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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 중국교류 10년, 중국 관련 학계의 분화
학술동향 : 중국교류 10년, 중국 관련 학계의 분화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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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학파-본토학파 양분화...'正典의 재구축'과 연결돼

 

북경대 철학대학.

중국 文史哲 관련 학계에 대만학파와 북경학파의 구분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1992년 중국 유학길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본토로 건너간 유학생들이 속속 돌아와 학계에 자리를 잡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만과 중국은 냉전시기에는 학문적 추구사항이 정반대에 가까웠다. 중국학자의 책이 대만에서 출판되는 등 학문적 교류가 빈번해진 요즘도 학제편성이라든지, 연구소재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때문에 과거 대만에서 배워온 학자들과 최근 본토에서 배워온 비교적 젊은 학자군 사이에 대화와 토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학풍과 연구소재

그렇다고 이것을 대립과 갈등의 양상으로 볼 수는 없다. 김성환 군산대 교수는 "대만학파니 본토학파니 구분하는 것은 시대를 역류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김 교수는 "대만에서 유학한 분들이 최근 중국에 건너가 다시 공부하는 게 추세"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도 사실이다.

1992년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고 대만과는 국교가 단절됐을 때 대만에 있던 많은 석사과정생들이 중국행 비행기를 탔고, 지난 10여년간 많은 중견학자들이 교환학자의 자격으로, 아니면 박사과정생으로 북경대나 청화대를 찾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국내에 가지고 오는 느낌은 "학문적 담론에 적응하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것. 아직까지 대만적 전통과 중국적 전통은 상호 이질적인 측면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문화열 같은 학풍이 국내 강단을 휩쓸 경우, 두 이질적인 전통은 상호 흡수되는 과정 없이, 한쪽이 다른 한쪽을 누르는 권력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곳이 중문학계다.

김원중 건양대 교수는 "대만적 전통이 너무 쉽사리 부정되는 것 같아 뜨악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사회의 현실에 대한 관심이 철저히 통제됐던 10년 전까지의 대만에서 문학연구는 과거 고전들을 현대어로 풀어내고 계승하는 작업이 주류였다. 이 때문에 이승환 고려대 교수, 오이환 경성대 교수 등 몇몇 국내 유학자들이 반발하고 하와이대나 인근 일본, 홍콩 등지로 대학을 옮기는 사례도 있었다.

그럼에도 고전에 대한 면밀한 읽기, 서구 이론에 대한 탄탄한 독해의 전통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 전통이 한국 학계의 자산임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엔 상황이 역전돼 현대문학을 강조한다. 그리고 '노자' 등 제자백가서의 여러 판본들을 둘러싼 정전의 탈구축이 진행되면서 기존의 정전에 대한 평가절하가 수반된다. 실제로 唐詩나 당송팔대문 등이 전공필수에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김 교수의 주장은 "이런 과정이 너무나도 쉽게, 별다른 갈등도 없이, 혼합적 국면도 없이 이뤄진다"는 것. 과거의 무분별한 대만수입이 중국수입으로 대체된 것밖에 무엇이냐라는 게 김 교수의 속내다.

대만에서 석박사 후 중국 유학 경향

본토 유학파를 보는 철학 전공자들의 시선도 곱지않다. 199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중국이 돈을 벌어들일 목적으로 한 학과에 10∼20명씩 유학생들을 받았고, 그래서 수업이 제대로 됐겠느냐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그리고 최근까지 중국 북경대를 비롯한 국립대들이 근대적 학문편제를 갖추지 않아 석박사 과목 이수, 논문자격시험, 제2외국어시험 등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대만에서는 7∼8년이 걸렸던 학위를 그곳에서는 4∼5년만에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의 지적이다.

조민환 공주영상정보대 교수는 "얼마 전 중국에 머물다 왔는데, 북경대의 문과 계통 교수들은 청화대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이 말은 천안문 사태 이후 장쩌민 정부가 북경대 교수들을 농촌으로 귀양보내는 등 학문활동을 원천봉쇄함으로서 탄압했고, 그 이전에도 전통과 단절돼 있었기 때문에 북경대의 학문적 맥이 현대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말을 정반대로 들으면 대만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대학자들 밑에서 제대로 배울 기회가 있었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만학파' 일부는 중국 본토출신 신진학자들의 학문적 기초에 의심 섞인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그래서 국내 대학에서는 대만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중국에서 한번 더 박사를 마친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한편, 본토 유학자에 쏠리는 의혹의 시선을 "일부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로 일축하는 이들도 있다. 가령, 지방대의 경우 대만출신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는데, 학술대회를 열 때 주축에서 본토 출신을 배제하는 사례도 아주 없지는 않다.

중국유학이 본격화된 지난 10년, 대만 유학에 이어 북경 등지의 본토 유학자들이 증가하면서 '중국학'의 위상은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걸맞게 학계의 내실있는 조율이 뒤따르고 있는 지 점검해볼 때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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