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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낙인찍기와 모욕주기…관이 주도하는 교육신뢰회복의 그림자
대학 낙인찍기와 모욕주기…관이 주도하는 교육신뢰회복의 그림자
  • 박순진 대구대·경찰행정학과
  • 승인 2019.01.28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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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대구대·경찰행정학과

아침에 연구실에 나가면 컴퓨터를 켜고 주요 뉴스를 챙겨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명색이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교수로서 세상살이에 눈과 귀를 닫고 살 수는 없지만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보고 있자면 깜짝 놀랄만한 충격적인 사건들이 하도 많아 뉴스 보는 횟수를 가능하면 줄이고자 애쓰게 된다. 필자는 범죄문제가 전공이라 범죄와 일탈에 관련된 뉴스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세상 험한 뉴스는 다 챙겨보게 되는데,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다 보니 종종 교육 관련 뉴스가 눈에 띠면 특별히 꼼꼼하게 챙겨보게 된다.

금년도 교육부가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 중에 교육신뢰회복이 단연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말 교육부는 각 시도 교육청의 감사결과를 분석해 유치원부터 초중등교육에 이르기까지의 부정비리를 발표하고 교육비리 근절과 신뢰회복을 강조한 바 있다. 새해 들어서도 학사부정 등과 관련된 일부 대학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교육신뢰회복을 주요 정책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교육부는 교육신뢰회복을 위해 학사 부정 실태 조사 결과 발표에 이어 전담조직을 운영하는 등 교육신뢰회복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교육계에 비리가 일상화돼 만연한다면 그것은 국가적으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항상 국민적 관심이 크다. 교육현장에서 부정과 비리에 발견되면 대부분 언론이 중요한 이슈로 다룰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부정적 여론이 명백하고 부정비리의 근절을 요구하는 국민적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표출된다. 교육문제를 다룬 언론보도에는 항상 많은 댓글이 달리는데, 범죄나 비리에 관련된 기사에는 국민적 분노와 혐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곤 한다.

지난해에는 유치원에서부터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각종 부정과 비리가 끊이지 않고 뉴스거리가 되면서 교육에 대한 국민적 실망과 분노가 크게 높아졌다. 보도된 사례들을 보면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써 낮이 뜨거워진다. 다행히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특히 근자에는 교육 현장에서 부정과 비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여전히 언론에는 충격적이고 공감하기 어려운 일탈적인 사례들이 보도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냉정하게 보면 부정과 비리는 일탈적인 사례에 다름 아니다. 일탈적인 몇몇 사례를 일반화된 관행이라 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 어느 곳이든 부정과 비리가 있다면 이를 근절하자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물며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교육 현장에 자리 잡은 부정과 비리 행위가 있다면 당연히 밝혀내고 처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일탈은 일탈일 뿐이다. 개인의 일탈 행위든 조직의 부정과 비리든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연초부터 정부가 나서서 마치 일탈이 일반화된 관행인양 요란스럽게 광고하듯 할 일인가 생각해볼 일이다.

지난 수년간 교육부가 주도한 대학정책을 보면 대학사회를 이런저런 기준으로 평가해 구분하고 차별해온 부분이 적지 않다. 앞세운 명분이야 나무랄 데 없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순위에서 뒤처진 대학들이 낙인과 불명예를 피할 수 없었다. 그 동안 대학은 거듭되는 과도한 평가에 만성적인 피로감을 호소해왔다. 정부로서는 재정지원을 통해 대학의 건전한 발전을 추진해왔다고 하겠지만 그 사이 대학의 자율성은 점차 사라지고 교육 현장에서는 획일성만 강화됐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부정비리를 엄단해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데에야 누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교육계에서 부정비리가 있다면 엄단해야 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신뢰회복을 위해 일부에서 예외적으로 저질어진 부정비리 사례가 마치 대부분 대학에 만연되어 있는 듯이 공표하거나 대학을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헌법은 고등교육의 자율성을 중요한 가치로 명시하고 있다. 관이 앞에 나서 대학을 낙인찍고 모욕을 주면 신뢰가 회복될 것인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박순진 대구대·경찰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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