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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를 위하여, 알튀세르에 반하여
알튀세르를 위하여, 알튀세르에 반하여
  • 배세진 파리 7대학 박사과정 · 정치철학
  • 승인 2018.12.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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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_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람시를 읽는 두 가지 방식"』(루이 알튀세르 지음, 배세진 옮김, 오월의봄, 2018.11

철학과 정치, 그리고 과학이라는 삼항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사고함으로써 철학의 정의를 정정하는 1970년대의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바로 이러한 철학의 정의에 대한 정정을 통해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을 읽자』로 대표되는 자신의 초기 작업에 대한 자기비판에 착수한다. 생전에 출간된, 그리고 알튀세르 사후 1990년대에 출간된 여러 저작과 유고들을 통해 이 자기비판의 시기, 즉 1970년대 그의 작업에 대해 연구자들이 상당히 잘 알고 있음에도(혹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 왔음에도), G. M. 고슈가리언(Goshgarian)이라는 알튀세르 유고들의 탁월한 편집자이자 영어 번역자가 (현재 나탈리 레제Nathalie Leger가 소장으로 있는) 프랑스의 현대출판기록물연구소(IMEC)와의 긴밀한 협력 작업을 통해 2010년대에 지금까지 총 다섯 권(『검은 소』,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 『역사에 관하여』 그리고 여기 우리가 소개하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새로운’ 유고집들을 출간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튀세르라는 사유의 도구상자로부터 꺼내야 할 것이 더 남아 있음을 웅변적으로 증언해준다. 이는 마치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사후 출간된 자신들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들과 맺는 관계처럼 알튀세르에게도 이 고슈가리언 편집의 새로운 유고집들과 맺는 관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1978년 작성한 이 유고집은 집필 이후 곧바로 알튀세르의 문서고 속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에티엔 발리바르Etienne Balibar를 제외한다면) 알튀세르의 가까운 제자들에게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유고집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하지만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의 시기에 작성된, 그럼에도 그가 행했던 자기비판과는 역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 유고집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사실, 이 유고집이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이 무르익었던, 심지어 1980년 아내 엘렌 리트만(Helene Rytmann)을 교살한 뒤 정신병원 속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한 우발성의 유물론 혹은 마주침의 유물론의 맹아가 꿈틀대고 있던 1978년이라는 시기에 작성되었음에도 자기비판의 방향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의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점은 연구자들에게 수수께끼로 남기에 충분하다. 사실 이 유고집의 옮긴이로서 필자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옮긴이 해제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쟁점 혹은 전선이 바로 이것이다.

서관모 교수가 번역해 웹진 인무브(www.en-movement.net)에 기고한 발리바르의 매우 중요한 인터뷰 「알튀세르와 그람시: 에티엔 발리바르와의 대담」은 알튀세르가 이 유고집을 집필했던 1978년보다 좌파 포퓰리즘과 우파 포퓰리즘의 대결이 펼쳐지는 2018년 지금 이 유고집이 형성하는 전선이 훨씬 더 첨예하게 불타오르고 있음을 우리에게 방증해준다. ‘대항-포퓰리즘’(contre-populisme)이라는 상당히 아포리아적인 개념을 통해 알튀세르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샹탈 무페(Chantal Mouffe)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와 좌파 포퓰리즘에 점점 더 조정 혹은 조절해 가는 발리바르는, 지나가면서 단 한 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유고집(물론 이 인터뷰가 행해진 2014년 당시 이 유고집은 미출간 상태였다)을 언급할 뿐이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알튀세르가 개진했던 그람시의 절대적 역사주의와 절대적 경험주의에 대한 비판, 헤게모니론을 통한 그람시식 경제주의 비판에 대한 알튀세르의 비판을 부정한다. 하지만 필자와의 개인적인 대화에서, 한국에는 사실상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발리바르와 함께 또 한 명의 알튀세르의 이론적 상속자라 할 수 있는 자크 비데(Jacques Bidet)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유고집을 매우 높이 평가하면서, 샹탈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For a left populism, Verso, 2018)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자신이 현재 집필하고 있는 저서 『인민의 정치(학): 무페 이후의 마르크스』(Une politique du peuple, Marx apres Mouffe)의 최초 영감을 이 유고집으로부터 얻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서구 이론가들 사이에서 현재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논의 지형을 통해 우리가 그릴 수 있는 전선은 무페식 포퓰리즘(혹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논의의 ‘단순화’를 위해 이를 무시하자면, 발리바르식의 ‘대항-포퓰리즘’)과 알튀세르적 혹은 비데적 반-포퓰리즘 사이의 대립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알튀세르의 1978년 유고집은 매우 놀라운 현재성을 지니고서 이 전선에 개입해 들어온다. 옮긴이 해제에서 필자가 제기했던 질문은, 알튀세르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지적 이론’ 혹은 ‘유한한 이론’으로서의 역사유물론을 방기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이러한 전선 위에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마르크스주의의 올바른 길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인지”였으며, 여기에서 필자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Gerard Dumenil)의 인식론적 입장을 필자 입장의 전거로 삼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알튀세르의 입장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우연히도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샹탈 무페가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를 출간한 2018년에 공개된 알튀세르의 1978년 유고집 『무엇을 할 것인가?』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 전선에 개입해 들어오는지 우리는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것이 이 유고집을 지금 읽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이다.
 


배세진 파리 7대학 박사과정·정치철학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 후, 프랑스 파리 7대학 사회과학대학 소속 정치철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푸코와 발리바르, 알튀세르에 관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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