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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삶을 세상에 끌어안은 스승
파괴된 삶을 세상에 끌어안은 스승
  • 서숙 이화여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과
  • 승인 2019.01.0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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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스승 14. 개안의 기억을 주신 분, 윤정옥 명예교수(1925-)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인권운동가이자 영문학자이고, 지금의 나를 키워주신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즐겨 부르는 이 노래가 새삼 떠오른다. 그 옛날 대학원 시절, 선생님의 수업을 처음 들었다. 오랫동안 미국에 계시던 선생님이 귀국해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쪽 머리를 뒤로 올리고 긴치마 저고리에 하이힐을 신은 선생님의 패션은 특이했다. 선생님이 그야말로 온 몸으로 온 정성으로 수업을 진행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 윤정옥 명예교수
▲ 윤정옥 명예교수

우리들도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는 웅얼거리는 학생들의 말을 끝까지 듣고 사소한 것이라도 좋은 점과 특이한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살려냈다. 우리들이 지레 겁먹거나 주눅 들어 할 말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마음 써주시고 격려했다.

나는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소설을 시간적 공간적 맥락에서 읽는 법을 익혔다. 그 때까지  신비평 식의 텍스트 분석에 익숙해 있던 나는 텍스트가 고립된 세계가 아니라 그 속에 역사적 사회적 상황이 씨줄날줄로 연결돼 있고 인물의 행동과 정서적 심리적 특징은 그들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환경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갔다. 이런 수업은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낯설었던 젠더와 계층과 인종에 대한 담론들을 아우르고 있었던 셈이다. 영문과에 여성문학이라는 강좌도 처음 열리고 이화여대 대학원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학과가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수업은 나에게는 일종의 눈을 뜨게 하는 경험이었고 이는 후에 내가 학생들과 소설을 함께 읽고 공부하는 기초가 된다.

잘 알려진 대로 선생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세상 한가운데로 꺼내서 공론화 시킨 분이다.
“나는 매일 서울역에 나갔어. 해방이 됐는데 학도병들과 징병당한 젊은이들은 쏟아져 나오는데, 젊은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 거야. 일본에 끌려간 그 많은 여자아이들은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해서 선생님은 정신대 문제에 온 생애를 걸게 된다.

정신대 또는 위안부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때부터 선생님은 방학이면 자비를 들여 돌아오지 않는 여성들을 찾아 나선다. 은퇴 후에는 더욱 본격적으로 필리핀, 태국, 버마, 대만, 오키나와, 남태평 등으로 숨어사는 그들을 몇 번이고 찾아가서 굳게 다문 그들의 마음을 열고 말을 듣는다. 그들의 잊히고 파괴된 삶은 이렇게 해서 세상 속으로 들어온다. 선생님은 이효재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여성학자 및 여성단체와 함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만들고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과 국제 인권단체들과 함께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히로히토 천황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아낸다.

선생님은 지금도 이 여성들의 삶을 증언하기 위해서 고령에도 개의치 않는다. 일본 시골 학교 여학생들과 미래 세대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비행기로 기차로 버스로 어디든지 기꺼이 나선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제자들과 젊은이들에게 너그럽고 쿨한 스승. 그의 삶은 우리에게 생각과 말이, 학문과 실천이 별개의 것이 아니고,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늘 그래왔듯이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과 책임감’을 온 몸으로 살아내신 선생님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서숙 이화여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과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화여대 인문대학장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서숙교수의 영미소설 특강』 시리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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