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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쟁크, 중세 그리고 오늘
미셸 쟁크, 중세 그리고 오늘
  • 문성욱 소르본대 박사과정 · 중세프랑스문학
  • 승인 2018.12.1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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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학술동향_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emie francaise)
미셸 쟁크(Michel Zink) :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emie francaise) 입회 예식
미셸 쟁크(Michel Zink) :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emie francaise) 입회 예식

작년 12월 14일, 르네 지라르(Rene Girard)가 세상을 떠난 2015년 공석이 된 아카데미 프랑세즈 37번 자리에 미셸 쟁크(Michel Zink)가 선출되었다. 지난 10월 18일 그의 입회 예식이 있었다. 몇몇 신문이 소상한 기사를 싣기는 했지만, 그 소식이 프랑스에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1635년 프랑스어의 선양을 기치로 하여 리슐리외(Richelieu) 추기경이 창립한 이래 다섯 세기의 나이를 먹은 모임의 인적 변동이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수년 전 작가 알랭 핑켈크로트(Alain Finkielkraut)의 경우 이슬람·이민 등에 대한 평소의 문제적 발언 탓으로 구설이 없지 않았음을 상기한다면, 이번 신입 회원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은 누가 보든 그가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선택지이기 때문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물론 한 인터넷 언론 기사가 표현하듯 “매우 고전적인 선택”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겠다.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소르본 강단을 거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정년퇴임을 맞은, 2000년에 벌써 비명(碑銘)·문예 아카데미(아카데미 프랑세즈와 같이 프랑스 학술원에 속한 기관으로 초기 근대까지의 역사·예술·문학에 주력)에 한 자리를 차지한 엘리트의 모범적 이력 역시 그러한 반응에 일조함 직하다.

낯선 문학의 안내자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미셸 쟁크가 반드시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으레 상아탑의 학자보다 소설가·시인을 위시한 문필가 및 ‘명사’를 우대해 왔는데(전임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Valery Giscard d’Estaing을 예로 들 수 있다), 비록 몇 권의 소설과 수필을 내기는 했어도 쟁크의 본업은 연구자이다. 게다가 그가 연구하는 것은 프랑스 중세문학인데, 이 영역에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나온 것은 1920년 조제프 베디에(Joseph Bedier)가 선출된 이래 근 한 세기 만의 일이고,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고작 한두 명이 더 꼽힐 따름이다. 17세기 고전주의 전통에 침윤된 기관인지라 더 오래된 유산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것일까? 어쨌거나 지난 50여 년 동안 미셸 쟁크는 이 ‘비고전적’ 유산의 가치를 밝히는 데 힘을 쏟아 왔다. 이때 ‘가치를 밝힌다’는 말은 협의의 연구 활동과 함께, 연구 대상 즉 텍스트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을 함의한다. 세간에서는 빛바랜 동화나 전설로 떠돌 뿐 대개 대학 강의실에 갇힌 채 잊혀져 있는 옛 텍스트가 오늘날에도 온전한 문학으로 읽혀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며, 이는 1988년 신뢰할 수 있는 원문과 현대어 번역, 충분한 해설 및 주석을 제공한다는 원칙으로 그의 주도 아래 창설된 뒤 이제 수십 권을 헤아리는 포켓판 ‘고딕 문예(Lettres gothiques)’ 총서에 반영되어 있다. 더 가까운 예로 2014년 여름, 미셸 쟁크는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 라디오에서 하루 3분씩 중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은 코너를 맡았다. “중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Bienvenue au Moyen Age)”라는 방송제목 만큼 친근하고 자상한 어조로 그가 펼쳐 보인 중세, ‘어두운 시대’의 고정관념을 떨쳐냄은 물론 건조한 연대기적 나열의 무료함에도 빠지지 않는 “시의 눈으로 본 중세”의 풍경은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다. 이윽고 출간된 동명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기도 했으니(『중세, 사랑과 매혹의 노래』, 김준현 옮김), 저 야릇한 문학에 발을 들이려는 프랑스와 한국 두 나라의 독자는 부담 없고 믿음직한 안내서를 손에 넣게 된 셈이다.

