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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 ‘임중도원’ 추천한 전호근 교수
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 ‘임중도원’ 추천한 전호근 교수
  •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철학
  • 승인 2018.12.24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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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 내려놓지 말고 끝까지 가라

임중도원(任重道遠)은 “짐은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다.”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짐이 얼마나 무겁기에, 길이 얼마나 멀기에 임중도원이라 했는가. 인(仁, 인간에 대한 사랑)을 짐으로 삼았기에 무겁고, 죽을 때까지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없기에 멀다 한 것이다. 선비가 굳센 뜻을 지녀야 하는 이유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사자성어로 이 말을 꼽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이 성공적으로 완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올해에만 모두 세 차례 성사된 남북 정상의 만남은 남북 이산가족을 비롯한 국민들에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두 지도자는 지금까지 어떤 지도자도 해내지 못했던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겨레는 참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왔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21세기의 이 시대에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는 일이 어찌 가볍고 쉬운 일이라 하겠으며 민족이 분단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7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어찌 먼 길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일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의 두 지도자가 평화를 향한 분명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겨레가 원하는 것 중 평화보다 간절한 것은 없다. 비교가치가 완전히 다른 이 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그가 누구든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고 함께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평화를 반기지 않을 어떤 명분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의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해 보인다. 무엇보다 이 땅을 둘러싼 외세의 힘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숱한 어려움이 버티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과 북이 확고하게 평화를 천명하고 실천하는 한 누구도 이 겨레를 싸우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디 흔들리지 말고 국민의 신뢰와 민족의 여망을 짊어지고 굳센 의지와 불굴의 정신으로 평화를 향한 노정을 끝까지 걸어가기를 바란다.

임중도원을 꼽은 두 번째 이유는 애초 이 정부가 내걸었던 적폐청산과 불평등 없는 세상을 이루고자 한 또 다른 짐을 내려놓지 말라고 당부하는 마음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촛불정부’로 불리는 만큼 역대 어느 정권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의 커다란 기대와 지지를 짊어지고 탄생했다. 그 때문에 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적폐를 청산하고 불평등한 현실을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도 지난해 시정연설에서 성장의 열매가 국민 모두에게 공정하게 나뉘고 있는지 돌아보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이 정부가 과연 그 길을 걸어왔는지 의심스럽다. 적폐청산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부패한 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고, 얼마 전 예산안을 둘러싸고 일어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야합 행태를 보면 정부와 여당이 스스로 적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지경에 이르렀다.

불평등한 경제 현실을 바로 잡고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겠다던 다짐은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자아내고 있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이 엄동설한에 아직도 굴뚝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고 청년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죽어가고 있다. 이 땅의 장애인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으며 여성과 소수자들은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온갖 혐오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 12월 11일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은 슬프다 못해 참혹하다.

최근 3주 사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50명이 넘고 연간 1천여 명이 작업장에서 죽어가고 있다. 끼이고 깔리고 떨어져 목숨을 잃는 이 나라 노동자의 처지를 당신들은 알지 못하는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이 짊어진 짐은 무엇이며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를.

‘임중도원(任重道遠)’ 이 네 글자를 빌어 문재인 정부에 당부드린다. 부디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말고 끝까지 가달라고. 그렇게 해서 다시는 일터에서 노동자가 죽지 않게 해달라고.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모든 국민이 알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당부라 했지만, 이것은 경고다. 우리들은 아직 촛불을 든 채로 광장에 서 있다.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철학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맹 유학과 조선 성리학을 전공했고, 성균관대에서 16세기 조선 성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 철학사: 원효부터 장일순까지 한국 지성사의 거장들을 만나다』 등 다수가 있으며, 동아시아의 고전 해설과 지적 전통의 복원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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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25 21:11:13
그래서 국가의 존재 이유가 뭔가요?
부패한 세력은 누구고, 무엇이 썩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