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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연구자로 살아가기
인문학 연구자로 살아가기
  • 홍나래 성공회대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18.12.10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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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한국연구재단에서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원고를 제안하면서 이전 칼럼들을 전해줬다. 대부분 이공계, 사회계열 글들이어서 새삼 나의 전공이 소외된 학문인가 생각해봤다. 다른 이들 눈에는 잘 안 들어올지 몰라도 구비문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도서관에서 현장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상상과 실재를 끌어안으며 항상 열정적이고 목소리도 우렁차기 때문에 평소에는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다.

나는 이야기를 공부한다. 옛이야기들 속에서 길을 찾고자 한다. 수많은 사람의 뒷이야기·소문·역사에 대한 해석과 상상들을 따라가면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어떻게 우리의 감정과 가치 판단이 공론화를 거쳐 형성돼왔는지 그려 본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조상들이 수없이 고민한 인간의 길과 양심의 목소리에 항상 벅차게 감동한다.

나는 공부를 철없이 시작했다가 지속하면서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처음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을 때, 지도교수이신 강진옥 선생님께서는 선비가 될 각오가 됐는지 물으셨는데, 불초한 제자는 그 말씀을 듣고 그저 멋지다고 느꼈다. 설마 굶어 죽을까 했지만 배고픈 학문, 효율적이지 못한 학문이라 외면당하는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특히 박사과정 후반부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학교에 소속됐다기보다 집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다시 마음을 잡고 학위 논문을 완성하기까지 생각처럼 공부도 진전되지 않아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몇 년을 집에만 있다가 학위를 받게 됐을 때, 기쁨은 잠시, 나이만 들었고 세상과 너무 동떨어져 지내서 그야말로 막막하고 작아진 느낌이었다. 모교에서 강의를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모든 게 너무 서툴렀고, 학위 이후의 공부 방향도 자신 있게 도전하지 못한 채 위축되기만 했다.

그러던 중 한국연구재단의 시민인문강좌지원사업으로 시행된 ‘통일을 바라보는 인문학 강좌’와 서울시 ‘희망의 인문학’ 강좌를 맡아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게 됐다. 나의 관심사인 이야기·우리나라의 신화와 전설·민담과 소문에 대해 탈북 청소년, 마포·서대문·양천구 지역자활센터를 통해 강의에 참여한 분들과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나눴다. 시간이 갈수록 작품과 삶을 통한 깨달음과 감동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이어주는 경험을 했다.

문학 활동과 공동체의 감동을 우리 옛이야기나 소문들, 삶의 흔적 속에서 찾고 그것을 보다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더 연구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한국연구재단의 시간강사지원 사업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점검하며 용기를 내게 됐다.

무엇보다 박사 후 국내 연수과정과 학술연구 교수과정은 혼자이던 나에게 다양한 학풍을 접하고 그 길에 있는 연구자들을 만나게 해줬다. 박사 후 국내 연수과정을 거친 건국대학교 ‘서사와 문학치료 연구소’는 한국문학치료학회를 주도하는 많은 연구자가 소속돼 있어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러 연구자를 보며 자극을 받게 됐다. 현재 소속된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은 신학연구의 학제 간 소통을 유도하는 신학연구원장인 박태식 신부님의 배려로 인연을 맺게 된 연구소다. 이제는 문학연구에 종교·사회학적 방법론을 원용해 이야기를 공동체의 표상이자 양심으로 보는 나의 관점을 보다 심화시키고자 한다.

어느 학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인문학, 그중에서 구비문학 분야는 나이가 들수록 빛나는 영역이다. 옛이야기를 할머니·할아버지나 수많은 지역을 돌다 온 이들의 목소리로 들을 때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러 스승께서 우리에게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셨고, 학문후속세대인 우리가 그분들의 의지를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다음 세대들이 전공 분야에 들어올지, 누가 언제까지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대학에서 인문학 전공자의 입지가 줄어드는 상황이기에 한국연구재단의 여러 지원은 나와 같은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생존을 위한 단비이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그래서 이런 지원이 확대돼 더 많은 연구자가 혜택받기를 바란다. 다음 세대들이 인문학을 전공할 수 있기를, 지금 우리가 서로 북돋우며 연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홍나래 성공회대 학술연구교수
이화여대에서 구비문학으로 박사를 했다. 현재 조선 후기 설화 속 도덕적 주체 형성의 문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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