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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무덤기행] 소록도, 진정한 신뢰와 사랑 없는 ‘당신들=그대들’만의 천국
[최재목의 무덤기행] 소록도, 진정한 신뢰와 사랑 없는 ‘당신들=그대들’만의 천국
  • 최재목 영남대·철학과/시인
  • 승인 2018.12.24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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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무덤기행_ “무덤에서 삶을 생각하다” 2-⑤ 소록도 만령당(萬靈堂)을 찾다

교회, 질병, 구원 

주변에 있는 폐쇄된 집단주거 시설을 둘러보고, 남성교회(1963년 건축) 앞쪽의 조용한 길을 따라 해변으로 간다. 지나오는 곳, 이곳저곳에 세워진 교회에서 나는 직감한다. 구약에 이어 신약성경에서 예수가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듯, 한센인에 대한 예수 모델이 이곳에서 시험 되고 있었음을. 긍휼과 사랑을 전달하는 저 기독교의 정체성 실현은 바로 이곳 소록도가 교본적이고 상징적인 최적의 터였다는 것을. 사회적 격리와 차별, 분리와 기피의 대상을 인류애(박애)로 극복, 전환해가는 ‘희망의 빛’이 바로 저 교회임을 시의적절하게 인식시키고 있었던 것이다(김재현 2016, 26-27). 서구의 기독교가 근대기 아시아 선교를 기획할 때,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는 당연히 기독교의 긍휼과 사랑이라는 중심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핵심 미디어이자 매개체로 스포트라이트 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그늘지고, 어둡고, 상처 입고, 피고름 흐르는 땅에 교회는 일단 ‘자혜’를 명분으로 발붙일 곳, 설 자리를 제대로 찾았던 셈이다. 

그런 간절한 곳에, 아니 그런 ‘최악의 고질병’으로서만 하느님께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갖게 되니, 질병은 곧 ‘감사’의 의미로 바뀌게 된다. 『성서조선』 제106호에 실린 한 환자의 글에서 당시 환자들의 심경을 읽어낼 수 있다: “소록도는 지금 육(肉)으로 영(靈)으로 참 다사한 때입니다. 기왕 우리에게 병고를 주실 바에는 최악의 고질을 주신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인생은 자기의 몸이 편하고 좀 행복을 느낄 때에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맘이 없어지는 까닭입니다. 새로운 형제들도 이러한 의미로 보아 소록도로 온다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온다는 것을 믿습니다”(정근식 2017a, 138 재인용). 죄가 곧 구원의 근거이다. 죄가 없으면 구원도 없으니, 질병은 원죄로 대체돼, 애타게 구료(救療)를 원했다.  

이곳에서는 불교의 영향력은 미미했고, 신사 참배는 강제적으로 이뤄졌다. 즉 스오 원장은, 일본 정토진종(1877년 한국에 침투)의 본산 혼간지(本願寺) 포교사를 직원으로 초빙하여 불교를 통한 정신적 교화와 위안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그 영향은 크지 않았다. 소록도 자혜의원 설립 초기부터 일제는 나구료(癩救療) 사업에 천황의 은혜를 덧입혀 나환자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끌어모은 후, 동정을 받고, 환자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제하여 왔다(정근식 2017a, 139). 아마도 군대조직처럼 환자들을 획일적으로 동원, 통제하는 데에는, 아미타여래가 중생을 구하려고 세운 발원(發願)에 절대 의지하여 성불을 구하는, 저 타력본원(他力本願)의 정토진종(淨土眞宗)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 그분에게만 의지하는 ‘절대 타력’이라는 신앙의 방법으로, 이미 기독교는 ‘자혜’를 간판으로 하여 선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천황의 은혜(=皇恩) 개념을 기독교의 ‘자혜’에 덧씌우는 편이 훨씬 수월했으리라 생각은 되나, 사실 그보다는 신사참배를 엄격하게 강제하여 한센병자들을 일본에 예속시키는 편이 실제적, 현실적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남성교회 앞 해안가의 정자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남성교회 앞 해안가의 정자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고요한, 불안한 해변을 읽는다 

해변으로 가는 길, 왼쪽으로 콘크리트 기둥으로 된 낡은 사각형 정자가 있고, 그 너머로 너른 바다가 펼쳐진다. 너무 조용하다. 폐허가 된 마을처럼, 텅 빈, 묘지처럼. 아무도 없다. 정자에 누구라도 있어야 할 법한데, 적막과 소멸의 시간뿐. 그래서 나는 이곳이 두렵다. 차라리 바람이라도 좀 심하게 불어댔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에서, “바람이 분다! . . . 살아야겠다./세찬 바람은 내 책을 여닫고/파도는 분말로 바위에서 마구 솟구치나니!”라는 구절이 새롭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아도, 고요해도, 이곳에서는 또 누군가가 살아야 하리라.
신발을 벗어들고 나는 이리저리 모래와 자갈 위를 걷는다. 지평선 끝자락의 구름에 아슬아슬 숨은 자그마한 섬들, 산들. 이곳에 갇혀있던 환자들에겐 저 산 너머에서 기다리는 가족들 생각으로 가득하였으리라. 1946년 9월에 설립되어 1987년 2월 폐교된 녹산중학교 교지 『불사조』 제4권 3호(1958.9.17.)에 실린, 녹산중학교 1학년 이남식이 쓴 시의 그리움에서, 이 섬에 살던 환자 모두의 그리움을 읽어낼 수 있다. 

