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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독주머니를 품은 단단한 고둥
하얀 독주머니를 품은 단단한 고둥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8.12.24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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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13. 털골뱅이

종일토록 달팽이채집을 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늘 그랬듯이 잠잘 여관이나 여인숙을 잡아 놓고는 동해안 바닷가를 어슬렁거린다. 출출한 시간이라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들은 오늘도 연탄불에 털골뱅이(Fusitriton oregonensis)를 잔뜩 펼쳐 놨다. 얼금얼금한 석쇠 위의 놈들은 입 가장자리에서 거품을 부글부글 쏟아내며 맛있게 익고 있다. 그리고 인심 좋은 인부(일꾼)들은 날더러 오라고 반갑게 손짓한다. 고소원불감청(固所願不敢請)이라, 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원래부터 몹시 바라던 바가 아닌가. 아! 구수한 냄새에 입안에 군침이 확 돈다.

  이 고둥은 굽거나 삶아서 무쳐먹고, 데치거나 찌개를 끓이기도 한다. 그런데 누구나 처음 당하는 일엔 서툴다. 모르면 설치지 말고 눈치껏 앞사람이 하는 것을 뒤따라야 할 터. 뾰족하고 갸름한 꼬챙이를 골뱅이 입에다 푹 찔러서 껍데기를 뱅그르르 돌려서 살점을 뽑는다. 그러고는 뭔가를 조심스레 뒤져 떼 낸다. 

  사실 털골뱅이를 먹고 혼쭐 난 경험이 있는 나다. 살이 저리고, 저 건너편 불빛이 귀신 빛이 되어 꺼졌다 켜졌다,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것이 골뱅이의 독성 때문인 것을 마냥 모르고 지나쳤다. 그러나 그것이 이놈들의 침독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기에 털골뱅이만 보면 신경이 바싹 곤두선다. 바닷가사람들에게는 상식인 그 일을 명색이 패류를 전공한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선 난리를 쳤었다.

  한 마디로 털골뱅이를 먹을 적엔 침샘을 들어내고 먹을 것! 털골뱅이의 침샘에는 물고기 등을 마취시켜 잡아먹는 테트라민(tetramine)이라는 마비성독이 있어 사람에게도 무척 해롭다. 다시 말하지만 털골뱅이를 먹을 때는 반드시 하얀색 침샘을 떼버리고 먹어야 한다. 바닷가 사람들은 골뱅이 침샘을‘귀청(귀지)’이라 부른다.

  그런데 만일 침샘(唾線)을 떼 내지 않고 그냥 먹으면 중독증상을 일으킨다. 어질어질하면서 땀이 나고, 두통과 현기증, 멀미증상을 동반하며, 오심과 구토가 일고, 휘청거림과 눈을 깜박거리는 불안증을 보인다. 이러한 증상은 보통 2~3시간 후면 정상으로 회복되지만 말이다. 
 

털골뱅이=무안황토갯벌랜드
털골뱅이. 사진출처=무안황토갯벌랜드

  털골뱅이(0regon triton shell)는 복족류, 수염고둥과에 들고, 북미 원산으로 북태평양(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과 일본, 우리나라 동해안에 나며, 조간대 하부에서부터 수심 300m 남짓의 모래펄에 서식한다. 껍데기 길이가 15cm 내외인 육식패류로 멍게(우렁쉥이)나 군부(chiton)를 먹고, 구슬우렁이들처럼 다른 조개나 고둥에 구멍을 뚫어 잡아먹기도 한다. 털골뱅이의 천적은‘바다의 청소부’라 불리는 불가사리이다.

  털골뱅이는 방추형으로 껍데기(殼皮)는 얇고, 총 8층으로 꼬여 있으며, 굵은 주름들이 졌다. 그리고 껍데기(貝殼)는 백색이나 외부에 누르스름한 볏짚 색깔의 센털(剛毛)이 부숭부숭, 비죽비죽 난 두꺼운 각피로 덮여 있다. 입(殼口)에 뚜껑(口蓋)이 있고, 그 안쪽 껍질은 백색이며, 입구는 타원형이고, 바깥 입술은 둥글다.

  아무튼 복족류인 털골뱅이를 먹을 적엔 살점(침샘) 하나를 떼 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아마도 털골뱅이의 맛을 능가하는 고둥이 없을 듯한데, 그런 독이 있어 그런 것일까. 암튼 육식하는 고둥 무리는 양이 많고 적고, 또 독성이 강하냐 약하냐가 다를 뿐 죄다 독뱀처럼 침샘에 독성분을 지니고 있다. 

  복어(puffer) 이야기를 좀 보탠다. 공격용이라기보다는 방어용으로, 특히 생식소에 테트라민과 유사한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란 독성물질이 짙게 들었다. 하긴 어느 생물 치고 독이 없는 것이 없고, 특히 생식 시기에는 더 강한 독을 몸에 쌓는다. 아무튼 테트로도톡신은 신경이나 심장에 영향을 끼치는데, 신경에 이 독이 미치면 근육이 뒤틀리고 전신 마비가 온다. 또 의식은 멀쩡하면서도 말이 어눌해지고, 숨이 가빠지는 등의 뒤탈이 생기며, 致死量(lethal dose) 이상의 양을 먹으면 생명을 잃는다.

  그런데 재미나는 이야기가 있으니, 숙달된 달인 복어요리사일수록 요리에다, 입안이 약간 얼얼할 정도의 독을, 넘치지 않게 좀 남겨둔다고 한다. 또 테트로도톡신은 말초신경을 마비시키는지라 말기 암 환자의 진통 완화제로 쓰이고, 야뇨증 치료, 국소마취제로 대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어쨌거나 털골뱅이나 복어도 다 제 살 궁리를 하고 있더라!

  그건 그렇다 치고, 삼척?강릉?속초와 이북 함경도를 포함하는 동해안 사람들과 경상도 사람들의 말투(語套)와 매우 흡사하다. 나를 불러서 진수성찬을 같이 한 그들도 물론이다! 알고 보면 조선 세종 때 함경도에 사군(四郡), 육진(六鎭)을 설치하고선 경상도 사람들을 올려보낸 것이 어투가 흡사한 이유다. 그리고 동해안 사람들이 배로 쉽게 오간 것도 한 원인이 되었다 한다.

  내 나라 방방곡곡을 안 다닌 데가 없이, 오래오래 채집하느라 돌아다닌지라 어디든 그곳에 갈라치면 그곳 말 흉내를 제법 낼뿐더러, 하는 이야기만 듣고도 그 사람 고향이 어딘가도 꽤나 알아맞힌다. 좁은 나라에 어쩌면 그렇게 말씨가 다 다를까.

  옛날 사람들은 거의가 태어난 곳에서 멀리 한 번 떠나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으니 무덤가의 소나무 한 그루와 별다를 게 없었다 하겠다. 결국 서로가 멀리멀리, 오래오래 떨어져(隔離, isolation) 살게 된 탓에 마을마다 고을마다 풍습이 다 다르고, 말씨까지 그렇게 달랐던 게지.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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