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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제가 일본에 한국 저항시인 작품 소개하는 이유는요”
[인터뷰]“제가 일본에 한국 저항시인 작품 소개하는 이유는요”
  • 전세화
  • 승인 2019.01.2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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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문병란‧김준태 시 일본에 알리는데 몰두
"민주주의 가치, 일본사회 성찰하는 촉매제 되길"

민주주의와 반전의 가치를 지향하는 저항문학을 통해 한일 문학 교류를 이어가는 학자가 있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사진‧일문학)는 5·18과 광주정신을 상징하는 문병란·김준태 시인의 작품을 일본에 소개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등이 일본에 소개돼 주목받았고, 최근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5만부 이상 팔리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문학에 대한 일본 독자의 관심은 미미한 수준이다. 더욱이 사회참여 문학의 입지가 매우 약한 일본에서 저항문학을 소개하는 김 교수의 작업은 무모해보일 정도다.

문학을 통해 독재정권의 폭압에 맞섰던 한국 작가 정신이 우경화된 일본사회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이달 중 ‘한국에서 바라본 전쟁과 문학’이라는 주제로 일본에서 세 번째 논문 발표를 앞둔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나눴다.

그동안 일본에 소개한 한국 문학작품과 일본 독자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2014년 저와 교류하는 일본 주오대학 히로오카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광주를 방문해 5‧18 역사탐방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이 돌아간 뒤 광주의 시인 문병란에 대해 소개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죠. 히로오카 교수에게 문병란 시인 프로필과 ‘희망가’를 일본어로 번역해 보냈고, 그가 공감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 작업이 2017년 10월 문병란 시집 『직녀에게, 1980년 5월 광주』라는 타이틀로 출간됐어요. 그런데 그때 마침, 일본 주오대에서 관련 심포지엄이 열렸는데, 김준때 시인이 초청강연을 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 일본 출판사에서 김준태 시집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지난해 『김준태 시집-광주로 가는 길』이 일본서 출간됐습니다. 일본의 진보 언론인 ‘아카하타’ 신문에서 5월 18일자에 『문병란의 5월이여 다시 부활하라』를 소개하며,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광주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일본사회의 전반적 우경화 흐름 속에서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인 한국 저항시인의 가치를 전파하는 일은 녹록치 않아 보이는데요.
“일본에서는 시집이 팔리지도 않거니와 시인의 현실참여를 일반적인 목소리로 수긍하지도 않으며, 순수문학보다 장르소설을 읽는 독자층이 훨씬 두텁습니다.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문학과 일본문학의 현실적 소재는 다르다고 봅니다. 우리에겐 식민지나 남북분단의 현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6‧25전쟁이나 제주 4‧3사건, 5‧18과 같은 어두운 과거사가 절실한 문학의 소재입니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원폭 문제나 오키나와의 현안, 소외된 인간 문제가 때때로 문학의 소재로 등장하긴 해도, 우리보다는 문학적 표현이 강렬하지 않습니다. 문학의 역할이 일상적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거니와 변혁을 모색하는 사회성이 그다지 강조되지도 않습니다. 일본문학에서는 일상생활의 문제나 자연재해, 환경문제 등 매우 현실적인 소재가 주를 이룹니다. 일본에서 앙가주망(engagement‧사회참여)이나 저항문학이 시민들에게 호응을 얻거나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상황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경화된 일본사회를 외부의 시선, 특히 한국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눈이 절실하다고 느낍니다.”

일본에서 주류 작가 중에 저항의 목소리를 낸 사례는 없나요? 일본의 전체주의를 비판한 나쓰메 소세키가 떠오르는데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일화 하나를 소개할게요. 나쓰메 소세키가 세상을 뜨기 2년 전의 일입니다. 1914년 4월 제자들이 사회주의자인 사카이 도시히코와 함께 잡지 <반향>을 창간하자 소세키는 창간호에 제목을 붙이는 등 그 잡지와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그곳에서는 바바 고초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가 1915년 참의원 선거에 나가자, 소세키는 적극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나섭니다. 바바는 당시 입후보자 중에서 가장 진보적 성향의 민주주의를 주창했지요. 그뿐 아니라, 그가 입후보한 이유는 ‘여성을 포함한 선거권의 큰 확장, 군벌의 발호 반대 및 군부대신 무관제의 철폐, 군비축소, 치안경찰법 폐지, 영업세를 포함한 악세 폐지’를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소세키가 <나의 개인주의>를 게재한 『바바 고초 가쓰야 입후보 후원 현대문집』은 이러한 경위를 거쳐 탄생했습니다. 소세키는 문부성이 주는 박사학위를 거부하기도 하고 정부의 문예위원 제도에 대해서도 혹독히 비판하는 등 정부에 대해 내키지 않으면 거부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줄곧 보였는데요. 그러나 그가 일본사회에 메스를 가하는 비평과 저항정신은 무의식적인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세키가 일본이 침략했던 조선이나 중국 등 동양사회를 보는 시각과 일본사회를 직시하는 시각의 괴리가 그러한 점을 잘 드러낸다고 봅니다.”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저항문학을 한일 문학 교류의 주제로 삼았는데요. 계기가 있었나요?
“2001년 일본에서 일본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 일컫는 나쓰메 소세키 연구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나쓰메 소세키 연구의 권위자인 이즈 도시히코 요코하마시립대 명예교수와 교류하게 되면서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이분은 나쓰메 소세키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조선의 문제나 프롤레타리아 문학연구도 같이 진행하는 분이었죠. 이분에게 영향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일본에서는 근대화과정 속에서 자유민권운동의 태동 후 프롤레타리아문학 운동이 뿌리를 내리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1910년대 후반 1차 세계대전 후 전쟁의 여파로 일본은 경제공황을 겪었고, 그 영향으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무산계급의 이념이나 사상이 퍼지는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이 활발히 전개됩니다. 그러다가 1930년대의 만주사변을 거쳐 중일전쟁의 시기에 이르러 정부와 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쇠퇴하고 말아요. 2000년 후반 이후 일본에서 비정규직, 저임금과 해고의 문제가 불거지고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이 활발했던 그 시대를 회고하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비록 비주류의 목소리지만 민주주의와 반전의 가치를 지향하는 문학적 움직임임에는 틀림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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