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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폭력의 추억, 또는 살아남은 자의 우울함
문화비평: 폭력의 추억, 또는 살아남은 자의 우울함
  • 박명진
  • 승인 2003.07.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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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와 박중훈이 주연을 했던 영화 '투캅스'(1993)가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이후 한국 영화에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작품들이 뜸했었다. 1990년대 후반, 특히 IMF 이후 한국 영화계는 순정 멜로물과 블록버스터 액션물이 양대 산맥을 형성해 왔다. 물론 2001년 '와라나고 보기 운동'의 대상 작품인 '와이키키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와 같이 평론계로부터 호평을 받은 개성 있는 영화들도 있었다.

그러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의 박중훈을 시작으로 '이것이 법이다'(2001)의 김민종, '공공의 적'(2002)의 설경구, '살인의 추억'(2003)의 송강호, 와일드카드'(2003)의 양동근 등과 같은 극중 형사들은 가히 '형사 영화' 신드롬이라 부를 만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SBS 드라마 '선녀와 사기꾼'의 주인공 정유석도 터프가이 경찰역을 맡고 있으니 이 시대 영상물에서 '경찰'이 매우 중요하고 매력적인 코드로 자리잡고 있음에 틀림없다. 몇몇 평자들을 20세기말과 21세기 초 한국영화의 주류를 이루었던 '조폭 영화' 모티프가 그 여세를 몰아 경찰서와 범죄현장으로 옮겨졌을 뿐이라는 의구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간 흥행의 보증수표로 작용했던 '조폭영화'가 선정적인 폭력 장면과 완성도 낮은 작품성 때문에 보수적인 사회단체와 평단으로부터 꾸준하게 비판받아 왔던 것에 비해, 형사들을 주인공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작품들은 평론계와 관객들로부터 골고루 호평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여준다. 소위 '조폭영화'가 관객들로 하여금 폭력의 주범들에 동일시되는 것을 유도함으로써 폭력 자체의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흐리게 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관객들은 '조폭영화'의 주인공들, 즉 이 시대의 안티히어로가 일으키는 범죄를 친숙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위험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파렴치한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경찰, 형사의 시선으로 폭력을 바라보게 하는 일련의 '형사 영화'들은 좀더 보수적이고 윤리적인 인식 변화로 간주할 수 있을까. 에르네스트 만델은 '즐거운 살인-범죄소설의 사회사'에서 "자본주의 그 자체가 범죄에 몰두하는 사회다"라는 다분히 도발적인 발언을 시도한다. 그는 더 나아가 감상자 개인 차원에선 "실존의 불확실성과 일상적 삶의 피로를 잊게 해 자본주의의 혼란을 깔끔하게, 그러나 상상적으로만 정리할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있다"고 진단함으로써 경찰, 인과응보, 악의 척결 등과 같은 요소들은 만연하는 범죄, 부패의 위협에 처한 부르주아의 사유재산 보존에 대한 위기감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와일드카드'와 '살인의 추억'은 만델식의 결연한 주장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간다. '와일드카드'에서 두 형사는 범인을 잡기 위해 조폭을 접수하여 이들을 동원시키고, '살인의 추억'에서는 어설픈 수사로 일관하다가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다. 말하자면 이 두 영화는 범죄와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사유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부르조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권선징악의 내러티브로 온전하게 환원되지 않는다. 적어도 이들 영화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셜록 홈즈, 명탐정 코난, '양들의 침묵'의 스털링(조디 포스터)과 같은 근대적 이성주의자가 아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들은 비합리적이고, 어수선하고, 우스꽝스럽고, 가련하기까지 한 캐릭터들이다.

'와일드카드'가 범죄자는 반드시 잡혀야만 되고 잡힐 수밖에 없다고 하는 '당위'의 세계에 머물고 있다면, '살인의 추억'은 범죄를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공포처럼 척결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존재'의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와일드카드'의 형사들이 "꿈★은 이루어진다"를 외치면서 범인을 쫓아다니건 '살인의 추억'의 형사들이 우왕좌왕하면서 씁쓸한 허탈감에 주눅들건 이들은 모두 카프카의 단편에 등장하는 쥐를 닮았다. 서울 도심의 뒷골목과 화성의 논길을 쉬지 않고 달려가는 형사들은 자신들이 三面으로 된 벽과 고양이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퍽치기'를 당해 살해되건 비 오는 날 연쇄 살인범에 의해 죽임을 당하건 이들 주검들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범죄현장의 血痕처럼 시대의 우울함을 남겨둔다. 승률 100%를 보장하는 와일드 카드에의 욕망은 우울한 시대가 빚어낸 장밋빛 백일몽은 아니었을까. 인간다운 삶을 죽여버리는 폭력은 '추억'이라는 사진첩 속에 곱게 간직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여기' 낯두꺼운 권력들의 욕망 속에서 파렴치하게 활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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