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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달 로케트' 기사 과학을 빙자한 냉전적 시각 반영
소련의 '달 로케트' 기사 과학을 빙자한 냉전적 시각 반영
  •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 승인 2019.01.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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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광장 제목: 절대 빈곤의 시대와 우주 경쟁
인천 상공을 비행중인 미 해군 전투기(1951년 8월 3일). 전쟁은 한국인에게 하늘의 의미를 새롭게 각인시킨 계기였다.
인천 상공을 비행중인 미 해군 전투기(1951년 8월 3일). 전쟁은 한국인에게 하늘의 의미를 새롭게 각인시킨 계기였다.

 광주민주화 항쟁을 무력 진압하고 정권을 침탈한 군인들 때문에 신문이 파행 제작을 겪던 1980년 5월 20일 한국일보는 중공(당시 표기)이 ICBM 발사에 성공했다고 3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그로써 미국이 사정권내에 들었다는 냉전적인 해석과 함께. 이제는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嫦娥) 4호가 2019년 1월 3일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에 착륙한 시대다.

 돌아보면 그것은 수십 년 전 한국인들의 꿈이기도 했다. 1959년 이후 한국일보 지면에는 우주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소련이 우주 정류장을 꿈꾸고 있다는 10월 16일자 기사는 소련의 업적을 애써 폄하하려 한, 지금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어정쩡한 과학 기사였다. 냉전적 시각이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소련은 4일 월세계에 감추어진 부분을 역사상 최초로 보기 위한 희망에서 많은 장치를 단 우주 ‘스테이숀’을 달에 발사하였다. 모스크바방송은 이 우주 로케트가 대략 1만 킬로의 거리를 두고 달주위를 돌아 8자형 모양의 타원궤도를 따라 지구에 다시 돌아온다고 보도하였다.
  소련 방송 해설자는 이 우주 로케트가 매우 오랫동안 궤도상에 떠돌 것이며 아무래도 그 수명은 지난 5월에 발사되어 아직도 떠돌고 있는 스푸트니크 3호보다 짧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최신 소련 성공담은 스푸트니크 1호 발사 2주년째 되는 날에 발표되었다. 모스크바 방송은 이 우주 스테이숀의 최종 궤도가 어떤 형태의 것이냐에 관한 의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영국의 로케트 전문가들은 이 우주 스테이숀이 달을 한 바퀴 돈 다음 지구 주위를 폭이 넓게 돌게 될 터인데 그, 회전 중 달과 지구 사이의 이 우주 로케트의 위치는 지구로부터 24만 마일 거리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달 자체의 공전 때문에 이 우주 스테이숀이 예정 궤도대로 달 주위를 회전할 것 같지 않음이 명백하다.

  이 우주 스테이숀의 중량은 연료를 빼고 1천553킬로그람이며 과학 전파 기구도 장치되어 있다. 여기에는 또한 자동 온도 조절기가 있으며 처음으로 달의 배후면을 촬영하여 천문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을 애태워온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공식 발표는 이 우주 스테이숀이 매일 4시간씩 그 과학적 사실을 송신하여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모스크바 시간으로 4일 점심 시간에 이 연구소로부터의 신호가  모스크바 라디오에 직접 전달되었다. 그 신호 소리는 마치 바이올린의 음조와 비슷하였다.

  모스크바 방송 아나운서는 전국 청취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흥분하여 보도하였다. ‘동무 여러분,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방금 우주 물체에서 들어온 신호를 들으십시오.’ 이 때는 이 우주 스테이숀이 대략 인도양 상 지구로부터 10만8천 킬로의 거리에 비행중이었다. 유성간 조사기가 4일 아침 중으로 다단계 로케트에 발사되었다. 이리하여  우주 스테이숀과 우성간 조사기가 달쪽으로 타원형을 그리면서 비행중이다. 제대로 진행한다면 이들은 대략 2일 12시간 비행 후에 달주변에 도달할 것이다.

   소련의 드브론라로프 교수는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완전 자동체의 이 우주 스테이션이 달과 지구 사이의 유성 공간에서 과학적 탐구를 가치 있게 수행할 것’이라고 해설하였다. 그는 이어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이 물체는 스푸트니크 3호처럼 2천킬로 이하로 지구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궤도상에서 자동 스테이션은 매우 장기간 비행될 것이며 그 수명은 스푸트니크의 그것보다 짧지 않을 것이다.’ 이는 소련이 발사한 세 번째의 우주 탐색기이다. 그 첫째의 것은  지난 정월 2일 발사되어 달을 지나 태양 주위에서 무한 궤도를 달려갔으며 둘 째의 것은 지난 9월 14일 소련기를 달고 달 표면에 파묻혀 버렸다.

  천문학자 바라바세프는 최근의 소련 성공이 달 표면에 그대로 충돌한 전번의 것보다 한결 어려운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번 로케트가 운반한 장치는 특별 송신기의 도움을 받아 지구에서 관찰할 수 없었던 달의 배후면 자료를 얻게 하여 준다. 이번의 성공은 우주 여행 내지는 태양계 여행의 단계에 돌입하였음을 말하여 준다.’
  한편 영국 과학자들은 달 배후면의 조사가 어떤 ‘센세이쇼날’한 사건을 일으키리라고는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매카시즘적 대립이 실재해 있었던 시대, 과학의 이름을 빙자해 상대 진영을 폄하하려는 시도로 기사는 끝을 맺었던 것이다.

  “소련은 14일 그의 달 로케트가 월세계에 도달했다고 발표하였다. 소련은 모스크바 시간 상오 0시 36분(한국 시간 14일 상오 7시 6분)에  ‘함마’와 낫이 그려져 있는  소련 국장으로 장식된 소련의 달 로케트가 모스크바 시간 1일 상오 0시 2분 24초 GMT 21시 2분 14초(한국시간 14일 상오 6시 32분 24초)에 월세계에 도착했다고 발표하였다. 모스크바 방송 국내 방송을 위해서 꾸며진 타스 통신의 발표문은 이 사실을 발표하면서 인간이 만든 물체가 지구 이외의 다른 천체에 도달한 것은 인류 사상 처음이었다고 자랑하였다.”
 
우주 개발이라는 새 키워드 아래 버전업되어 가던 미소간 체제 경쟁이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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