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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렌즈 너머의 진정한 종교
젠더 렌즈 너머의 진정한 종교
  •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 교수·브라이트 신학대학원
  • 승인 2018.12.24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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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 『젠더와 종교: 페미니즘을 통한 종교의 재구성』 (강남순 지음, 동녘, 2018.11)

 

책을 쓰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지닌 형태로 그 책을 구성하는 방식이 있다. 다른 방식은 각기 다른 특정한 정황과 연계된 글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 양태의 책은 각기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젠더와 종교>는 후자의 책이다. 후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책의 각 장은 각기 다른 정황에 개입하면서도 다른 장들과 나선형처럼 겹치는 공간을 공유한다. 독자는 자유롭게 자신의 지적 필요와 흥미에 따라서 특정한 주제를 탐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각장을 연결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젠더’와 ‘종교’이다.

‘젠더’라는 개념의 대중적 등장은 오래지 않다.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문화적 구성으로서의 성인 ‘젠더(gender)’라는 구분은 1955년 존 머니(John Money)에 의해 소개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젠더’를 대중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페미니스트 이론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생물학적 성은 개별인의 선택이 아닌 태어나면서 부여된다. 그러나 여성적인 사람 또는 남성적인 사람 등의 구분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로 ‘젠더’가 등장한다. 드 보브아르의 『제2의 성』에 나온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구절은 젠더 개념을 간결하게 담고 있다. 이러한 젠더 개념의 등장은 세계를 뒤집는 ‘혁명적’ 의미를 지닌다. 젠더 개념의 등장은 이제까지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됐던 모든 이해에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하면서 자연적인 것의 ‘탈자연화’와 ‘탈절대화’를 야기하기에 혁명적이다.

‘젠더’라는 도구로 이 세계의 종교들을 조명해 볼 때, 전통적인 종교이해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당연하고 ‘자연적인 것’이라고 간주하던 많은 일들이 한 인간으로서 여성의 모습과 역할을 지극히 제한하고, 왜곡하고, 억압해 왔음을 보게 된다. 종교와 젠더의 만남은 어떤 이들에게는 여성의 부차적 위치에 저항하고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의 온전성을 주장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행복한 만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질서와 종교 이해, 실천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종교와 젠더의 만남은 근원적인 불편함과 특권의 포기를 의미하므로 ‘불행한 만남’일 수밖에 없다. ‘젠더’의 등장은 소위 신적인 창조 질서에 대한 ‘저항’, 종교 공동체와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이나, 더 나아가서 트랜스 젠더, 동성애 문제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까지 연결된다. 가톨릭교회나 보수적 종교인들이 ‘젠더’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이다. ‘젠더’라는 렌즈로 종교를 조명할 때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게 된다.

첫째, 신 또는 신적인 존재의 젠더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신의 젠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문제시 하지 않던 주제였다. 예를 들어서 기독교에서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영어 대명사에서 남성을 지칭하는 ‘그(He)’나 ‘그의(His)’라는 표현을 해도 ‘신은 성(sex)을 초월한다’며 당연시하던 문제였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젠더 렌즈’를 가지고 종교를 조명하면서 우선으로 문제 제기한 것은 신, 신성, 또는 신적인 것의 젠더가 그 종교의 구성원이나 그 종교가 위치한 사회에서 어떠한 가치를 주입시키고, 내면화하고, 확산하는가이다. 신 또는 신적인 존재가 ‘남성’인 종교가 주도적인 사회에서는 가부장제가 ‘자연스러운’ 사회적 규범이 된다. 둘째, 젠더 렌즈로 종교를 들여다 볼 때 각 종교가 지닌 창조 신화와 그 창조신화의 적용방식에 대란 문제를 보게 된다. 셋째, 젠더 렌즈는 종교 안에서 어떻게 지도력이 형성되고 누가 권력을 지니고 있는지 보게 한다. 남성을 돕는 보조자로서 규정된 여성은 종교의 ‘구성원’으로서 다수를 이루지만, 그 다수 여성들은 지도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 넷째, 젠더 렌즈로 종교를 들여다보면, 어떻게 그 종교가 결혼의 의미와 가정에서의 여남의 역할을 생산하고 재생산 하는지 보게 된다.

역사에서 종교는 두 가지 상충적 역할을 해왔다. 억압자 그리고 해방자의 역할이다. 한편으로 제도화된 종교들은 다층적 차별, 폭력, 배제를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면서 억압자의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의지를 촉발시켰다. 노예로, 천민으로, 경제적 하층민으로, 또는 여성으로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던 이들은 종교를 통해서 위로를 받고 존엄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젠더 개념이 종교에 개입될 때, 종교는 그 담론과 실천에 있어서 근원적인 도전을 받게 된다. 전통적으로 절대화되던 교리, 경전 해석, 그리고 가정, 교회, 사회에서의 젠더 역할 등이 탈절대화·탈자연화 되므로 종교 전반에 관한 근원적인 재구성이 요청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21세기 현대 세계에서 이제 ‘젠더’를 생각하지 않고 종교를 논하기란 불가능하다. 종교 안의 젠더 평등과 젠더 정의의 문제, 더 나아가서 인공유산이나 성적 지향에 대한 종교적 이해에 근원적인 변화가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서 종교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종교가 자체의 존재와 유지만 위한다면 제도화된 종교는 하나의 이기적인 ‘구원 클럽’ 이상이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서 한국의 기독교회는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을 이상화하고 절대화하면서 여성을 성적 도구, 출산 도구, 가사노동 도구로서 남성의 ‘보조자’로만 규정하고 있다. 또한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난민혐오 등 다양한 혐오를 조장하는 경우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종교는 책임성이다.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크 데리다의 말이다. 종교의 존재이유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억압, 차별, 배제의 문제에 개입하면서 환대, 연민, 연대의 원 확장이다. 한 종교의 구성원들의 개인적 부귀영화를 신의 축복으로 가르치는 종교, 다층적 배제와 차별을 신이 내린 질서라고 왜곡하는 종교, 차별과 비인간화의 문제를 외면하는 종교?이러한 종교는 세계에서 억압자의 역할을 한다. 젠더 렌즈로 조명되는 종교는 여성만의 문제로만 재구성되지 않는다. 젠더를 출발점으로 하지만, 도착점은 ‘모든’인간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존엄성을 확장하는 종교로의 재구성이다.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 교수·브라이트 신학대학원
Texas Christian University, Brite Divinity School

현재 미국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미국 드류 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철학박사 (Ph.D)학위를 받았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신학부에서 가르쳤다. 2006년부터 현 대학교에서 자크  데리다 사상, 코즈모폴리터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알리즘, 그리고 페미니즘 과 같은 현대 철학적·신학적 담론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저서로는  <배움에 관하여>, <용서에 대하여>, <정의를 위하여>,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 <안녕, 내 이름은 페미니즘이야>,  그리고 페미니즘과 종교 관련 3부작으로서 <페미니즘과 기독교(개정판)>, <젠더와 종교 (개정판)>, <21세기 페미니스트 신학 (개정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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