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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과 절충의 비평가 장 스타로뱅스키
균형과 절충의 비평가 장 스타로뱅스키
  • 이충훈 한양대학교·프랑스학과
  • 승인 2018.12.17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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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저자를 말하다_ 『자유의 발명 1700~1789 / 1789 이성의 상징』(장 스타로뱅스키 지음, 이충훈 옮김, 문학동네, 2018.11)

우리는 소위 융합과 통섭을 슬로건으로 내건 시대에 살고 있다. 세분된 학과와 학제에 갇혀 자기 전문 분야 외에 눈을 돌리지 않는 연구자의 태도는 시대에 뒤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고대 작가들을 모범으로 삼아볼 생각을 한다. 좁은 연구 영역에 갇혀 대다수가 즉각 필요로 하는 이익을 소홀히 한다고 간주되는 연구자는 대학이라는 상아탑에서 식객 신세를 면치 못하는 시대다.

그런데 자기 연구 분야와는 다른 분야로 선뜻 뛰어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연구자 개인의 무관심이나 무능력 탓만은 아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고대 학문 전체의 너비는 현대의 분과 학문 하나의 깊이에 못 미친다. 그것이 편해서 전문 분야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한 연구자에게 자기 분야 밖의 세상은 밤하늘에 빛나는 숱한 성좌들과 같기 때문이다. 이를 놀랍고 감탄스럽게 바라보는 성실한 연구자라면 어떻게 겸허해지고 겸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드물기는 해도 결국 이런 한계와 장벽을 뛰어넘는 대가가 언젠가는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가 존경받는다면 자기 분과를 과감히 벗어나 다른 분야에 손을 대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자기 전문 분야가 갖는 힘의 정점에 오르고 더 내려가기 어려운 깊이에 이르러 보았으니 바로 그 지점에서 학문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그때까지 서로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였던 것의 관계를 비로소 부각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과 철학의 경계가 지워지고, 문학과 예술이 섞여들고, 시가 사상이 되고 사상이 시가 되는 세계에 이른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더욱이 그런 경지에 이른 대가의 연구는 후학의 노고를 얼마나 덜어줄 것이며 앞이 보이지 않는 연구에 의기소침해 있는 연구자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될 것인가.

장 스타로뱅스키의 오랜 독자로서, 그리고 이제 그의 번역자가 된 뒤의 소회를 나는 이렇게 적는다. 문학도이자 의학도로서의 스타로뱅스키의 특이한 이력은 값싼 융합과 통섭을 슬로건으로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적합한(혹은 유례없는) 사례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저작과 연구를 꼼꼼히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런 슬로건이 얼마나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한 것인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학, 철학, 예술, 의학을 넘나드는 그의 방대한 독서가 놀랍다면 이는 스타로뱅스키 저작의 절반만을 읽은 것일 뿐이리라. 그는 어디에서도 자신의 독서를 과시하는 법이 없다. 어떤 작가를, 어떤 사상을 연구하고 소개할 때 그는 그 작가와 그 사상의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강조하려 들지 않는다. 그의 박사 논문이자 그에게 가장 큰 명성을 안겨준 『장 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은 이 작가가 이백여 년 동안 받아야 했던 오해의 베일을 벗겨 낸다. 그러나 그가 내린 결론은 제네바의 시민 장 자크 루소가 받아야 했던 부당한 해석에서 작가를 구하고 그에게 마땅한 영예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논점은 루소의 어떤 면이, 그가 주장한 어떤 내용이 그런 빌미를 제공했는지 밝히는 데 있다. 루소는 그의 사후는 물론 생전에도 광인이자 괴물 취급을 당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후기 루소의 일련의 자서전 작품들은 이런 주장에 대한 그의 항변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말이지 그의 저작을 이런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쉽고 안일한가. 스타로뱅스키는 이 작품들을 쓰던 시기에 루소가 오해의 벽에 부딪혀 느꼈던 절망과 분노 이면에 존재했던 또 다른 정념들과 이를 표현하기 위해 고민했던 웅변과 문체에 주목한다. 이 저작들이 루소의 절망과 분노의 직접적인 표현이라면 그는 그저 박해망상에 사로잡힌 광인일 뿐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적절한 단어를 고민하고 문장을 다듬고 호흡을 고르는 광인은 없다. 스타로뱅스키는 어느 쪽이 진짜 루소의 모습인지 단언하지 않는데, 사실 그 누구도 그럴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스타로뱅스키는 루소에 부과된 서로 대립하는 숱한 평가와 판단들의 한 편에 손을 드는 대신, 그 사이를 위태롭게 걸어가는 작가 루소의 모습을 더욱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그의 고통과 매혹을 함께 느끼고 이를 자신의 독자와 공유하고자 했다.

스타로뱅스키가 18세기 프랑스와 유럽의 예술사이자 지성사를 다룬 두 권의 저작 『자유의 발명 1700~1789』과 『1789 이성의 상징』에서도 그의 비평적 태도는 일관되게 드러난다. 흔히 프랑스와 유럽의 18세기는 이성의 세기, 혁명의 세기로 알려져 있다. 이성과 지식의 힘으로 미신과 편견을 타파하고 역사에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깊이 새긴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에는 곧장 다른 부정적인 해석이 뒤따른다. 이성의 지배는 정념의 억압을 가져왔고, 이념 논쟁은 또 다른 억압과 폭력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18세기는 지난 세기에 인간성을 말살했던 전체주의의 원천이자, 서구중심주의와 식민제국주의의 이론적, 실천적 토대가 된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타로뱅스키는 18세기에 대한 양립하기 힘든 이 두 평가의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 그의 방법은 그의 또 다른 주저 『작용과 반작용』에서 훌륭히 드러난 것처럼 미리 어떤 이념을 전제하지 않은 채, 앞의 두 경향이 한 세기 내내 보여주었던 ‘작용과 반작용’의 복잡한 추이를 따라가는 것이다. 고대의 이상과 현대의 취향, 절대왕정의 권력이 한껏 드러나는 바로크와 로코코 예술과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공화정의 이념을 따르는 신고전주의, 17세기의 엄격한 이성과 18세기의 유순한 정념의 대립 등에 주목한다면 이 시대를 하나의 관점과 하나의 경향으로 환원해서 이해하는 태도는 단순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떤 작가가, 어떤 예술가가, 어떤 사상가가 한 가지 이념을, 한 가지 방식을 평생 일관되게 고수하던가. 그들은 수많은 동료와 또 그만큼의 반대자들과 함께 한 시대 문화의 장(場)을 이루면서 영향 받고 대립하고 전향하고 섞여든다. 18세기 유럽과 프랑스의 예술이 갖는 다양성과 독자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며, 이를 모방할 수 있었던 세기는 역사상 없었다. 그러나 스타로뱅스키는 단 한 번도 이를 결연히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신중하고 진지한 비평적 태도이자 방법이며, 지난 세기 격렬했던 문학 이념 논쟁이 잦아들자 그의 저작이 가진 깊이와 가치가 더욱 선명히 드러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충훈 한양대학교·프랑스학과 
서강대 불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 스타로뱅스키의 『장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 디드로의 『백과사전』, 『미의 기원과 본성』, 사드의 『규방철학』, 그리고 조르주 페렉의 『생각하기/분류하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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