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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上의 시간
地上의 시간
  • 류근조 시인
  • 승인 2018.12.24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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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축시]

[송년축시]

地上의 시간

류근조(1941~  )

제 스스로 역겨워 멀리 떠난 님처럼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않는다
그런 걸 새삼 
미련을 갖거나 어이없어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가을걷이 끝난 대지엔
싸락눈이 내리는 적막한 시간
목장의 한켠 외양간 말구유에도
여물 써는 소리에 섞여
긴 밤 먹고 지낼 양식이 담기고,

마∼악 풍요로움 대신 적막이 내려앉아
차가운 이슬은 빈 들판을 적실 때
나 또한 특별히 바깥출입할 일도 없어
방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이윽고 등 아래 곧추앉아
불면의 긴 밤을 새운다

하지만 잠시
꾸벅거리며 졸음에 겨워할 즈음
그 어디선가
나를 품어줄 대지가
크게 양팔을 벌리고
“옳자!옳지!”하며 나를 향해
저벅거리며 다가오고 있기에
나는 언제나 행복한 대지의 나그네여라

해시계 위 길게 모천회귀母川回歸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귀소본능歸巢本能의,
혼자이면서 대지와 탯줄 하나로 연결 
그 모두를 가진 이로서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나는.
                                                   
                      

류근조 시인

1966년 문학춘추 신인상 시부 등단 시집 「나무와 기도」
「날쌘 봄을 목격하다」「입」「고운 눈썹은」 「겨울 대흥사」 근간
「황혼의 민낯」등 다수 현재 중앙대 국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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