내부적으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대학이 바짝 정신을 차리고 바로 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대학이 갈팡질팡 헤맸던 것은 오로지 대학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었다. 남을 탓할 이유가 없다. 치명적인 독(毒)인 줄 알면서도 교육부의 선심성 지원금을 망설임 없이 덥석덥석 받아 챙겼던 탓이다. 달콤한 지원금을 앞세워 대학을 유혹하는 교육부에 대한 원망은 의미가 없다. 그런 지원금에 영혼을 빼앗긴 책임은 온전하게 대학에 있다. 지원은 해주되 간섭은 하지 말라는 요구는 누리 예산으로 명품을 사야겠다는 유치원 원장 수준의 부끄러운 칭얼거림이다.

화려한 창업과 4차 산업혁명의 환상에서도 깨어나야 한다. 선진 대학의 이색적인 노력을 흉내 내겠다는 어설픈 억지춘양도 할 만큼 해보았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기업의 온갖 황당한 요구에 휘둘리는 맞춤형 교육도 무의미한 것이다. 진정한 교육은 외면하고 창업과 연구에만 매달리는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다. 변죽만 요란한 엉터리 혁신은 내던져버려야 한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원칙이다. 대학의 근본은 역시 미래를 개척할 학생의 교육과 학문 존중의 사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교육과 교육을 위한 연구에 변칙적인 지름길이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멀고, 가파르고, 험하더라도 ‘정도’(正道)를 따라가는 것이 원칙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학생들에게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다양성’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학을 집단이기주의의 진흙탕으로 만들어버린 전공 ‘칸막이’를 확실하게 제거하는 일도 중요하다. 자신의 전공에 높은 칸막이를 쌓아두고 홀로 고고하게 안주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과 연구가 모두 불가능하다. 칸막이는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을 지키려는 몸부림의 결과일 뿐이다. 공허한 융합보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이 더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냉철하게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적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넘쳐나는 통계 자료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능력도 가르쳐야 한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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