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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글에는 ‘꽃’이 없어 으뜸”
“자네 글에는 ‘꽃’이 없어 으뜸”
  • 교수신문
  • 승인 2019.01.2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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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스승 15. 스승 나제만(Theodor Nasemann) 교수를 기리며
나제만 교수 Prof. Theodor Nasemann(1923~)

필자가 만난 스승들을 생각하면, 세상의 여러 복(福) 가운데 인복(人福)이 최고라던 필자의 모친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필자가 나이 스물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 많은 곡절을 겪으면서도 학업을 계속해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 자격까지 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훌륭한 스승들을 만난 덕분이다.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가자마자 지도 교수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길을 잃은 필자에게 쉬른(Schirren) 교수를 대신해서 새로운 길을 밝혀주신 분이 바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나제만 교수이다. 지도 교수가 안 계신 상황이니 어떤 방향으로 연구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 와중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나제만 교수는 키가 190cm, 몸무게 100kg이 넘는 거구로 첫인상은 ‘하얀 부처님’ 같았다. 그래서 그분 별명이 테디 베어였다. 나제만 교수는 필자에게 “자네, 내 밑에서 공부하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임상 개업의가 되려고 하는가? 아니면 대학에 남아 아카데믹 커리어를 쌓겠는가?” 하고 물으셨다. 필자는 “제게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연구하는 교수의 길을 택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제만 교수에게 전문의 수련과정을 지원한 사람이 무려 스물여덟 명이나 되었고 필자가 스물여덟 번째 지원자였다 한다. 하지만 나제만 교수는 필자를 소위 말하는 특채로 뽑으셨다. 그렇게 해서 필자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필자가 레지던트 1년 차였을 때다. 나제만 교수는 아카데믹 커리어를 쌓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논문을 쓰게 했다. 필자에게도 논문 쓰는 연습을 겸해 ‘증례 보고서(Case Report)’를 쓰라고 하셨다. 며칠 밤을 새운 끝에 소논문을 작성해 초안을 드렸다. 나제만 교수는 겉장에 쓰인 “Theodor Nasemann, Sungnack Lee”라는 이름을 보시더니 저자 이름 순서를 친히 바꾸셨다. 필자를 논문의 제1 저자로, 당신은 제2 저자가 되겠다는 의도였다. 필자가 깜짝 놀라니 나제만 교수는 “나는 이미 학계나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네. 이제부터는 자네 이름을 학계에 알려야 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아이디어는 교수님이 주시고 저는 쓰기만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씀드렸지만, 교수님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제만 교수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과제를 주셨다. 하루는 면담을 요청하고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렸다. “교수님 저는 이제 연구교수직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일 동료들은 이틀이면 다 쓰는 논문을 저는 일주일이나 걸려야 완성합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계속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자 “자네 독일어가 어려운가?” 하고 물으셨다. “아닙니다. 글을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표현이 안 되고 수사(修辭)가 떠오르지 않아 끙끙댑니다.” 교수님은 어깨를 두드리며 “내 밑에서 논문을 쓰는 사람이 여러 명 있네, 그런데 그중에서 자네 논문이 제일 훌륭해. 간략하고 핵심을 찌르지.”라고 칭찬하셨다. “자네 글에는 ‘꽃’이 없어 으뜸”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이셨다.

“자네, 1930년대 비행기를 본 적이 있나? 제트기와 옛날 프로펠러 비행기를 비교해 보면 제트기가 얼마나 멋이 있는가? 옛 비행기에서 군더더기 빼고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최적화한 유선형 제트 비행기,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자네 논문이 그렇다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명료하지.” 필자의 논문이 ‘최고’라며 제자를 상실감의 수렁에서 끌어낸 스승의 손길이어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후 필자는 제자들의 논문을 지도할 때 나제만 교수의 가르침을 따랐다. 필자의 아이디어라 해도 제자들이 논문을 썼으면 필자가 제2, 제3의 저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게다가 교정을 봐준 것 정도로는 절대 필자의 이름을 넣지 않았다. 이것은 필자가 지금껏 지켜온 원칙이기도 하다.

필자는 그동안 130여 편의 논문을 썼다. 그때나 지금이나 글을 쓸 때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교수의 길을 그만두려는 필자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나제만 교수의 값진 선물이기에 그 선물을 평생 지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글은 꽃처럼 화려(Blumenreich)하지만 자네 글은 간결하다.”고 하셨던 스승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
뮌헨의대를 졸업하고 프랑크푸르트대, 연세대 의과대에서 가르쳤다. 아주대 의무부총장, 가천대 명예총장, 현대미술관회 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를 역임했으며 독일연방공화국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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