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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華川)의 산과 물, 그 사이로 흐르는 전쟁의 상흔들
화천(華川)의 산과 물, 그 사이로 흐르는 전쟁의 상흔들
  • 교수신문
  • 승인 2019.01.0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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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강화까지, 경계에 핀 꽃: DMZ 접경지역을 만나다_ 18-② 643고지 전투전적비 - 대성산지구 전투전적비 - 금성지구 전투전적비

화천댐과 수력발전소라는 전략적 요충지, ‘643고지 전투전적비’

화천읍에서 동북방으로 약 7㎞가량 떨어진 대이리(大利里)에는 또 다른 전적비가 자리하고 있다. ‘643고지 전투전적비’라 불리는 이 전적비는 화천 비목공원으로 가는 유일한 길인 460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진입하면 얼마 가지 않아 볼 수 있다. ‘643고지’는 전쟁 당시 ‘수리봉’으로 불렸다. 이 수리봉은 화천읍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 당시에도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던 화천댐과 화천수력발전소 앞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 중요성은 매우 컸다. 1951년 4월 중국군은 화천댐과 수력발전소를 차지하기 위한 대규모 공세를 벌였고, 이에 맞서 국군 제6사단은 미군과 함께 이 지역을 방어하고 같은 해 6월 6일 끝내 고지를 탈환했다고 한다. ‘643고지 전투전적비’는 바로 이러한 전투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 643고지 전투전적비 안내문. 사진제공 = 국가보훈처.
▲ 643고지 전투전적비 안내문. 사진제공 = 국가보훈처.

일제가 건설한 화천댐과 수력발전소는 전쟁 당시 전력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수리봉(643고지)은 바로 그 중심에 있었다. 1957년에 건립한 전적비는 그 이후 몇 번의 보수를 거쳐서인지 상당히 깨끗했다. 전적비 주위를 둘러보려는데 안내판에 적힌 글이 발걸음을 잠시 붙잡는다. “21,550명 적 사살”. “무훈사에 빛나는 대전과(大戰果”라는 글귀를 지나서도 한국 측의 희생자가 얼마였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그에 비례한,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아군 측의 희생자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 전투의 의미는 결국 몇 명의 ‘사살’로 귀착된다. 전쟁에 대한 기록은 원래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고 애써 위안을 삼기엔, 67년 전 이 고지에서 사라진 고귀한 뭇 생명에 대한 슬픔이 너무 크게만 느껴진다.   

▲ 643고지 전투전적비.
▲ 643고지 전투전적비.

철원과 화천의 경계에서, ‘대성산지구 전적비’

화천의 서쪽에서 남북으로 놓인 56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대성산의 수피령 고개를 만날 수 있다. 이 수피령 고개(780m)의 정상부에는 ‘대성산지구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대성산지구 전투는 6·25전쟁 중 화천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전투 중 사창리지구 전투와 643고지 전투 그다음에 위치한다. 인민군사령부 막사에서 느꼈던 전쟁에 대한 잠깐의 느낌은 이제 더 큰 실감으로 다가온다.

6.25전쟁 당시 중부전선의 최대 격전지는 철원ㆍ평강ㆍ김화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 그리고 화천 지역이었다. 대성산지구 전투는 이 둘 모두와 연결되는 중요한 전투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성산은 중부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화천군에서도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와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의 경계에 자리 잡아 철원 지역의 교통요지뿐만 아니라 북쪽 경계의 여러 고지들을 살펴볼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 금성지구 전투전적비. 사진제공 = 국가보훈처.
▲ 금성지구 전투전적비. 사진제공 = 국가보훈처.

1951년 4월부터 시작된 중국군이 춘계공세는 6·25전쟁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개전 이후 최대 규모의 충돌이었다. 옛날에는 산의 남쪽에 이름난 절이 있어 이곳을 ‘절골’이라 불렸던 대성산은 그러한 춘계공세가 벌어진 격전의 한 복판에 있었던 산이었다. 이와 같은 대성산지구 전투는 1951년 6월 5일 국군 제2사단이 ‘캔사스선’(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설정한 주 저항선)으로부터 ‘와이오밍선’(현재의 휴전선과 비슷한 선)으로 진출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성산지구 전적비에서는 이곳 대성산에서 벌어진 전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성산 지구 전투는 1951년 6월 9일 국군 제2사단 17연대가 대성산 1042고지에서 활동 중인 중공군 제58사단 177연대 병력을 섬멸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 1042고지와 신월동 및 865고지를 탈환 한 후 연이어 6월 14일까지 승양고개, 삼천봉, 바조봉 일대까지 적의 공격 기세를 분쇄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적 사살 453명, 생포 19명, 55점의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아군 피해로는 전사 38명, 전상 123명으로 불후의 전공을 세웠다.”