모험하는 독자, 실험하는 작품

안내자이기에 앞서 미셸 쟁크는 그 자신 모험자이다. 그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걸작들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자주 외면당한, 그러나 한 언어와 문학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온갖 작품 지대를 답사해 왔다. 지도교수의 회의적 반응을 무릅쓰고 선택한 주제였다는 그의 국가박사학위논문 「1300년 이전의 로망어 설교(La predication en langue romane avant 1300)」(1976)부터가 일부 장르에 편중되어 있던 기존 연구의 관례를 넘어서려는 시도였다. 이때부터 그가 소위 엘리트문화와 민중문화의 조우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설교 문학은 단지 일방적 훈계가 아니라 “성직자의 신학적 학식과 대중의 ‘실용 기독교’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것이며, 더욱이 속어 설교란 라틴어로 된 성직자의 문화와 민중적이거나 궁정적인, ‘단순한 로망어’로 된 세속문화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고전에 대한 경외심은 물론 민중·민속·대중적인 것에 대한 낭만주의적 애정도 숨기지 않는 이 학자에게 중세는 시간상의 위치에서뿐 아니라 그 문화와 문학의 지형에서도 ‘사이’에, 변증법적 긴장 속에 놓인다.

오늘날 독자가 중세에 대해 낯섦과 낯익음이 뒤섞인 모호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 역시 저 변증법과 무관하지 않다(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본 적이 있는 동아시아 독자의 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셸 쟁크의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 강연은 이 인상을 문학적 향유의 몫으로 옹호한다. “계속적이고 모순적이며 끊임없이 문제시되는 조정 작업들을 대가로 치러야만 ‘적정거리’를 찾아낼 수 있다면, 과거의 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아마 역사가와는 달리, 우선 근접의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물론 그가 옛 텍스트를 당대인들이 읽던 대로 읽거나 저자들이 예상하던 대로 읽노라고 자처할 수는 없다. 그렇다 한들 그 텍스트가 여전히 그에게 와 닿는다는 것은 더욱 기적적인 일일 따름이다. 텍스트는 착오를 대가로 그에게 와 닿아 그를 오류로 끌어들이지만, 그럼에도 텍스트가 그를 끌어들인다는 그 점은 진실이다. 이 오류로부터 출발하자, 중세 속에서 또한 우리 자신에게서 그것의 진실을 밝혀내자”(『중세와 그 노래들 Le Moyen Age et ses chansons』, 1996). 방법이라기에는 소박한, 그러나 예민하고 통찰력 있는 학자의 손에서라면 지극히 효과적인 이 독법의 가장 뛰어난 실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문학적 주체성: 성왕 루이의 세기를 중심으로 La subjectivite litteraire autour du siecle de saint Louis』(1985)를 읽어야 한다. “문학은 13세기의 발명”이라는 이 저작의 과감한 주장이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그러면서 핵심인 주체성 개념은 ‘주관성’, ‘개성’ 정도의 상투적인 뜻으로 이해되는 데 대해 비판이 없지도 않았다. 하지만 쟁크의 목적은 문학이 ‘주체/주관적인 것’을 표현한다는 통념을 타기하기보다 그 통념을 역사화하는 것이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문학 텍스트에서 객관적 정보나 초월적 진리 대신 “특정한 의식의 산물”을 찾아보게 되었을까? 익히 알려진 것처럼 중세에는 문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는 지금 우리의 감수성에 비추어 볼 때 딱히 달리 지칭할 수 없는 현상들을, 문학적인 것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쟁크는 바로 그 감수성의 한 기원이 중세에 있음을 증명하려 한다. 『아이네이스』 같은 고대 라틴어 서사시의 로망어 번역으로 시작되었던 소설(roman)이 크레티앵 드 트루아(Chretien de Troyes) 등을 거쳐 창작의 영역으로 기울어지던 12세기 말부터 “문학적 의식의 변동”이 관찰된다. 다음 세기 그 여파는 뤼트뵈프(Rutebeuf) 시의 자기풍자, 『장미 이야기 Roman de la Rose』의 알레고리적 내면분석, 라몬 률(Ramon Llull)의 자서전적 글쓰기 등으로 발산한다. 이 다기한 흐름을 좇으며 쟁크는 언뜻 보기에 그저 서툴거나 지루하거나 혼란스럽다고 여겨질 만한 작품들을 문학의 형성이라는 장기 지속의 역사 가운데 분기점으로 기입한다. 작품 하나하나가 실험의 현장으로 되살아난다.

