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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 애교, 사람에 대한 무한 신뢰의 사표(師表)
애국, 애교, 사람에 대한 무한 신뢰의 사표(師表)
  • 이순남 이화여대 의대 교수
  • 승인 2018.12.17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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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스승 12. 영원한 스승 김옥길(1921-1990)

김옥길 선생님은 워낙 크신 분이다. 감히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워 단지 내가 겪은 선생님을 존경과 그리움을 담아 그릴 뿐이다. 내가 입학 시 이대 총장이셨다. 다음 해인 1973년 11월 이화인 4천여 명의 시위대가 학교 정문 밖 150m까지 진출해 경찰과 대치했다. 선생님께서 선두에 서서 경찰의 구타와 연행을 막아주셨다. 덕분에 교수와 학생들은 혼연일치 되어 시위를 한 후 선생님의 인도로 대강당에 모여 구속 학생의 석방과 학원 자유화를 요구하는 철야 기도를 할 수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나는 다음 날 새벽 4시가 지나자 거주지별로 버스에 태워 무사히 귀가시켜준 학교의 배려에 더한 감동을 하였었다. 그렇게 대범하신 분을 의대 6년 동안 멀리서 뵀을 뿐 잘 알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의 마지막 생애 1년 반 동안 주치의로 곁에서 모시는 큰 행운을 누렸다.

▲ 이화여대 샌프란시코 동문회에서 선생님의 한복 선물을 입고 즐거워하는 제자와 김옥길 선생님(1989.5)
▲ 이화여대 샌프란시코 동문회에서 선생님의 한복 선물을 입고 즐거워하는 제자와 김옥길 선생님(1989.5)

선생님은 18년간의 총장직을 자진사퇴한 후 이화학당의 이사장을 지내셨다. 이사장으로서 이대목동병원 신축기금모금을 위해 미주 동창회에 여행을 떠나기 전 검진에서 직장암을 발견하여 1989년 2월 수술을 받으셨는데 그때부터 나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는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이 매우 낮아 사회 지도층 인사조차 선진국으로 치료를 받으러 나가던 시절이었다. 역시 주위의 많은 분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치료 받거나 또는 국내에서라면 이화여대병원이 아닌 서울대나 연세대병원에서 치료 받기를 권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내가 내 나라 내 학교의 의사를 믿지 못하면 누가 믿겠는가?” 하시며 단호히 거절하시고 이화여대병원 외과에서 수술을 받으셨고, 해외연수 후 겨우 2년 차인 새파란 조교수인 필자를 종양내과 주치의로 삼아 믿고 따르는 모범적인 환자이셨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 전문가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여주신 대범한 지도자가 아니신가? 수술 후 재발 방지 보조 항암치료를 위해 미주여행을 취소하시도록 강권했으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며 선생님은 4월로 예정된 모금여행을 수술 후 2달 만에 실행에 옮기셨다.

나는 2달간의 미주 모금여행에 주치의로 동행하여 선생님께서 고집해 가지고 간 국산 항암제와 수액으로 치료를 했다. 의사나 간호사 동문이 혈액을 직접 뽑아가 검사 결과가 확인되면 치료를 했는데 다행히 선생님은 평소 규칙적인 운동으로 다진 건강 체질이라 국산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랑스러워하시며 예정된 일정을 잘 마치셨다.

동문 모임은 고국에서 오신 선생님이 계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축제나 다름없었다. 동문들은 휴가를 내어 가까운 도시는 차량으로, 먼 도시는 비행기로, 선생님을 극진하게 모셨는데 그 중 LA에서 San Diego까지 가는 자동차 여행은 몹시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간호사 동문은 휴가를 내고 영문과 졸업 동기와 함께 태평양 해안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재미있는 대화는 물론 선생님께 노래까지 불러드리며 즐겁게 San Diego 동문 모임에 모시고 갔다. 마치 부모님께 재롱을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중장년의 동문들이 정성껏 기쁘게 해드리고 모시는 것을 보면서 과연 나는 나의 스승을 이렇게 공경한 적이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모임에는 적게는 20~30명에서 많게는 200여 명의 동문과 이화 사위로 불리는 부군들이 참석하여 선생님을 반기고 성심껏 이대목동병원 신축기금 모금에 동참하였다. 선생님은 항상 섬길 수 있는 조국과 겨레가 있음에 감사드리는 기도로 모임을 시작하고 끝은 교가 제창으로 마치시며 평생 일관된 나라사랑과 이화사랑을 모두에게 전파하셨다. 미국에 있는 동문들도 모두 일치된 마음으로 조국과 모교를 사랑하고 섬기며 그 일꾼이신 선생님을 진심으로 공경하였다. 선생님은 2달간 10개 도시를 방문하면서 모금뿐 아니라 동문들이 화합하고 일치하도록 이끄셨다. 선생님은 미주여행 중에도 한복을 입고 다니셨는데 선생님께 한복을 한 벌씩 얻어 입고 행복해 하는 제자들 뿐 아니라 동문 개개인에 맞추어 사랑과 베풂을 나누시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선생님이 경이로웠다. 나에게는 범접하기 어려운 큰 어른을 모시고 배우며 지낸 2달간의 미주여행은 그야말로 인생학교를 다닌 꿈같은 시간이었으며 지금도 선생님이 옆에 계신 것 같아 그립다.
 

이순남 이화여대 의대 교수
이화여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혈액학』, 『호스피스완화의료』 등의 공저가 있으며,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와 한국임상암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국가암관리위원회 위원,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이사, 한국필란트로피소사이어티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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