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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한국학술진흥재단을 점검한다(끝): 변화 준비하는 학계 그리고 학진
연재기획-한국학술진흥재단을 점검한다(끝): 변화 준비하는 학계 그리고 학진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7.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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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의견 수용 '투명성' 높이는 노력 제고

학계의 학술진흥재단 평가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학진이 학술진흥의 제도적 후원자로서 적지 않은 공헌을 해왔다는 점을 인정한다. 특히 학술지 평가작업은 학계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다. 등재학술지 선정 이후 학회들은 즐거운 비명이다. 논문게재 신청이 폭주할 뿐 아니라, 경쟁이 강화되다보니 논문의 질도 향상됐다는 자평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불만과 비판이 적지 않다. 학진의 가장 중요한 치적으로 삼고 있는 학술지 평가가 학문연구를 논문쓰기로 획일화했다는 비판이 그 첫째다. 학진이 기초학문연구에 대한 지원 그 자체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학계를 '평가'하는데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학진이 실시하고 있는 각종 연구지원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불만도 만만치 않다.

학진에 대한 학계의 이중적 평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학진에 대한 불만은 크게 학진의 정체성에 관련된 것과 정책적 전망에 고나한 것, 그리고 운용상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학진이 순수학문의 지원기관으로 성장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학진은 학문평가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지원평가기관으로 자신의 미래를 설정하고 있는 듯 하다.


학계는 평가보다 지원을, 학진은 지원과 함께 평가에 무게를 두다보니 입장차가 확연하다. 연구지원사업과 평가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기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연구자 전체에게 풍족한 지원을 할 수 없기에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하고, 따라서 공정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학진으로서는 당연히 해야할 부분이다. 그런데 현재 학진의 평가기준은 '지원'을 위한 '평가'라는 애초의 시도가 무색할 정도로 '평가' 그 자체가 더 앞서가고 있다. 각종 평가 과정들이 도마 위로 오른 것은 이 때문이었다.

평가를 무시한 지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학진의 기본적 기능이 순수학술지원에 있어야 한다면 평가 기능은 역시 부수적일 수밖에 없다. 평가와 심사는 오히려 학계의 몫이다. 해당 학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객관성의 가면을 쓰고 강요하는 평가와 심사의 틀을 누가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정책적 차원에서도 논란이 남아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진을 교육부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독립적인 연구지원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학진과 학계가 의기투합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기관이 되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과 발전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술정책적 차원에서 보면 현재 학진은 학술진흥과 학술연구자지원이라는 중첩돼 보이면서도 차원이 다른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지난해 '박사품귀' 현상을 일으켰던 기초학문육성 프로젝트는 근대사 연구라는 연구목표와 함께 실업자 박사들을 지원해주기 위한 '구제사업'적 성격이 강했다. 학계에서는 학문연구의 토대가 학술연구자 육성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연구자 생애주기와 부합하는 연구지원체계를 갖추도록 요구하고 있다.

학진-학계 의기투합할 수 있는 지점

박찬승 충남대 교수(국사학)는 최근 '기초학문교육 및 연구의 내실화 방안에 관한 연구'라는 교육정책 연구과제를 제출했다. 박 교수는 개별 연구자들의 성장과정과 부합하는 연구지원체계에 관련된 방안을 제안했다. 여기서 핵심적인 생각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두자는 것이며, 거대프로젝트 중심에서 개별 연구중심으로 지원방식을 바꾸자는 정책적 제안을 담고 있다.


이런 근본적 문제를 제외하면 학진에 관련된 논란은 대부분 운용상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핵심적인 사안은 개별 학문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발양시킬 수 있는 평가와 심사기제를 갖추는 일이다. 여기에 학계의 주도적 참여와 개입이 필요하다. 학진에서 추진중인 분과별 전문위원제도가 이 점에서 효과를 불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쟁점은 남아있고, 이런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학계와 학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학진이 이런 학계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더욱 진지하고 대승적인 자세로 대화에 임할 필요가 있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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