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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분자의 세계 … 마스터에게 묻다
알쏭달쏭 분자의 세계 … 마스터에게 묻다
  • 김재호
  • 승인 2018.12.17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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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평_ 『분자 사용 설명서: 분자를 움직이는 물리법칙 이야기』 김지환지음/재단법인 카오스 기획, 반니, 2018.10)
책 표지. 김지환 교수는 물리, 즉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화학과 화학반응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국내 명품 과학 강연인 카오스 마스터 클래스가 책 『분자사용설명서』로 출간됐다. 2017년 여름에 열린 마스터 클래스 화학 ‘S=mQ2’에는 30명만 참여해 농도 짙은 과학 얘기를 주고받았다. ‘S=mQ2’는 ‘과학(Science)은 마스터(Master)에게 끊임없이(제곱) 질문(Question)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강연 진행자는 서울대 김지환, 김경택, 이동환 교수(화학부)였다. “화학 현상을 물리 법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는가?”를 다룬 김지환 교수는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나노미터 스케일의 분자와 빛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분자사용설명서』는 물리화학의 관점을 취한다. 책은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법칙 △원자와 분자의 구조 △화학반응성 △화학반응의 측정과 예측, 총 4강으로 이뤄져 있다. 김지환 교수는 서문에서 “전통적인 화학은 ‘물질’을, 전통적인 물리학은 ‘운동’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면서 “‘물질’을 전자와 핵의 ‘운동’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현대 화학에서 물리학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이라고 적었다. 이 분야가 바로 양자역학이다. 

고대 철학자인 데모크리토스는 더 쪼갤 수 없는 입자로서 ‘원자’를 상상했다. 그 후 원자에 대한 개념은 1909년 돌턴(더 쪼갤 수 없는 공과 같은 모양), 1913년 보어(전자가 무거운 핵을 중심으로 원형의 궤도운동을 하며, 이 운동의 에너지는 양자화되어 있다.)로 이어졌다. 현재 원자 모델은 전자구름 모델로써 원자핵 둘레에 전자가 구름처럼 퍼져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화학을 물리의 관점으로 해석하다

양자역학의 핵심은 △파동 △확률 △측정 △양자화이다. 물질의 위치와 운동은 ‘파동함수’라는 수학적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언제나 ‘확률’로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수소 원자의 전자 확률 분포를 보면 전자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전자가 구름 모양으로 존재한다고 설명된다. 또한 측정 자체가 실험 대상에 영향을 끼쳐, 측정 전과 후에 파동함수의 모양이 달라진다. 특히 전자가 핵에 갇혀 있거나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가 분자에 갇혀 있을 때, 입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는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이기 때문에 ‘양자화(임의로 구획되는 양적 변화)’된다. 
독일의 과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면 속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고, 속도를 정확히 측정하면 입자가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다며 ‘불확정성의 원리’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이 정말 자연의 법칙인가, 하나의 가설과 모델에 불과한 것인가? 이에 대해 김지환 교수는 “그것은 누구도 모릅니다. 아직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방정식, 예를 들어 슈뢰딩거 방정식, 디랙 방정식 등은 해석의 측면에서 아직 논란이 많다는 설명이다. 또한 양자역학의 주류 해석 이외에 실험적 변수 때문에 실험 결과가 무작위로 나오는 것이라는 다른 해석 ‘숨겨진 변수 이론’도 있다. 
『분자사용설명서』에는 친절한 설명이 많다. 그중 화학반응을 당구공으로 비유하는 부분이 있다. 당구공 하나가 원자, 당구공 여러 개가 모이면 분자가 된다. 당구공과 원자의 공통점은 △질량이 있다는 점 △힘을 가하면 밀린다는 점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를 갖는다는 점이다. 반면, 차이점은 당구공과 당구공 사이에는 끈적끈적함, 즉 인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원자 사이에는 화학 결합력이라는 인력이 존재한다. 

화학결합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의 세계

그러면 화학결합에서 양자역학은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김지환 교수에 따르면,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가 전자보다 2,000배 정도 무겁기 때문에 물질파의 파장이 아주 짧아서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화학결합은 100% 양자역학 효과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공유결합은 원자와 원자 간의 물질파의 보강간섭으로 인한 현상이고, 보강간섭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분자의 물질파에 전자가 들어가는데 스핀도 업과 다운이 있고 파울리의 배타 원리가 지배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양자역학적”이라고 적었다. 원자 2개가 서로 근접하면 물질파의 부호가 같은 경우 보강간섭을 하고 다른 부호인 경우 상쇄간섭을 한다. 보강간섭을 한다는 건 파동이 더욱 크게 변화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분자사용설명서』는 분자의 구조와 반응성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살펴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원자 간 거리와 화학반응이 일어난 후 원자가 재배치되는 시간이다. 하지만 거리와 시간은 인간이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짧다. 즉 찰나이다. 이를 극복하며 분자의 세계를 알아낼 수 있는 건 분자의 에너지 준위를 측정하는 법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는 법 분자를 얼려놓은 상태에서 원자와 분자의 영상을 찍는 법 등이 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빛(전자기파)이 처음에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김지환 교수는 빛의 근원으로 태양의 흑체복사인 뜨거운 곳에서 나오는 빛과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빛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빛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모두 물질이 들뜬 상태에서 바닥 상태로 내려올 때 방출되는 빛에너지이다. 흑체복사와 전자기기의 차이는 분자를 들뜬 상태로 올리는 에너지가 열에너지인가 전기에너지인가 하는 점이다. 빛이 나는 물체인 불을 보면, 연료가 산소와 만나서 연소하며 생성물이 나오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 생성물은 대부분 양자역학적으로 들뜬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다시, 이 생성물이 들뜬 상태에서 바닥 상태로 떨어지면서 나오는 빛이 우리가 보는 불꽃이다. 

『분자사용설명서』 이후에는 『불가능은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김경택 교수)와 『분자 공학 각록』(이동환 교수)이 출간될 예정이다.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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