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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미래와 지식인의 사명 … ‘진리에 대한 용기’로 적극적 개입과 새로운 연대를
민주주의의 미래와 지식인의 사명 … ‘진리에 대한 용기’로 적극적 개입과 새로운 연대를
  • 김건우 해외통신원/빌레펠트대 박사과정·사회학
  • 승인 2018.12.24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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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은 지금_ 디디에 에리봉(Didier Eribon)의 엘리아스 강연

 

디디에 에리봉이 빌레펠트 대학에서 비정기적으로 주관하는 Norbert Elias-Lectures에 초청되어 지난 10월 23일 저녁 공개강연을 했다. 애초에는 올봄에 초청을 받아 같은 강연을 하기로 했다가, 개인 사정으로 유예했었는데 이번 가을에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강의는 “Speaking in the name of the other?: On the problem of political representation of the oppressed”를 주제로 1시간 강연과 45분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되었다. 우리에게는 푸코에 대한 평전 『미셸 푸코, 1926-1984』 그리고 레비-스트로스의 삶과 학문에 관한 깊이 있고 아름다운 대담집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로 잘 알려진 그의 이 강연을 듣기 위해 그야말로 남녀노소 구별 없이 대학의 신관에서 가장 큰 대형 강의실이 미어져 나갈 듯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푸코가 왔다면, 학교 전체가 들썩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디디에 에리봉(1953~)

디디에 에리봉의 작업

우리에게 디디에 에리봉은 인터뷰 대상으로부터 깊이 있고 풍성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충실한 인터뷰어와 전기작가로만 알려진 측면이 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와 죠르주 뒤메질과의 대담(1987)뿐 아니라, 『서양미술사』의 에른스트 곰브리치와의 대담에서 보듯이 그의 인터뷰어로서의 재능은 전방위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2009년 『Retour a Reims』가 출간된 이래, 그의 사유의 지평과 오늘의 현실에 대해서 취하는 관점의 척도가 이 책에 있다는 점을 이번 공개강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에리봉은 단지 전기작가이자 인터뷰어에 국한될 수 없는 학자라는 당연한 사실 역시 이번에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강연에서처럼 정치적인 현상, 특히 오늘날 보는 포퓰리즘의 등장과 좌파의 몰락,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집단들 - 그는 특히 이번 강연에서 난민집단에 주목했다 - 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그들을 대변하는 문제 그리고 그에 따른 우파 포퓰리즘의 출현 등과 같은 현재적인 쟁점에 있어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선명하게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 사회학자였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고향인 Reim으로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저 책에서 자기가 교수로 취직하게 되었다고 어머니께 말씀을 드리자 어머니의 “그럼 철학을 하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사회학을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평생을 가난한 공장노동자로 살아왔고 작년에 87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어머니는 그럼 “사회로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이겠구나”라고 답을 하셨다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처럼 단지 철학적인 거장을 인터뷰하고 논평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오늘날 사회가 그리고 특히 유럽이 직면한 정치적인 현실에 주목하고, 그 현실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개입하려는 ‘책무’를 느끼는 프랑스의 사회학자다. 

그는 2007년에 『보수주의 혁명: 그리고 프랑스 좌파에 미치는 효과』(D’une revolution conservatrice: Et de ses effets sur la gauche francaise)를 출간했다. 이후, 2009년 출간된 『Reim으로의 귀환』은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으로 2016년 번역되었는데, 2년도 채 안 되어 17쇄를 찍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개인적인 삶, 특히 가족의 삶의 양식에 대한 회고를 통해서 20세기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인 성격을 사회학적으로 그리고 지성사적으로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는 같은 성격의 책 『La societe comme verdict』이 2014년 출간되었다. 독일에서는 같은 출판사에서 『판단으로서 사회: 계급, 정체성, 길』이라는 제목으로 2017년 출간된 바 있다. 2016년에 출판된 에세이 모음집 『비판적 사고의 원리들』 (Principes d’une pensee critique) 역시 2017년 같은 제목으로 독역되었다. 넓게 보면 2007년부터, 좁게 보면 『Reim으로의 귀환』이 출간된 2009년부터 지난 10여 년간 에리봉은 일관된 문제의식에 천착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계급과 이를 재생산하는 학교의 문제 그리고 그에 따라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는 여러 폭력과 억압들, 주체의 형성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이 시대의 정치적 운동과 비판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그것이다. 두 권의 책, 『Reim으로의 귀환』과 『판단으로서 사회』는 이러한 시대적인 문제가 어떻게 ‘자기분석’과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고, 이를 『비판적 사고의 원리들』에서 이론적이고 보다 정치적인 수준에서 정리하고자 했다. 이 시대에는 무능력해진 과거의 좌파 논리 - 이 날 강연에서 그는 특히 노동계급 중심적인 사고와 그에 기반을 둔 정통적인 서유럽의 좌파정당을 말했다 - 를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지배와 저항의 지형도를 그리는 것, 개인적이면서도 집합적인 주체성에 관한 역사적이고 사회학적인 이론을 모색해보는 것이 문제가 된다. 
 