저산 넘고 또 산넘어 먼고향
하늘엔
그리운 어머님 살고 계시련만
외로운 타향에 세월 보내며
어머님 생각에 눈물 지어요

이 해는 새약먹고 새 정신 가져
보고픈 어머니 계신 곳 찾아가려고
고히 고히 마음 가져
손꼽아 기두려요. (「그리운 어머님생각」 일부)(정근식 2017b, 65 재인용)

그리움은, 한센병 치료 ‘약’에 기대어, 부풀고 있었다. ‘새약먹고 새 정신 가져/보고픈 어머니 계신 곳 찾아가려고/…/손꼽아 기두려요’라는 말에서, 그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린 환자들이 ‘천형(天刑)’을 겪으며 바라보던 바다, 그 너머 육지는 모두 어머니 얼굴이었으리라.  

한하운의 시에서처럼, 모두 파랑새가 되어 언젠가 저 육지 고향 쪽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 되어//푸른 하늘/푸른 들/날아다니며//(…)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되리.”(「파랑새」일부)(한하운 2010, 33)

해변의 모습

낯선 「하나이 원장 창덕비」 

다시 발길을 소록도 자혜의원 시기 제2대 원장 하나이 젠키치(花井善吉)(재임 기간: 1921-1929)를 기린 창덕비(= 「하나이 원장 창덕비」)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현재 폐쇄된 「자혜의원(慈惠醫院)」 바로 앞에 서 있다. ‘자혜’라는 말이 눈길이 닿는다. 이제 이 말도, 여기서는 지금, 폐기됐다. 

하나이는 만 8년의 재임 동안 환자들의 처우를 개선했는데 그가 갑자기 죽자, 1930년 9월 3대 원장 야자와 슌이치로(矢澤俊一郞) 때 환자들의 모금으로 건립하였다 한다. 초대원장이었던 아리카와 토오루(蟻川享)(재임기간: 1916~1921)가 운영방식에서 매우 강압적이었다. 심전황의 『소록도 반세기』(전남일보 출판국, 1979)와 『아으 70년, 찬란한 슬픔의 소록도』(동방, 1993)에 자세히 기술된 대로, 아리카와는 당시 무단 통치에 발맞추어 환자들에게 의식주를 완전히 일본식으로 강요하고, 까다로운 규칙 사항인 「심득서(心得書)」를 낭독시키는 등 많은 불편과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비해 하나이는 대조적으로 온건했다. 환자들이 자비로 창덕비를 세워 줄 만큼 환자들의 의료와 생활여건 개선에 그가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섯 명의 일본 원장 가운데 가장 존경받고 추앙받는 존재가 되었다 한다. 그런데, 그런 존경과 추앙이란 말이 왠지 나에겐 낯설고, 생뚱맞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인의 온정주의란 게 무슨 의미일까.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악어의 눈물은 아니었을까. 

아무리 ‘낙원’을 만들어주겠다고 외칠지언정 상호 간의 신뢰와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리라.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1976) 말미에서 이루어지는, 서미연과 윤해원의 결혼처럼 말이다. 신부 서미연은 한센병자 아이들을 가르치던 건강한 여교사이고, 신랑 윤해원은 환자촌 출신 음성병력자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병자와 건강인, 온건과 불온 사이에 놓여 있는 경계의 철조망을 허물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법이다. 진정한 신뢰와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만 저곳 ‘당신들의 천국’이 이곳 ‘우리들의 천국’으로 바뀌는 것이다. 비록 소록도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아니 역사 속에는, 얼마든지 ‘당신들=그대들’만의 천국 건설에 몰두하며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허황된 고통스러운 천국, 그 날조된 복음의 큰 목소리로.
 

하나이원장 창덕비


<참고문헌>
* 김재현 엮음, 『소록도 100년의 이야기 1916-2016』 (KIATS, 2016)
* 정근식 책임편집, 『소록도 100년: 한센병 그리고 사람, 백년의 성찰(역사편)』 (고흥: 국립소록도병원, 2017a)
* 정근식 책임편집, 『한센병 그리고 사람, 백년의 성찰: 1916-2016(사진으로 보는 소록도 100년)』 (고흥: 국립소록도병원, 2017b)
* 한하운, 『한하운 전집』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0)
 

 

최재목 영남대·철학과/시인
영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에서 문학 석·박사를 했다. 양명학·동아시아철학사상 전공으로 한국양명학회, 한국일본사상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 『동양철학자 유럽을 거닐다』 등이, 시집으로 『해피 만다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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