하지만 화천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조용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전적비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적군 사살 몇 명, 아군 전사 몇 명과 같은 단순한 수치 비교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불후의 전공’을 논하기 이전에 무수한 생명의 사라짐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생명이라는 절대기준 앞에서 피아의 구분은 결코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곳 대성산지구 전적비에서뿐만 아니라 6·25전쟁 관련 무수한 전적비에서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는 표현인 “조국 수호를 위해 불굴의 신념으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넋을 추모하며 그 위훈을 자손만대에 길이 전하고자”라는 구절은 그래서 억압적으로만 느껴진다.

지루한 소모전의 마지막을 기리다, ‘금성지구 전투전적비’

화천과 김화를 잇는 5번 국도를 따라 화천 상서면 마현리 말고개 부근에는 참혹했던 6·25전쟁의 끝자락에 벌어진 비극적인 전투를 기념하는 장소가 있다. 1953년 7월은 지루했던 휴전협정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던 시점이었다. 당시 중국은 휴전 직전의 마지막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는 한편, 철원 서쪽부터 양구군 해안면 북쪽 고지대까지 이어지는 일직선의 전선에서 유일하게 북쪽으로 돌출된 지역인 ‘금성’을 차지하여 휴전협정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고자 했다. 그리하여 1953년 7월 13일부터 19일까지 중국군이 춘계공세 이후 최대 규모의 인원을 집중시킨 ‘금성지구 전투’가 벌어졌다.

▲ 대성산지구 전적비 안내문. 사진제공 = 화천군청.
▲ 대성산지구 전적비 안내문. 사진제공 = 화천군청.

6·25전쟁의 끝자락에 펼쳐진 이 전투는 ‘어쩌면 없었을 수도 있었던’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피아(彼我)를 합쳐 약 4만여 명이 넘는 인원들이 금성지구 전투에서 고귀한 생명을 마감했다. 그런데 6·25전쟁이 3년 1개월의 기간 동안 약 70%를 현재 군사분계선 일대의 소모적인 전투로 치러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이 전쟁의 막대한 사상자가 실상 전쟁 초기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51년 7월의 휴전교섭 이래 진행되었던 치열한 고지전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 역시 많지 않다.

▲ 대성산지구 전적비.
▲ 대성산지구 전적비.

6·25전쟁과 관련된 전국 1100여개의 전적비들에는 각기 다른 역사가 기록되고 있지만, 이 ‘금성지구 전투전적비’는 그러한 6·25전쟁의 마지막을 무심하게 기록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의 휴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고지 하나를 놓고 서로 빼앗았다 빼앗겼다 하는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던 가운데, 금성지구 전투는 그 잔혹한 고지전의 마지막 장면이다. 1957년에 건립하여 비바람에 낡아져버린 비석과 대비되게, 그 아래 대리석으로 깔끔하게 보수된 기단은 깨끗하기만 하다. 금성지구 전투전적비가 보여주는 낡은 비석과 깨끗한 기단의 대비가 전쟁과 휴전의 구분처럼 느껴진다. 전쟁과 휴전, 냉전과 종전 사이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쯤 놓여 있을까.

가곡 <비목>의 작사가 한명희는 이렇게 회고했다. ‘60년대 민통선 지역의 군 생활 중에서 나를 불안하고 슬프게 하는 것은 적에 대한 공포보다는 산속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가묘라고 할 돌무더기와 막대기로 꽂아 둔 비목들이었다.’ 오늘날 그를 불안하고 슬프게 했던 비목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를 여전히 불안하고 슬프게 하는 전적비는 우리 곳곳에 남겨져 있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스러져간 당시 모든 생명의 소멸에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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