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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과 선택’에 관한 의문
‘판단과 선택’에 관한 의문
  • 안윤옥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대한암연구재단 이사장
  • 승인 2019.01.2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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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안윤옥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대한암연구재단 이사장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내가 선택했던 5명의 후보 모두가 낙선했음은 물론 득표 순위도 3위 언저리 정도이었다. 그 후보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가 요즈음의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자괴심이 들기도 하였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만날 때마다 ‘판단과 선택/의사결정’을 하게 되는데, 필자가 예방의학(=질병 발생의 인과관계 탐구) 학문에 입문(1972년)한 이후 수십 년 동안 줄곧 가졌던 <판단과 선택>에 관한 의문이 있었다. 학문하면서 내리는 <판단/선택>과 일상생활 속에서 내리는 <판단/선택>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인가? 아니 같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학문에서와 일상생활에서의 <판단/선택>이 서로 다른 원칙이나 방식에 의해 행하는 것이 행여 이중적인 행태는 아닌지? 하는 의문이었다. ‘진리는 하나’일 텐데. . .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십수 년 전에 얻었고, 그 답이 옳다는 것을 그동안 확인하기도 하였다. 과학학문에서 이루어지는 <판단>과 일상적 삶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은 그 목적과 지향점이 각기 다르다는 것에서 답을 찾은 것이다. 목적과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원칙이나 방식도 자연 다르다.

과학학문에서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진위판단(眞僞, true or false)>이다. 경험하고 관측한 현상의 실체(實體, reality) 즉,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참모습, 진리(眞理, truth)를 규명하는 것이다. 사람 인지기능의 하나인 진위판단은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evidence-based) 이성적 사고(思考), 즉 추론(推論, reasoning)으로 작동되며, 의식적이고 통제적으로 이루어지는데, 통상 ‘의심/회의’ 또는 ‘반대로 생각하기’(contrarianism)는 이성적 사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과학적 지식이란 논증과 추론을 통하여 <진위판단>이 이루어진 형이상학적/개념적 이해(앎)를 말한다. 

반면, 일상적 삶에서는 <가치판단(價値判斷, good or bad/right or wrong)>이 그 지향점이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원초적 본능실현에 유리하고 유용한, 그리고 안전한 요소를 판별, 평가하는 판단이다. 따라서 동일한 대상에 대한 <가치판단>의 결과는 시간/공간 또는 문화적/사회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합리성을 도출하는 준거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주관적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가치판단은 신념을 바탕으로(faith-based) 통상 ‘마음’ 또는 ‘자아’라고 부르는 직관적 사고, 혹은 다른 말로 심리적 형질의 연상기억(associative memory)에 의해 무의식적이며 자동으로 작동되는 인지기능이다. 이러한 직관적 사고/심리적 형질(=마음)은 인류 진화과정의 산물(자연선택 및 문화선택)로 밝혀졌는데, 이를 학자에 따라 theory of other/my mind(TOM/TMM), folk psychology, fast thinking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수결이나 대중성이 진실/진리의 징표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이는 <가치판단>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비대중성과 쇼킹한 것도 진실의 징표가 될 수 없다. 

2016년 영국에서 Oxford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post-truth>이었다. Brexit 국민투표 과정에서 나타난 상황을 설명하는 단어이기도 하다는데, 일반 대중의 여론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truth가 아닌, feeling 또는 faith에 기반을 둔 선전/호소(campaign), 즉 post-truth이었음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6·13 지방선거에서 내가 행한 판단과 선택은 분명 <가치판단>이었으니 남들의 판단/선택 결과와 다름은 당연하였고, 나아가 6·13 지방선거 결과를 post-truth라는 단어로 설명하니까, 나 자신의 자괴심도 해소된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꼰대는 아직 아니라는 신념(faith)을 갖게 된다.

 

안윤옥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대한암연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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