13세기 말 도미니코회 수사 로랑(Laurent)이 쓴 신앙지도서 「왕의 대전(La somme le roi)」 중 겸손(Humilite)의 알레고리를 그린 삽화.
13세기 말 도미니코회 수사 로랑(Laurent)이 쓴 신앙지도서 「왕의 대전(La somme le roi)」 중 겸손(Humilite)의 알레고리를 그린 삽화.

 

겸손이라는 독법

텍스트에서 실험이나 운동을 발견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다. 착오와 오류의 권리를 인정한다 해서 교정과 조정의 의무를 방기할 수도 없다. 따라서 지식을 쌓아야 하고 기술을 익혀야 하는데, 그러나 역의 위험이 있다. 읽는 것이 우리의 일임을, 읽기의 대상인 텍스트가 거기 있음을 잊어버릴 위험. 지식과 기술이 시야를 차단할 위험. 이번 아카데미 프랑세즈 입회 연설에서 전임자 르네 지라르를 두고 “1970-1980년대에는 작가, 텍스트, 신화, 민족 같은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면, 그것들을 사회과학의 거드름 피우는 핀셋으로 다루지 않으려면, 그것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왜 그런 말을 하는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저 지진아들 대신 생각을 해주어야 한다고 지레짐작하지 않으려면, 범상치 않은 자유와 대담함이 필요했습니다”라고 찬사를 바칠 때, 쟁크는 평소 자신의 입장을 다시 확언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월함이란 더 쉬운 태도다. 텍스트는 우리에게 이것을 말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저것이 있다, 나는 잘 안다, 난 이렇게 박식하고 예리하니까. 맞다, 의심할 것도 없다, 이것 뒤에는 저것이 있다. 그래서? 왜 이것이 저것을 감추고 있는가, 뒤에 저것이 있다면 이것은 왜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가? 게다가 블랑쇼(Blanchot)라면 이렇게 말할 것인즉, 텍스트는 학자의 읽기보다는 무지한 자의 읽기를 요구하지 않는가?”(『중세의 시와 회심 Poesie et conversion au Moyen Age』, 2003).

불행으로 감수되기는커녕 원칙으로 요구되는 무지에 의해 비평가는 일단, 무엇보다도 독자이다. 그는 텍스트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텍스트의 족적을 따른다. 텍스트는 적잖은 거짓말을 할 것이고, 편견과 맹목으로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동의와 반대를 따지기에 앞서 텍스트가 무엇인가 말하고 있음을, 그 말이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있음을 인정하자. 그것을 진지하게 듣고 성실히 읽는 편을 택하며, 쟁크는 신학 용어를 빌어 “문학도의 ‘아는 무지(docte ignorance)’”를 옹호한다. “무지에 내기를 걸고 있는 효과들을 어떻게 지식을 바탕으로 이해할 것인가? 깊게 이해하기란 쉽다. 표면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기꺼이 속아 넘어감으로써 이기는 것이다.” 보다 단순한 표현을 찾으려면 근작 『모욕, 중세 그리고 우리 L’humiliation, le Moyen Age et nous』(2017)를 참조할 수 있다.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의 인류학적 착상을 기점으로 삼아, 이 책은 한편 명예/수치의 대립에 기초를 둔 고대 및 봉건사회의 ‘수치의 문화(shame-culture)’, 다른 한편 원죄와 수난을 둘러싼 기독교적 ‘죄의식의 문화(guilt-culture)’가 어떻게 교차하고 갈등하고 뒤섞여 왔는지 묻는다. 수치(honte)라는 오점이 어떻게 겸손(humilite)이라는 미덕으로 전환되는가? 사실을 말하면,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루카」 14:11)이라는 복음의 정신은 교회가 지배하던 시절조차 만인을 설복시키지 못했다. 쟁크가 소개하는 중세의 이야기들에서도 가장 훌륭한 성인은 흔히 바보요 미치광이라 조롱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문학을 읽기에, 특히 중세의 문학을 읽기에 적합한 정신이다. 새로운 불멸자(Immortel: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을 가리키는 관용어)는 겸손한 독자이다.
 

문성욱 소르본대 박사과정·중세프랑스문학
13세기 시인 뤼트뵈프를 통해 중세문학에서 ‘저자’의 출현과 역사적 조건 사이의 관계를 조망하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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