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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지(知)의 횡단: 언어-개념-근대 
번역과 지(知)의 횡단: 언어-개념-근대 
  • 조재룡 고려대·불어불문학과
  • 승인 2019.01.2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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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예술의 역사적 전환'_ 조재룡 고려대 교수(불어불문학과)

번역은 지(知)의 교류와 소통에 관련된 언어-문화 활동 전반을 아우른다. 번역을 토대로 학문과 개념, 지식이 사방으로 확산되었으며, 인문학의 다양한 기록들이 대륙을 넘나들며 교류의 반열에 올라섰다. 번역은 ‘근대’를 개장하려는 한 방편이었으며, 동서양에서 두루 ‘언문일치’를 주도해나간 핵심이자, 모국어의 성립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인류의 지식은 번역을 통해, 번역 안에서, 이동하고 횡단하고 순환하고 변형되면서, 세계를 이해하고 문화를 점유하는 고유한 지성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번역은 문학과 사상, 철학과 문학, 정치와 문화의 다소간 어긋나 있는 지평들을 넘나들며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라는 단순한 정의에서 벗어나, 지식과 문명의 횡단을 통해 개념과 사유의 창문을 열고 ‘지(知)’의 순간을 고안하는 주체였다.

번역을 통한 자국어 인식과 탈중심화 

한자문화권에 속한 동양의 국가들,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번역을 통한 자국어 인식과 탈중심화 과정이 일어났다. 1446년 훈민정음이 창조되어 한국어의 필사 가능성이 생겨났다. 이른바 ‘언해(諺解)’라는 번역 작업이 이후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언해는 순전히 한문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 그러니까 뜻을 풀어 한글의 표기체계에 따라 기술한 번역 작업을 가리키며, 한문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거나 한국어를 한문으로 번역하는 일을 언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선조 1587년에 중국의 주자가 지은 『소학(小學)』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글로 기록한 『소학언해(小學諺解)』가 언해라는 명칭이 붙은 최초의 책이다. 언해는 불교 경전을 필두로 유가의 경전, 의학 서적, 병법 서적뿐만 아니라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와 같은 중국어 학습 서적, 도덕 수양 서적, 기독교 관련 서적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번역의 대상이 되는 원전의 성격에 따라 번역의 태도와 방법이 달라질 수 있으며 동일한 원전이라도 번역 시기에 따라 한국어의 변화가 반영될 수 있다. 학문의 독점 대상이었던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번역’이었다는 사실은 라틴어로 된 성서나 고전을 프랑스어나 영어로 이해하는 과정이 번역이었다는 말과 동일하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것을 말한다. 번역이 경전/고전을 당시의 입말(속어)로 풀어내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지만, 이를 통해 ‘언과 문의 일치’를 이루어낸 시기를 따져보면, 번역을 통한 지식의 정착과 앎의 자기화 과정에는 양쪽 사이에 반세기가 조금 모자란 차이가 자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문을 중심으로 놓는 입장에서 ‘우민’이라는 내부의 타자를 향해 중화(기원)의 진짜 글을 깨우치고자 하는 또 다른 언어적, 정치적 행위이자 제도”라 할 언해는 번역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어는 번역을 통해서 촉진되고 고안되고 형성된 것이다. 

번역은 ‘근대-언어-개념’이 지(知)의 횡단 속에서
형성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장’이었다.

‘근대’-‘개념’-‘언문일치’, 그리고 번역 

번역은 원문의 ‘텍스트-문화’ 요소를 목표 언어와 역문의 동등한 ‘텍스트-문화’ 요소로 대체한다. 따라서 번역 작업은 필연적으로 목표 언어와 도착 언어를 동시에 ‘돌보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번역은 출발어의 ‘언어-문화-표현-지식’을 도착어에서 ‘동등한’ 상황에 위치시키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며 번역은 모국어-문화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고대 엘리트들의 공용어로 위세를 떨쳤던 동양의 한문이나 서양의 라틴어의 다양한 언어로의 번역은 이 공용어로부터의 ‘중심 이탈’-‘탈중심화’를 이끄는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19세기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은 번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구 문헌의 번역은 곧 서구 사회와 문명과 사유의 번역이었다. 그러나 서구의 사상과 학문을 전통 사회의 언어로 수용하고 표현하고 옮겨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서구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그 개념어에 합치하는 자국어를 찾아내거나 새로 고안해내야 했다. 특히 조선, 일본, 중국의 동양 삼국은 한문으로 만들어진 문화적 총체인 ‘한문맥(漢文脈)’을 동일한 언어-문화의 기반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새로운 사상을 담아낼 문자와 개념어를 고안해내는 과정은 근대 서양어의 번역이었을 뿐 아니라, 동양 삼국 간의 번역어 교환과 교섭과 영향이기도 했다. 번역은 서구 문명으로 대변되는 근대를 이해하고 포착하고 해석하고 수용하는 ‘문명의 창’이었다. 동양 삼국은 번역이 두드리고 타진하여 뚫어낸 창문으로 ‘근대’라는 새로운 문명을 맞이했다. 

번역은 말(言)과 글(文)의 일치를 궁리하면서, 서구의 지식과 사상의 다시-영토화하는 과정이자 계몽과 합리를 전파하고 교육할 ‘이데올로기의 변형자’의 자격으로, 언어·정치적 상황을 주도해나갔다. 번역은 “새로운 관계, 현대성, 신어(新語) 생성의 정착”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근대-언어-개념’이 지의 횡단 속에서 형성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장’이었다.

조재룡 고려대·불어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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