디디에 에리봉의 빌레펠트대학 강연

디디에 에리봉의 강연 풍경

저녁 6시에 시작하기로 한 강연은 강연 15분 전부터 강의실 앞에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곧바로 시작할 수 없었다. 에리봉은 매우 수수하고 격의 없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뒤메질, 푸코, 부르디외, 레비-스트로스 등과 같은 20세기 최고의 지성들과 무수한 대화를 나누었던 당사자가 크로스백을 멘 채, 한 손에 빵과 음료를 들고 강연장에 등장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를 초청한 대학관계자인 교수가 소개하는 도중에 그는 강단에 서서 두 팔을 교차하는 자세로 스웨터를 벗어 던졌다. 호기심에 모두 침묵하던 그때, 강연장은 폭소로 넘쳤다. 강연은 열정적이었고, 질의응답 도중에는 물을 마시다가 앞으로 뿜는 일도 있었다. 그의 행동과 생각들과 열정은 그 많은 청중을 단번에 매료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런 돌출된 행동은 우스꽝스럽기보다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될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밀폐된 공간에 2시간 넘게 있었지만, 모두 그 순간만큼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강연자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다. 뒤메질, 레비-스트로스, 곰브리치 그리고 푸코에 대한 탁월한 대담집과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그 바탕은 그가 대담에서 던진 질문들의 성실함과 치밀함에서 볼 수 있는 지성뿐 아니라 열정, 겸손함, 격을 따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태도,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인격적이고 지적인 정직성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최고의 지성들은 에리봉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가 감싸고 있는 그 상황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미래와 지식인의 사명

에리봉은 오늘날, 특히 포퓰리즘이 심지어 서유럽의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일반문법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어떻게 많은 사람이 정치적인 일상에서 배제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그에게 대의제의 한계에 대해, 그리고 고전적인 좌/우파의 구별에 대해 회의하게 하는 구체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삶의 양식이나 노동자로서의 인생을 통해 볼 때, 또 한때 프랑스 공산당을 지지했던 자신의 어머니가 최근에는 기꺼이 우파 포퓰리스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통해서, 그는 어머니의 그런 ‘전향’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거나 도덕적으로 한탄하지 않는다. 대의제를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그가 강연 내내 선명하게 주장한 진보적인 정치에 대한 지향을 거두지도 않는다. 이곳에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시대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60~70년대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노동자계급에 속한 고유한 이해가 있었고, 좌파는 그것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때 좌파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고, 무엇을 수호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분쇄해야 하는지 명백했다. 반면, 오늘은 지금까지 사회적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범주들이 교란되고, ‘세계의 비참’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고 에리봉은 강조했다. 이전처럼 노동자계급에 고유한 이해관계를 확정하고, 그것을 수호하는 것이 곧 노동자계급 자신과 좌파정치의 역사적 사명이었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고정적인 계급은 이제 사라졌지만, 계급이 사라졌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렇게 호명하는 개인들이 곧 계급이 된다고, 그리고 그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주체성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정치적인 전망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대표할 것인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로했다. 오늘 우리 눈앞에 가장 선명하지만, 유령처럼 있는 ‘난민’이야 말로 새로운 정치,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대한 척도라고 확신했다. 여기가 좌파가 연대해야 할 전선이라는 것이다. 

그가 즐겨 인용한 후기 푸코의 ‘parrhesia’, 즉 ‘진리에 대한 용기’를 가진 지식인이 에리봉에게 이처럼 ‘적극적인 개입의 용기’라고도 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연대의 전선을 확장하는 것이 우파 포퓰리즘이 빈곤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정치적 주체들을 배제하는 것을 억제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인민과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의 문제에서 우파 포퓰리스트들에게 정치적인 권력뿐 아니라, 정치에 대한 전망 자체를 빼앗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에리봉이 인용하는 고프만의 『스티그마』의 부제 ‘상처받은 정체성’처럼 정체성의 상실과 배제 그리고 거부가 일상적인 문제로 제기되는 오늘은 더욱 더 그렇다. 지식인이 ‘진리에 대한 용기’를 갖고 새로운 전선을 규정하고, ‘적극적인 개입의 용기’를 갖고 새로운 연대를 통해 전선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지식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좌, 우를 막론하고 엘리트 위주의 정치의 시대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양한 정치적 주체들을 발전시키고, 이를 표현하고 또 대표될 수 있도록 계속 밀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새로운 연대에의 호소

포퓰리즘의 시대에 대한 대응이 포퓰리즘일 수는 없다. 이 시대는 지배메커니즘에 대해서 새롭게 갱신된 이론적인 분석이 더 큰 사회적 정의를 관철하고 그렇게 세계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와 결합할 것을 요구한다고 에리봉은 말한다. 억압과 지배의 형태가 이전보다 더 다양해지고, 그 구별선이 교차하고 복잡해질수록 더 다양한 저항들이 필요하다. 저항이 반드시 필요하고, 연대해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날의 강연은 그가 『판단으로서 사회』에서 한 말, “‘민주주의적’이라는 술어에 실제로 부합하는 정치를 우리가 창출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호소하는 열정적인 강연이었다. 친근하면서도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기꺼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그 당당함과 지성으로 에리봉은 독일의 지식인, 학생 그리고 일반 시민에게 그 길을 연대의 이름으로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김건우 해외통신원/빌레펠트대 박사과정·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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