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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공화국 서민의 작은 일탈
제2 공화국 서민의 작은 일탈
  •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 승인 2019.01.0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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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광장] ⑮ 소시민의 서글핀 일상 - 즉결 처분소

즉결 처분소는 소시민의 서글픈 생활 단면을 보여준다. 범죄라기보다는 시대의 고단함을 비춰주는 창이기 십상이다. 1961년 5월 4일의 한국일보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먼 훗날 성매매의 주택가 침투를 예언한 듯한 기사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존재하는 일상. 그러나 평범한 풍경이 유독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장차 닥칠 격변의 암시처럼)

▲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고아들
▲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고아들

“허구한 날 일어나는 살인, 강도, 절도 등 중범죄는 고사하고 정말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어기고 마는 ‘경범죄’는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형형색색의 사건으로 빚어진다.  경범들을 다루는 즉결 심판소에서는 살기 위한 발버둥으로 법을 원망하기 일쑤인데 어찌하랴, 법은 인정(人情)만으론 다스리지 못 하는 것. 빙산처럼 냉엄하다. 그러므로 즉결 재판소 법창은 생존 경쟁의 단층을 애절하게 드러내고 있거니와 지난 3월 한 달 동안 만도 즉결 재판소는 1만8천명을 다스렸으니 하루 평균 6백명꼴. 그 법창에 비친 수도 서울의 저류라고 할까, 21세기는 저 모습들과 결별했을까

◇운전수 = 매일같이 덕수궁을 끼고 도는 법원 앞 좁은 길은 자동차의 행렬로 가득 차게 된다. 법규를 위반한 운전수들이 재판을 받으러 나오기 때문이다. 상오 10시부터 하오 2시까지 법정은 운전수들로 메워진다. 호명과 동시에 재판장의 과료, 벌금 도는 구금 처분이 떨어진다.

‘주정차 위반’에 천환 인원 초과 1인당 천환씩 그것도 5명 이상 초과 시는 3일 또는 5일 구류, 속도위반·추월에는 3천환 벌 아니면 구류 3일. 벌금을 물고 난 후에는 다시 경찰의 행정 처분 결과에 운전수들은 마음을 졸여야 한다. 그 기준이 애매해서 교통 순경의 마음 쓰기에 달렸다고 운전수들은 투덜거리고 있다.

한 달 월급이 5만환- 적어도 한 달이면 다섯 번은 벌칙에 걸리게 된다는데 이렇게 되면 최소한 1만환 이상이 벌금으로 나가게 마련이다. 실수입 4만환으로 살림을 꾸려가야만 하는 운전수들의 비애는 이래서 짙어만 간다고. 그들의 위반은 고의인데 그 이유는 차주들의 수입을 올리기 위한 강제 명령에 기인하는 수도, 자신의 부주의 때문도 있다지만 차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은 실직의 위험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반 운전수들이 3월 한 달 동안에 걸려든 수가 1만 5천명, 그들이 문 벌과금 총액이 무려 2천만환. 가난한 그들의 주머니에서 털려나온 돈은 1년이면 무려 2억환이 넘게 되는 것이다.

◇창녀 =  그들의 수는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밤마다 으슥한 뒷골목은 서성대는 그들의 그림자로 꽉 메워지고 있다. 경찰이 적발해서 즉결 심판소에 보낸 그들의 조서에는 으레 본적란이 공란이다. 미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조서끝에는 ‘초범’ ‘전과 1범’ 또는 ‘상습범’이라고 쓴 붉은 글씨(朱書)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상습범’이라고 되어 있다. 고향이 없는 그들-.

태어난 고향이 없을 순 없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 같이 고향을 대지 않는 것이다.
3일 또는 5일 구류 처분을 받는 그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요. 오죽 해서 올라왔겠어요. 그러니까 이 짓을 그만 둘 수는 없어요.”

태연히 어느 창녀는 재판장에게 말한다. “그들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어느 정도 줄겠지요. 그렇게 되면 야단납니다. 주택가로 침투하게 마련이니까요. 근본적인 정부의 대책 없이는 어려울 겁니다”고 즉결 심판소 실무자들은 한결 같이 말하고 있다.

◇도로 취체 규칙 위반 = 거리마다 노점이 줄을 잇고 있다. 골목은 골목대로 노점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밑천 몇 푼 안 드는 장사라는 데서 세궁민들이 생활 수단으로 차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경찰은 노점을 일체 철거시키는 한편 닥치는 대로 즉결 재판에 회부해 온다. 그뿐 아니라 차도 보행자, 신호 위반자 등도 아울러 적발되어 온다. 즉결 재판에서 이들은  정상에 따라 300환에서 5백환까지의 과료를 물고 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은 노점을 안 벌일 수도 없다. 밥줄을 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즘엔 경찰과 노점상이 경쟁이라도 벌이듯이 한쪽에서 적발하면 다른 쪽에서는 다시 열고…. 거리 한쪽에서 작발하면 다른 쪽에서는 다시 열고 적발하면 또 열고….  일정한 터전(시장)을 마련해 주지 않는 한, 없어 질 수 없는 현실이다.

◇음주 취행 = 거리를 걷고 보면 문에 띄는 것은 술집이다. ‘대폿집’ ‘선술집’ 등. 즉결 재판에 회부되는 자들은 거의 ‘대폿집’이나 ‘선술집’에서 죽도록 취하게 마신 다음 행패를 부린 사람들이다.

택시를 잡아타고 정신을 잃어 몇 시간 동안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집에 이르러서는 요금은 주지 않고 주먹질의 만용을 부린 사람, 술김에 지나가는 여인들을 희롱한 사람, 경찰관을 붙잡곤 평시에 먹었던 원한(?)을 풀려다 걸린 사람…. 이 사람들은 법정에선 한결같이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버틴다. 대개의 경우 3일 도는 5일의 구류 처분을 받지만 알고 보면 선량한 시민인 것이다.

◇무허가 음식점 = ‘대폿집’들이 무허가라 해서 걸려든 경우가 많다.  허가를 내라고 권고하는 재판장의 말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나 실상 그들의 수입으론 허가를 맬 수 없다는 것이다.

허가 신청도 복잡할뿐더러 일단 허가를 내면 영업체를 위시한 잡세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즉결 재판에서 바로 5백환만 물고 나가면 되니까 그 다음 계속 해나가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내 변두리 대폿집 주인들의 공통된 말이다.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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